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픽션상

bir_awards_logo_d 제1회 수상작 김혜정 장편소설『하이킹 걸즈』부터 제12회 수상작 『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 까지, 매 회 수상작들이 출간될 때마다 평단과 청소년 독자 및 성인 독자들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심어 주며 많은 사랑을 받아 온 블루픽션상이 국내 청소년 문학을 이끌어나갈 새로운 작가를 기다립니다. 등단의 여부와 상관없이 청소년 문학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당선작

당선작 : 없음

심사위원: 김경연(청소년문학평론가), 정유정(소설가), 박성원(계명대 문예창작과 교수)

 


심사 경위

청소년 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참신하고 재능 있는 작가의 발굴을 위해 비룡소에서 제정한 블루픽션상의 7회 결과를 발표합니다.

지난 6월 28일 원고를 최종 마감한 제7회 블루픽션상에는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담은 청소년 장편소설 총 34편의 응모작이 접수되었습니다. 예·본심의 심사 과정을 거친 결과 아쉽지만 올해는 당선작을 내지 못했습니다. 내년에 더 좋은 작품이 나오길 기대하며 본심작과 함께 심사평을 개재합니다.

본심작

  • 「십센티」
  • 「라디오」
  • 「z」
  • 「친구야, 학교 가자!」

심사위원으로는 김경연, 정유정, 박성원 님을 위촉하여 심사하였고, 그 결과 총 4편을 본심작으로 선정, 본심 회의에 천거하였습니다. 심사위원들이 8월 8일 본사에 모여 논의한 결과 올해는 당선작을 선정하지 못했습니다. 응모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내년에는 더욱 풍부하고 흥미로운 작품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심사평

그간 신선하고 참신한 당선작을 배출하며 국내 청소년 문학의 산실로 자리 잡아 온 블루픽션상이 벌써 올해 7회를 맞았다. 발표된 작품들은 십 대들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하고 통쾌하게 뚫어 주기도 하며 청소년 문학의 청량제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그러나 올해 예심작과 본심작을 함께 읽으며 심사위원들은 당혹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단지 당선작을 못 내어서만이 아니었다. 좀 더 넓게 보자면 근본적으로 ‘청소년소설의 탈출구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일으킬 정도로 최근의 청소년소설은 벽에 갇혀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일각에서는 다시금 청소년소설이 무엇이냐는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청소년이 읽는 소설과 청소년에게 읽히고 싶은 소설은 차이가 있다. 가령 청소년들이 「토지」를 읽는다 해서 이 작품을 청소년소설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청소년소설은 청소년에게 읽히고 싶은 소설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토지」를 청소년에게 읽히고 싶은 소설로 꼽는다고 해서 청소년소설이라 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청소년에게 읽히고 싶으면서 아울러 독자를 우선적으로 청소년으로 설정한 소설을 지금 우리는 청소년소설이라고 부르고 있는 셈이다. 청소년 독자의 설정은 일차적으로 작가에게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러한 의도를 출간 결정으로 함께 뜻을 모으는 것이 출판사다. 다시 말해 청소년소설은 흔히 생각하듯 텍스트의 형식과 내용이 아니라 작가 및 출판사의 ‘의도’로 결정되는 것이다.

이제 작가의 의도에 대해 묻는다. 자신의 글을 왜 청소년소설의 범주에 넣고자 하는지? 청소년이 주인공이라서? 청소년의 갈등과 상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우선적으로 청소년에게 읽히고 싶어서? 만약 그렇다면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간과하고 있는 거다. 바로 소설이 무엇인가? 왜 이 이야기를 쓰는가? 하는 데 대한 물음이다. 청소년소설 역시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간단히 답할 수 있지도 않다. 그만큼 다양하고 경계가 모호하다. 그리고 그것이 소설의 가능성이다. 청소년소설 역시 그 가능성을 공유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벽에 갇힌 듯 답답한 모습을 보인다면 소설의 가능성을 시야에서 놓쳐버렸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독자를 붙들 수 있으려면 소설을 쓰려는 욕망과 재능 이외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설정의 참신성, 글맛 같은 것은 재능에서 비롯될 경우가 많다. 이런 재능이 분명히 엿보이는데도 공부 부족이 눈에 띌 경우는 참으로 안타깝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이 이에 해당한다. 산행을 할 때 오르막길만 있으면 숨이 가쁘다. 글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완급 조절 즉 스토리텔링의 방식이 읽는 재미를 제공한다. 지나친 유머 또는 냉소의 질주는 이내 읽는 즐거움을 앗아간다(<십센티>). 에피소드는 있지만 사건이 없을 때(<라디오>), 설정은 매력적이나 전체적으로 뻔한 알레고리 또는 클리셰로 받아들여질 때(<Z>), 처음의 흡입력과는 달리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치고받는 에너지가 균형을 잃을 때(<친구야, 학교 가자!>) 역시 독자를 끝까지 붙들어 놓기 어렵다. 작품의 품격 또는 깊이는 디테일에서 결정된다. 우울증을 다룬다면 병리학적 의학적 공부가 필요하고, 성폭행을 다룬다면 그 역시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친구야, 학교 가자!). 미래 세계를 다룬다면 이미 SF 영화나 만화를 많이 접했을 독자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Z>). 위악적 인물인가 했는데 어느 샌가 비열한 인물로 바뀔 때(<친구야, 학교 가자!>)도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한마디로, 자신의 글에 재미를 더하려면 소설 공부가, 깊이를 더하려면 제제에 대한 다각적이고 치밀한 공부가 필요하다.

청소년소설은 제한이 많은 장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벽을 느끼는 작가라면 소설의 영원한 모티브의 하나인 ‘사랑’이 얼마나 다양한 걸작들을 탄생시켰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같은 제재라 하더라도 다루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작품을 기대하며, 비록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에는 당선작 없이 잠깐 숨을 고르기로 한다.

심사위원: 김경연(청소년문학평론가), 정유정(소설가), 박성원(계명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