블루픽션상

bir_awards_logo_d 제1회 수상작 김혜정 장편소설『하이킹 걸즈』부터 제12회 수상작 『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 까지, 매 회 수상작들이 출간될 때마다 평단과 청소년 독자 및 성인 독자들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심어 주며 많은 사랑을 받아 온 블루픽션상이 국내 청소년 문학을 이끌어나갈 새로운 작가를 기다립니다. 등단의 여부와 상관없이 청소년 문학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당선작

최현주 「돌개바람이 휘몰아치고」

심사위원:
김진경(시인, 동화작가), 김경연(청소년문학평론가), 이옥수(청소년소설가)


시리즈 블루픽션 27 | 최현주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8년 2월 28일 | 정가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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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 경위

청소년 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참신하고 재능 있는 작가의 발굴을 위해 비룡소에서 제정한 블루픽션상의 11회 결과를 발표합니다.

지난 6월 30일 원고를 최종 마감한 제11회 블루픽션상에는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담은 청소년 장편소설 총 46편의 응모작이 접수되었습니다.
심사위원으로는 김진경, 김경연, 이옥수 님을 위촉하여 심사하였고, 그 결과 총 3편을 본심작으로 선정, 본심 회의에 천거하였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본사에 모여 논의한 결과 최현주의 「돌개바람이 휘몰아치고」가 당선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응모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심작

  • 「시뮬」
  • 「어둠의 빛깔」
  • 「돌개바람이 휘몰아치고」

심사평

한 시대의 감수성

 

청소년 소설상을 심사할 때마다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일말의 기대가 있다. 이렇게 사회가 격변하고 있으니 그 변화를 체득한 세대가 자기 세대의 새로운 감수성을 드러내는 작품이 있지 않을까? 그런 감수성이 청소년 주인공을 통해 드러난다면 아주 날카롭게 빛나리라.
하지만 그런 기대는 쉽게 충족되지 않았다. 우선 청소년 소설이 장편 중심이고, 그것을 쓰는 작가들의 연령대도 높아서, 대개 재미를 곁들인 성장담으로 교육적 의미를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소설들은 상당히 유연하긴 하지만 크게는 기성세대의 틀 안에 있는 것이어서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심사 역시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고 보았다.

본심에서 심도 있게 거론된 작품은 『시뮬』, 『어둠의 빛깔』, 『돌개바람이 휘몰아치고』였다.
『시뮬』은 SF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설정이 너무 단순해서 이야기가 너무 단조로운 게 험이었다.
『어둠의 빛깔』은 문학적 훈련이 엿보이는 감수성이 풍부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청소년이 독자 대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작품이어서 아쉽지만 제외하였다.

『돌개바람이 휘몰아치고』는 8편의 단편을 모은 단편집이다. 우선 단편은 삶의 어느 순간의 단면을 끊어서 예리하게 드러내는 예술성이 높은 장르라서 다른 장편들을 읽는 것보단 긴장이 되었다.
「여우 도깨비불」은 이 작가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소녀들은 우리나라가 IMF 관리체제를 겪은 이후 어느 시점엔가 가족이 해체되어 농촌의 할머니에게 던져졌거나 그와 유사한 상황에 있다. 그런데 이제 할머니나 엄마라는 세상과의 마지막 관계의 끈마저 끊어졌거나 끊어지려 하고 있다. 그러한 아이들을 밖에서 바라보며 그 상황을 추론하고 동정하는 감수성으로는 당사자로서 그 상황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감수성을 짐작조차 하기 어려우리라. 이 소녀들은 세계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이 문제는 단순히 조손가정 아이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를 사는 젊은 세대 전체의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 왜냐하면 IMF 관리체제를 겪으면서 세계에 안정감을 주던 기왕의 가족, 기왕의 관계의 권위는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 주인공 소녀들의 감수성은 그 이후 젊은 세대의 보편적 감수성의 한 극단적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샤르트르는 현대인을 돌멩이처럼 이 세상에 아무 이유 없이 툭 던져진 존재라고 했다. 이 말은 중세와는 다르게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해 주던 가치 중심으로서의 신이 사라진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존재 조건을 이야기한 것이다. 현대인은 마치 신체에서 갑자기 툭 잘려져 나온,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살아가야만 하는 손과도 같다는 것이다. 신체에 붙어 있을 때는 머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었고, 머리가 그 행위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고민을 할 필요도 불안해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머리가 사라졌고 그래도 계속 살아야 하니 이제 스스로 모든 행동을 결정해야 하고 자기 행위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태의 손은 당연히 자신이 이 세상에 아무 이유도 없이 돌멩이처럼 툭 던져졌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샤르트르의 말은 사변적 비유 이상이 아니다. 우리 기성세대도 그렇지만 샤르트르 시대의 사람들은 여전히 안정적인 가족이라는 관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갔고, 암묵적으로 그 관계망들이 요구하는 행위를 하고 의미를 부여받았을 것이니 갑자기 신체로부터 잘려져 나와 머리가 사라져 버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야 하는 손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소녀들은 실체적으로 갑자기 신체로부터 잘려져 나와 머리가 사라져버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독자적으로 살아야 하는 손과도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 소녀들은 이 세상에 아무 이유 없이 툭 던져지는 돌멩이처럼 아무 배경도 없이 갑자기 무대에 등장한다. 이 소녀들은 어느 집안의 누구의 딸이 이미 아니다. 소녀들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던 그 모든 관계로부터 툭 잘려져 규정된 아무 의미도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손이다. 중학생 소녀는 아버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어머니를 그 여자로 부르는데 그나마 그 여자는 마지막으로 얼굴을 비친 뒤 다시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예견된다. 중학생 소녀는 부모로부터 관계를 단절 당했지만 스스로도 관계를 단절했다. 그래서 그 여자와 살던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가기로 결심한다. 툭 잘려져 던져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야 하는 손의 존재조건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존재조건을 받아들이면 모든 행위를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중학생 소녀가 최초로 자기 행위를 결정하고 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그 여자가 어느 날 오랜만에 나타나 집에다 던져 놓은 30대의 폐인이 된 남자이다. 중학생 소녀는 이 남자를 이사 갈 때 데려가기로 한다. 그리고 연애 연습용 장난감이란 의미를 부여하고 애무 연습을 하기도 한다. 혹자는 이에 대해 매우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존 능력이 없는 사람을 부담스럽지만 떠안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를 통해 이미 다 무너져 버린 진정한 관계의 회복을 연습 혹은 모색한다는 점에서 중학생 소녀의 결단과 행위는 본래적 의미에서 윤리적이다.

중학생 소녀는 철도 건널목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소녀를 발견하고 별 이유 없이 따라간다. 별 이유가 없다는 건 통상적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중학생 소녀는 초등학생 소녀를 자신처럼 모든 관계로부터 잘려져 규정된 아무 의미도 없이 이 세상에 툭 던져진 손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초등학생 소녀는 부모가 할머니에게 던져 놓고 간 아이이다. 부모는 그러고 나서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할머니가 죽음이 가까워져 치매 증상을 보인다. 초등학생 소녀는 사실상 모든 걸 의미하는 가족과의 관계로부터 잘려져 나온 상태이다. 하지만 초등학생 소녀는 그런 존재조건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할머니를 낫게 할 여우 도깨비불이 나타나는 나무의 나뭇잎을 찾으러 가는 중이다. 초등학생 소녀의 집착과 그로 인한 환상에의 매달림은 이미 사라진 세계에 집착, 풍차가 용으로 보이는 환상에 빠져 달려가는 돈키호테의 행위와 비슷한 것이다. 그래서 중학생 소녀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모든 관계로부터 단절되어 아무 의미도 없이 이 세상에 툭 던졌다는 존재조건을 받아들이라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라고.

「여우 도깨비불」에 나타난 본래적 의미의 윤리의식은 이 작가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 「골목잡이」는 이러한 작가의 자리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골목잡이는 일탈 청소년들이 비행을 저지르고 도망칠 때 붙잡히지 않도록 빈민가의 미로를 안내하는 사람이다. 빈민가에 사는 소년은 반 강압에 의해 일탈 청소년 패거리의 골목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어느 날 날치기를 한 패거리의 골목잡이를 하게 되는데 패거리는 의도적으로 주인공을 범인으로 만들려 한다. 그래서 경찰에 쫓기다 아슬아슬하게 피하여 집을 나간 어머니 대역을 하는 옷 수선집 아주머니에게로 뛰어든다. 이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사연으로 세상의 관계로부터 툭 잘려져 규정된 아무 의미 없이 이 미로 안에 던져진 사람들이다. 그렇기로는 주인공 소년 또한 마찬가지다.

골목잡이의 일차적 의미는 포획되지 않는 사람이다. 주인공 소년은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다. 세상의 질서는 부당하게 억압하면서 그 억압을 교묘히 숨기는 「귀신의 집」과도 같다. 그렇다고 세상의 질서에 반항하며 일탈하는 패거리의 질서에도 순응하지 않는다. 패거리의 질서 또한 세상의 질서를 반사하는 것일 뿐이다. 주인공 소년은 기왕의 질서에 잘 포획되지 않는 자이다. 그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세상의 관계로부터 잘려져 나와 규정된 의미 없이 던져져 있음을 자기 존재조건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로 안의 빈민촌은 주인공 소년의 존재의 거점이다.

주인공 소년은 수선집에서 늘 미로를 헤매고 다니는 걸로 여겨지던 아버지를 발견한다. 그는 아버지와 수선집 여자를 통해 이곳 사람들이 끝없이 무능과 의미 없음을 넘어서 이 미로를 벗어나고자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소년은 밖으로 나와 전봇대 위로 올라간다. 위에서 보는 빈민촌의 골목길들은 더 이상 미로가 아니다. 소년은 골목잡이의 또 다른 의미를 깨닫는다. 골목잡이는 세상의 관계로부터 잘려져 나와 규정된 의미 없이 던져져 있음의 존재조건을 수락한 상태에서 새로운 행위를 결단하고 그 새로운 의미를 찾는 사람이다. 이러한 탐색은 「거인의 발자국」으로 상징되기도 하고 「울지 않는 이유」에선 히말라야 등정에 도전했다가 추락사한 사람이 추구했던 어떤 것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작가가 한 세대의 감수성으로 어떤 작품세계를 만들어 나갈지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대상작으로 정한 이유이다.

 

심사위원: 김진경(시인, 동화작가), 김경연(청소년문학평론가), 이옥수(청소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