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 문학상

 bir_awards_logo_g 「난 책읽기가 좋아」 시리즈로 그림책에서 본격적인 읽기책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사랑을 받아온 비룡소가 저학년을 위한 동화를 공모하기 위해 시작하는 새로운 문학상입니다.

당선작

없음

심사위원: 김진경(동화작가), 강정연(동화작가), 김리리(동화작가), 김지은(아동문학평론가)


심사 경위

저학년 동화의 지평을 넓히고 참신하고 재능 있는 작가의 발굴을 위해 비룡소에서 제정한 비룡소 문학상의 올해 수상작은 없습니다.
지난 6월 30일 원고를 최종 마감한 제12회 비룡소 문학상에는 옛이야기, 의인화동화, 생활동화, 판타지, SF 등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담은 저학년 동화 총 168편의 응모작이 접수되었습니다.

본심작

  • 「창이 기차가 온다」
  • 「초승달을 딴 아기 돼지」외 2편
  • 「쩝쩝 박사」
  • 「악어상점」
  • 「투명 고양이 또또」

심사위원으로는 김진경, 강정연, 김리리, 김지은 님을 위촉하여 심사하였고, 예심 결과 총 5편을 본심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심사위원 네 분이 지난 8월 26일 본사에 모여 논의한 결과, 고심 끝에 올해는 수상작을 내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심사평

어린이 서사문학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디지털시대 문학의 역할

 

어린이 서사문학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국가교육위원회 만드는 일에 붙잡혀 있다가 5년 만에 어린이문학상을 심사하는 일로 어린이문학 판에 돌아왔다. 5년 만에 돌아온 느낌은 한국 어린이 서사문학이 침체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다. 본선에 올라온 작품을 검토하다 보니 왜 이런 침체가 오는 건지 대충은 알 것도 같았고, 그게 어린이 문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등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선에 올라온 작품 중 <투명 고양이 또또>는 눈에 잘 안 띄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아이들 이야기인데 따뜻하고 무난하게 잘 쓴 작품이었다. 하지만 무난한 작품일 뿐 상을 주기에는 아쉬웠다. 어린이 서사문학이 갇혀 있는 어떤 한계에 대해 아쉬움이 매우 컸다는 게 정확한 말일 것이다.

반려동물 문화가 블루오션이 되고 있는 것은 전통적 핵가족이 붕괴되면서 겪게 되는 사회 구성원들의 절박한 외로움 때문이다. 핵가족의 해체가 먼저 진행된 일본에서는 수년 전 로봇 장례식이 화제가 되어 해외토픽에 등장한 적이 있었다. 전통적 핵가족이 붕괴된 상태에서 반려동물이나 반려 로봇이 가족을 통해 충족되던 애착욕동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 핵가족은 지금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 산업사회 전통적 핵가족은 아버지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어머니는 가사를 담당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자녀 중심의 가족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의 전통적 핵가족은 여성 고용의 확대로 맞벌이가 일반화되면서 붕괴된 지 오래이다. 핵가족의 해체는 이런 수준을 넘어서 1인 가족의 급속한 증가로 나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전통적 핵가족을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은 10퍼센트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핵가족의 붕괴는 인간의 본능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애착욕동에 결여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그 결여의 빈틈을 차지하고 들어오는 것이 반려동물 문화이다.
그런데 <투명 고양이 또또>는 아이들과 길고양이와의 관계를 생명에 대한 따뜻한 사랑으로만 다루고 있다. 가정에서 충분한 보살핌을 받는 아이라면 길고양이와의 관계가 그런 수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아이들이 그렇다는 것은 현실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가족과의 관계에 따라 아이들의 고양이와의 관계 심도는 다양할 수 있다. 이러한 아이들이 놓여 있는 상황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가족 속에서 충분히 돌봄을 받는 아이들의 길고양이와의 관계 양상만을 전면화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현실을 가림으로써 소외된 것을 더욱 소외되게 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위험성이 있다.
한국의 어린이 서사문학은 한국 사회를 가장 밑바닥에서 왜곡시키고 있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10퍼센트 미만의 사회 구성원만이 가능한 전통적 핵가족을 ‘정상가족’이라고 강변하면 나머지 90퍼센트는 비정상의 루저가 되고 그렇게 된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떠넘겨진다. 이러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는 것이 어린이 서사문학 침체의 원인이 아닌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현실을 놓치는 순간 서사문학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

어린이 서사문학이 쇠퇴한다고 해서 동화가 아주 죽진 않는다. 성인의 서사문학과는 달리 동화에는 주관적이고 시적인 서정동화의 영역이 있다. 동물의 의인화라는 전통적 방법으로 잘 쓰여진 <초승달을 딴 아기 돼지>는 그런 작품으로 읽혔다. 하지만 동화의 장이 주관적인 서정동화의 영역으로 축소되는 것은 어린이 서사문학의 쇠퇴 내지 몰락을 의미할 것이다.

 

디지털시대 어린이문학의 역할

작년 말 나와 함께 학교 밖 청소년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사회복지사 분이 매우 미안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매우 바쁘신 거 알지만 좀 도와 줄 수 없냐고 잠깐 시간을 내 달라고 했다. 거의 울먹울먹하는 목소리였다. 커피 한잔을 사 주며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 밖 청소년센터의 조손가정 아이가 너무 오래 나오지 않아 찾아갔다고 한다. 가 보았더니 할머니는 구멍가게를 하느라 새벽부터 밤까지 바쁘고 아이 혼자 가게 뒤의 골방에서 컴퓨터에 빠져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나 오래 그렇게 지냈는지 아이는 한국말로 소통하는 방법을 잊어버려 대화가 불가능한 벙어리처럼 되어 있었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해 사회복지사들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시간을 내서 강연 좀 해 줄 수 없냐고 했다. 문득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쟈크 라깡의 말이 떠올랐다.
언어매체는 빈틈이 많은 매체이다. 그래서 독자는 독서를 하는 동안 그 빈틈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며 이 과정에서 자기 내면과 외부세계,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 이에 반해 영상매체는 빈틈이 없는 매체여서 시청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영상매체에 압도되면 자기 내면과 외부세계,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는 힘이 약화된다.
이 때문에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자크 라깡은 전통적인 정신질환 양상과 현대의 정신질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통적인 정신질환이 외부세계로 난 창문을 모두 닫고 환각의 방에 스스로를 가두는 양상이라면 현대의 정신질환은 영상매체에 압도되어 외부세계와 내면을 구분하는 벽 자체가 무너져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양상이라고 한다. 히끼꼬모리가 전형적으로 그러한데 그렇게 심하지는 않더라도 다매체시대 사이버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에게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다매체시대 사이버시대에 활자매체. 문학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 문명의 진전으로 가상세계가 보편화 일상화되는 사회에서, 더구나 어린이 문학에서 현실주의 문학만을 진정한 문학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난센스고 환상적 기법이 다양하게 문학작품에 도입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대세이다. 하지만 그러하기 때문에 현실의 문제와 환상계 내지 환상적 장치가 구분되는 속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되도록 하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 문제나 문학적 숙련도 차원을 훨씬 넘어서 문학의 윤리, 문학의 존재 이유 차원의 문제가 된다.

본선에 올라온 작품 중 <창이 기차가 온다>, <악어 상점> 등은 환상적 기법을 도입한 작품들이다. 환상적 기법을 도입할 땐 현실계의 갈등과 환상계의 설정이 유기적으로 잘 결합되게 하는 게 성패의 관건이다.
<창이 기차가 온다>는 부모님의 돌봄 속에서 성장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아버지 밑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 지내야 하는 창이가 가출을 하여 온 가족이 행복하게 지냈던 시골 할머니 집을 찾아갔다 돌아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의 문제는 현실계에서 환상계로의 진입과 귀환이 아무런 장치나 망설임 없이 이루어져 현실계와 환상계가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창이가 할머니집이 있는 영포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는데 아무런 장치나 망설임 없이 창이와 기차는 어느 순간 환상계로 진입하여 시골에서 길렀던 야생 염소와 꿩 가족을 만나고 함께 영포로 돌아가 어머니 나무를 만난다. 그리고 달팽이와 야생염소와 꿩 가족과 할머니와 함께 하늘을 나는 기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온다. 이로써 삶의 이질성 때문에 학교에서 겪었던 다른 아이들과의 갈등은 일거에 해결된다. 이렇게 적절한 장치와 망설임 없이 현실계와 환상계를 뒤섞어버리면 환상계의 사건 전개도 긴장감을 잃고 갈등의 해결도 가짜여서 깊은 감흥을 주지 못한다.
<창이 기차가 온다>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은 <악어 상점>에도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악어 상점>에서 현실 문제는 딸의 죽음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파하는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이다. 엄마는 딸의 죽음이 너무 아파서 딸의 물건을 치우고 싶은데 태울 수는 없고 어떻게 치울 건지 고민하다 중고품 상점인 악어 상점에 판다. 아들은 동생의 죽음을 아파해서 동생이 소중하게 여겼던 물건을 간직하고자 엄마가 악어 상점에 판 물건을 사고 돈이 부족해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훔친다. 아버지는 딸의 죽음에 대한 아픔을 가슴에 묻은 채 가족들을 끌어안고 위로하려 한다.
‘악어 상점’이라는 좀 과장되고 익살맞은 환상적 설정은 자칫 감상과 자기위안에 머물 수 있는 상실감과 그로 인한 갈등을 객관화하고 유머러스하게 넘어서게 하는 장치로서 흥미를 끈다. 하지만 이 환상적 장치와 현실 문제가 너무 거칠게 결합되어 유기적이지 못하다. 현실의 설정도 개연성이 부족하다.

김진경(동화작가)

이번 응모작들은 응모 편 수에 비해 작품의 전체적인 수준이 매우 아쉬웠다. 저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뚜렷하지만 너무 뚜렷한 나머지 잔소리로 읽히기도 하고, 틀에 박힌 이야기 전개로 오히려 독자의 상상력을 방해하기도 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이고 예스러운 이야기들이 유난히 많았는데 주 독자층인 유년기 어린이들의 공감을 끌어내기엔 어려워 보였다. 그 외에도, 깊은 슬픔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가볍고 경솔해서 불편한 작품, 파편화된 상상으로 이야기가 제대로 엮이지 못하여 허술하게 전개되는 작품도 많았다. 이런 이유로 이번 공모전에서는 당선작으로 뽑을 만한 작품을 찾아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모작 중 눈에 띈 작품은 아래와 같다.

<창이 기차가 온다>는 창이가 기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판타지와 현실이 뒤섞여 이야기 전개가 혼란스러웠고, 예스럽고 낡은 느낌의 서술 방식이 아쉬웠다.

<초승달을 딴 아기 돼지 외 2편> 중 첫번째 작품인 ‘초승달을 딴 아기 돼지’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동화였다. 하지만 이에 비해 다른 두 편은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했을 뿐더러 과연 요즘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쩝쩝 박사>는 쩝쩝박사의 캐릭터가 흥미를 끌었으나 이야기 속 세계관이 단단하지 않아 각각의 인물들과 사건들이 서로 맞물려 있지 못하고 파편화된 느낌이 컸다.

<악어상점>은 악어 아저씨와 악어 아줌마가 운영한다는 설정과 중고물품을 사고 파는 공간이 꽤 흥미진진하여 많은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담고 있는 에피소드가 매우 억지스럽고 읽는 이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투명 고양이 또또>는 응모작들 가운데 가장 안정적이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약한 존재를 아끼고 염려하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읽는 내내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투명 고양이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지극히 평범한 동화가 되어 버려 아쉬웠다. 투명 고양이가 정말로 존재한다고 믿게 하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었다면 어땠을까?

강정연(동화작가)

올해는 유난히 힘든 해였다. 곧 종식될 것 같았던 코로나가 다시 무섭게 번졌고, 산불과 홍수 불행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구는 계속 불타오르고 있고,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지구 곳곳에서 퍼져 나갔다. 강대국의 힘겨루기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졌고, 지금도 수많은 희생자가 생겨나고 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행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느낌이다. 어른과 청소년 어린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우울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금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떤 동화를 쓸 수 있을까?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좋은 동화를 쓰기에 어려운 시기이다. 이러한 상황이 반영된 듯 올해는 비룡소 문학상 응모 작품 중에 눈에 띄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 작가들은 에너지가 고갈된 듯 상상력은 힘을 못 쓰고, 기존 수상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익숙한 소재와 주제를 치열한 고민 없이 적당히 가져다 쓴 듯한 작품이 많았다. 혹시 내가 본 작품만 그런가 싶었는데, 다른 심사위원님들 의견도 비슷했다. 어렵게 몇 작품이 본심에 올랐지만, 이전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과 비교해 보면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많았다.

쩝쩝 박사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식이 쩝쩝 박사의 식탁으로 배달되어 오면 쩝쩝 박사는 음식을 분석하고 요리 일지를 쓴다. 그런데 어느 날 불어 터진 라면이 배달되어 오고, 맛없는 라면을 먹은 쩝쩝 박사는 분홍 괴물로 변해서 라면을 만든 주인공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다. 음식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쩝쩝 박사, 쩝쩝 벌, 쩝쩝 나비 등 개성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고, 반복되는 말놀이도 재미있다. 그러나 훌륭한 음식들이 어떻게 해서 쩝쩝 박사의 식탁으로 배달되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전체적으로 구성이 허술해서 억지로 감동을 만들어 내는 느낌이다. 뻔한 교훈으로 급하게 마무리된 것도 아쉬웠다. 음식은 오감을 자극하는 좋은 소재이다. 그러나 최근에 음식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아서 독자의 기대치가 높다. 기존 작품과 차별화될 수 있는 기발한 상상력과 탄탄한 구성이 더 필요하겠다.

창이 기차가 온다
창이는 주말에 무얼 했는지 발표하는 시간에 늘 영포에 가서 야미와 요미와 놀았던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친구들은 창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는 날, 창이는 버스를 타고 영등포로 향한다. 창이는 그곳에서 영포로 가는 기차를 타고, 그리웠던 이들을 만나러 간다. 결핍이 많은 창이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리운 이들을 기차에 태워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이미지가 강한 작품이다. 그러나 현실과 판타지가 혼재되어 있어서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창이의 사투리가 부자연스럽고, 마지막에 창이를 찾으러 온 할머니의 등장도 갑작스럽다. 작가가 처음부터 판타지 동화로 상상력을 더 펼치고, 치밀하게 구성을 한다면 좋은 작품이 될 것 같다.

초승달을 딴 아기 돼지(단편 3편)
「초승달을 딴 아기 돼지」, 「장다리꽃」, 「오색 비단실」 세 편의 단편 동화 모두 문장이 시적이고, 아름답다. 읽는 내내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따뜻하다. 세 작품 중에서 「초승달을 딴 아기 돼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꼬리에 불만이 많은 아기 돼지가 꿈속에서 꼬리로 초승달을 따는 꿈을 꾼 뒤로 자신의 꼬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야기인데, 주인공 아기 돼지가 정말 사랑스럽다. 그러나 나머지 두 작품은 아쉬움이 많았다. 「장다리꽃」은 결핵을 앓고 있던 아이가 공터에 바람이 든 무를 심어서 꽃을 피워 마을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이야기인데, 소재와 주제 모두 지금의 아이들 삶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 들었다. 「오색 비단실」 또한 뽕나무가 자신을 희생해서 오색 실타래를 만들어 내는 이야기인데, 자신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거나 주인공의 희생을 강요하는 듯한 이야기는 이미 예전 동화에서 많이 쓰였던 주제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과 아이들의 간절함에 대해 작가의 고민이 더 필요하겠다.

악어 상점
해솔이는 중고 물건을 사고파는 악어 상점에서 죽은 동생의 빨간 신발을 발견한다. 해솔이는 도둑질을 해서 죽은 동생의 신발을 사고, 그 뒤로도 동생의 물건을 사기 위해서 악어 상점을 드나들게 된다. 이번 응모작 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악어 상점을 지키는 악어 부부 캐릭터도 독특하다. 그러나 해솔이의 부모가 죽은 동생의 물건을 악어 상점에 팔게 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고, 비유와 함축이 많아서 그런지 문장이 거칠게 느껴지고, 전반적으로 냉소적인 느낌이 든다. 「악어 아빠」, 「한밤중 달빛 식당」, 「꽝 없는 뽑기 기계」 등 그동안의 비룡소 문학상 수상 작품에서 다루었던 소재와 주제가 겹치면서도 이 작품만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은 점도 아쉬웠다. 동생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작가가 주제에 대한 고민과 진정성이 더 깊이 있게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투명 고양이 또또
강아지를 키우는 민재가 부러운 우주는 얼떨결에 고양이 친구가 있다고 자랑을 한다. 고양이 친구는 만물상을 하는 엄마 아빠 가게에 찾아오는 길고양이다. 우주, 다나, 민재는 절대 모습을 보이지 않는 투명 고양이에게 또또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고양이를 기다린다.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또또를 기다리는 이야기가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고양이를 기다리며 친구에 대해 생각해 보고 함께 성장하게 되는 작품이다.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힘이 센 엄마, 마음 따뜻한 아빠. 기존의 성 고정관념을 벗어난 엄마 아빠의 모습도 매력적이다. 문장이 차분하게 잘 읽히고, 작가의 시선이 따뜻하다. 장점이 많은 작품이지만, 그동안 고양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너무 많고,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평이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수상작에 들지는 못했다.

「악어 상점」과 「투명 고양이 또또」가 본심 마지막까지 논의되었지만 두 작품 모두 수상작으로 선정하기에는 아쉽다는 의견이 많았다. 고심 끝에 이번에는 수상작을 내지 않기로 했다.
올해는 비록 수상작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글을 쓰고 소중한 작품을 응모해 준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김리리(동화작가)

올해 비룡소문학상은 상당한 숫자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책읽기에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하는 유년의 독자를 상상하며 그들을 위한 서사 창작에 관심을 가지는 작가가 많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안정적이면서 개성이 약한 작품이거나 과도할 정도의 강한 설정을 내세우는 작품들 몇 편이 눈에 띄었을 뿐 전반적으로 본심에서 논의해 보고 싶은 무게감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 유년동화의 무게감이란 작품의 규모를 말하는 것은 아니며 이미 존재하는 동화들과 어느 정도의 선명한 변별력을 가지고 있는지, 작품 안에 독자를 한 발짝이라도 더 앞선 경험으로 안내하는 측면이 있는지 같은 부분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들은 어린이의 현실에 대해서 조금 더 날을 세우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유년동화라고 하면 막연하게 평화로운 정경을 떠올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어린이에게는 비슷비슷한 안도감보다는 새 힘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고 흔한 오르내림만으로는 독자의 요청에 응답하는 데 한계가 있다.

‘초승달을 딴 아기 돼지’외 3편은 첫 작품이 인상 깊었다. 이미지가 눈에 그려지는 산뜻한 장면의 연속에 주고 받는 대화도 사랑스럽고 씩씩하다. 다만 뒤의 두 편이 앞의 한 편을 뒷받침할만한 매력을 갖고 있지 않은 점, 이야기의 바탕에 관습적인 전개가 깔려 있는 점이 아쉬웠다.

‘쩝쩝 박사’는 독자가 무엇을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새 작품을 기다릴지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리듬은 경쾌한 이야기이지만 유쾌한 이야기를 쓰겠다는 의욕이 앞서서 너무 많은 요소를 포함시키려 했고 그 때문에 산만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라면’이 쩝쩝이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리라는 설정은 크게 흥미롭지 않았다.

‘창이 기차가 온다’는 초반의 전개에서 독자의 관심을 끌고 가는 측면이 있고 환상적 장치가 독특한 정취를 형성한다. 하지만 환상적 장치로 들어가는 입구가 모호해서 어느 지점부터 판타지인지 혼란스러웠으며 주춤거리며 읽게 되는 탓에 결말의 스케일이 너무 비약적으로 느껴졌다. 그림책의 엔딩이었다면 오히려 납득할 수도 있겠다.

‘악어상점’은 본심작 중 가장 개성이 강렬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죽은 딸의 물건을 파는 엄마의 심리에 대해서 독자를 충분히 설득했는지 의문이고 ‘한 번도 신지 않은 신발을 판다’는 헤밍웨이의 말이 지나칠 정도로 여러 차례 변주되면서 신선한 느낌을 잃어버리는 것이 단점이었다. 아빠는 시놉시스에 적은 인물과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캐릭터의 구축이 불명확하다. 엄마는 과도한 행동을 자주 하는 바람에 이야기의 매력을 오히려 반감시킨다. 시선을 사로잡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음량을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투명 고양이 또또’는 마지막까지 고민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응모작 가운데 여러모로 가장 잘 갖추어진 작품이었다. 다 읽은 뒤에 느껴지는 다정다감한 기분은 유년동화의 미덕이 무엇인지 작가가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또를 둘러싼 인물들 한 명 한 명이 자신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면서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투명 고양이’에 대해서 독자가 걸고 있을 기대를 조금 더 고려해서 어떤 형태든 좀 더 용감한 선택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지금은 그 돌파의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유려하고 밀도가 탄탄하지만 그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상식적이고 온화한 마무리가 오히려 약점이 된 셈이다. 유년동화의 새로운 진전을 보여 주는 수상작이 되기에는 아직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비룡소문학상은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유년동화의 창작에 쏟은 응모자 여러분들의 고심에 찬 분투에 경의를 표한다. 조금 더 ‘오늘의 어린이’에 대해 말하겠다는 용기를 가지기를, 이후에 새로운 기대작으로 꼭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김지은(아동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