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지성’ 엔첸스베르거에 듣는다

동아일보
– 2002/10/09

‘독일의
지성’ 엔첸스베르거에 듣는다

전방위지식인으로
불리는 엔첸스베르거는 기자가 ‘최근 중동사태에 대한 의견’을 묻자 놀랍게도 ‘내게 의견을 물을 필요는 없다. 문필가가 시대의
방향타가 되어야 한다는 관념은 이미 낡은 것’이라고 답했다. 뮌헨〓유윤종기자

《화가와
젊은이의 천국인 뮌헨 슈바빙 지역의 ‘뮌히너 프라이하이트(뮌헨의 자유)’ 지하철역. 시월의 청명한 햇살에 부신 눈을 부비며 지상으로 올라왔다.
‘영국 정원’의 널찍한 잔디밭이 건너다보이는 5층집. 오늘날 독일 지식계의 풍향계로 불리는 전방위(全方位) 지성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73)의
서재 겸 집필실이 그곳에 있었다. 전후 독일 참여시의 선구자로, 정치 에세이스트로, 미디어 비평가로, 출판인으로, 극작가로, 9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번역가로 무장무애(無障無쒉)의 활동을 펼치며 지치지 않는 지적 정열을 과시해온 그는 1997년 청소년을 위한 소설 ‘수학귀신(Zahlenteufel)’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려놓으며 자연과학 칼럼니스트로서의 명성을 획득하기도 했다. 백발을 보기좋게 빗어넘긴 그는 어린이처럼 호기심에 가득 찬
푸른 눈을 빛내며 기자를 맞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엔첸스베르거라는 이름은 한국 청소년들에게 ‘수학귀신’으로 인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게는 대학시절 ‘전후 유럽문학’ 강의록에서
‘참여시의 대표주자’로 만난 이름이기도 하죠. 어떻게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뛰어난 지적 성과를 성취할 수 있었습니까.

“오늘날
과학의 위치를 생각해봅시다. 오늘날 과학은 최소한 예술과 동등하거나 그보다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나는 문학이 일종의 ‘느낌’에 대해
쓰는 것이라는 ‘낭만주의적 이데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문인은 정치에서 성당건축에 이르는 모든 것을 쓸 수 있는거죠.”

-정치 미디어 출판 드라마 방송 등 여러 분야에서 성공을 이루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내 오른손은 시를 쓰는 손이고, 왼손은 다른 일로 세계와 관계를 맺는 손입니다.(웃음) 내 왼손의 작업들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인 문필가가 사람들과, 세계와 접촉하도록 도와주죠.”

-무비판적인 기술의 진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을 꾸준히 나타내 오셨는데요.

“내가 과학에 대해 가진 관심은 오늘날의 과학 보다는 과학의 역사성에 대한 관심이었죠. 그 점을 전제로 하고
‘진보’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여러 가지 원칙을 유지하지만, 고정된 원칙은 흔히 광신으로 흐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진보가
중요한 이념이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진보라는 ‘원칙’이 도그마로 작용하는 순간, 우리는 거기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문득 60년대 ‘스튜던트 파워’의 이념적 방향타로 이름을 날렸던 그의 정치적 궤적이 머리에 떠올랐다. 자본주의
체제에 단단히 편입된 독일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질타해온 그가 65년부터 발간한 무크 ‘쿠어스부흐’(운행시간표)는 동독 북한 등의 르포기사를
통해 현실 사회주의의 모순을 예리하게 해부함으로써 좌파이념에 경도된 지식인들을 당혹하게 했다.‘검은 이들은 나를 희다 하고/흰 이들은 나를
검다 한다/듣기 좋다. 이런 의미 같다/내가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올바른 길이 있을까·1964)라는 싯구절에서 이런 자세는 이미 예견된
것 아닐까.

-도그마를 경계하는 자세를 정치적 문제에 있어서도 견지해오셨죠.

“나는 원래 공산주의 등 일정한 정치적 태도와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세계를 변화시키려면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입장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세계는 ‘극장’과 같이 여러 행위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마오쩌둥주의와 같은
시대착오에는 일찍이 작별했죠.”

마치 60년대에 탈중심 탈거대담론의 포스트모던 세계를 예견한 듯이 보인다. 이런 그의 ‘탈중심성’은 그의 유명한
미디어 담론으로도 구체화됐다. 30여년 전, 그는 이미 새로운 전자미디어의 탄생을 내다보고 ‘탈중심성 수평성 상호작용성’이란 장점을 가지게
될 이 뉴미디어를 ‘해방적’으로 이용하자고 주문했던 것이다.

-수십년 전 이미 수평적 전자매체가 가지는 민주적 기능을 예견하셨습니다만, 오늘날 익명성의 악용 등 인터넷의
악영향을 논하는 소리도 높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미디어는 집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이를 이용하려는 권력이 있게 마련입니다.
거기에 반해 조종될 수 없는 미시적 권력들이 뉴미디어를 통해 발현되는 것은 긍정적인 일입니다. 인터넷은 많은 가지를 가진 나무나 거대한
공장과 같습니다. 많은 것을 찾고 느끼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얘기를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수학귀신’(로트라우트 베르너 그림·고영아 옮김, 비룡소)으로 되돌렸다.
청소년을 위한 ‘수학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간단합니다. 지금 열여섯 된 딸이 있는데요,(그가 57세때 태어났다는 말이 된다) 이 아이가 열한살이 됐을
때 수학을 재미있게 설명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아이와 간단한 계약을 했죠. 듣는 아이가 따분해해선 안된다. 설명하는 나도 따분해해선 안된다.
계약은 성공적으로 이행됐고 책으로 정리하게 됐죠.”

사진을 찍겠다고 양해를 구하자 그는 ‘잠깐, 그렇다면 이제는 내가 당신을 인터뷰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해빙무드와 북·일교섭에 대한 최신의 보도내용을 자세히 인용하며 기자의 견해를 물었다. 그의 ‘안테나’는 몇가지 방향으로 뻗어있는 것일까.

그는 “한국인들은 매우 근면하고 배움에 대한 욕구가 크며 누구도 부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
나라로 알고 있다”고 ‘정확히’ 짚어냈다.

“작가의 경우를 통해 보건대, 계속 성공한 작품을 쓰다보면 좋지 못한 작가가 될 위험에 처하기 쉽습니다. 한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한국이 여러 면에서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만보다 유익한 교훈을 얻기 바랍니다.”

아직 갈 길 많은 나라에 대한, 긴 시선의, 유익한 충고라고 느껴졌다.

뮌헨 현지인터뷰=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연보▼

1929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출생

1949 에를랑엔 대학에 입학, 5년동안 함부르크 파리 등에서 문학 언어학 철학 등을 연구

1955 논문 ‘클레멘스 브레타노의 시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1957 첫 시집 ‘늑대들의 변호’ 발표

1963 독일 최고권위 문학상 중 하나인 ‘뷔히너상’ 수상. 소련방문

1965 무크지 ‘쿠어스부흐’ 창간

1972 장편소설 ‘무정부상태의 짧은 여름’(한국어판 제목 ‘어느 무 정부주의자의 죽음’) 출간

1984 연극 ‘인간의 친구’ 초연

1997 수학소설 ‘수학귀신’ 출간

1998 역사소설 ‘로베르트, 너 어디 있었니’ 출간

2002 루트비히 뵈르네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