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터니 브라운, 로베르토 인노첸티와의 인터뷰


앤서니 브라운 작 ‘미술관에 간 윌리’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2003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2∼5일)은 세계적인 어린이책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출판인들이 저작권을
사고 파는 박람회지만 어린이책 작가들 역시 기꺼이 어린이책의 흐름을 읽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 중 세명을 만났다.

# 그림에 숨은 단서 찾게 해야
뛰어난 그림책 화가들에게 2년마다 볼로냐 도서전에서 주는 2000년 안데르센상 수상자인 영국의 앤서니 브라운(57)은 도서전이
점점 상업화해 재미가 없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1983년 ‘고릴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그는 서슴없이 “‘고릴라’가 내 책 중에서 가장 좋은 책”이라며 “매우 개인적인
얘기인데 다양한 연령층으로부터 호평을 받아 놀랐다”고 말했다.

―‘고릴라’가 아버지 같은 느낌을 주는데….

“내가 열일곱살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배가 나오고 힘이 세고 점잖다는 점에서 고릴라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는 아니다.”

―독자층은 누구인가?

“34권의 작품을 냈다. 독자의 연령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본능적으로 그렸는데 ‘고릴라’의 성공 후 그림책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많이 생각하게 됐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그냥 아이들이 보고 읽고 생각하도록 북돋을 뿐이다. 그림과 글의 관계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림 속에 숨겨둔 단서를
찾아야 한다. 나는 어린아이들을 높이 평가하는데 그들은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좀더 나이든 아이들은 보는 법을 잊어버리고
피상적으로 본다.”

―동물이 등장하는 그림책이 많은 것 같은데….

“작업하기 좋다.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간 윌리’에 나오는 침팬지의 나이? 그 나이만큼 먹었다.”

―훌륭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는 법은?

“정직하고 믿음이 가도록 그린다. 진솔하게 개인적인 것을 보여주면 강한 느낌을 준다. 모리스 샌닥의 그림을 보면 서툰 것 같은
그림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툴어 보이는 그림을 칭찬하고 모방했지만 그의 특징을 담아내지 못했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전쟁을 찬성하는 쪽도 있고 반대하는 쪽도 있다. 그러나 누가 옳은지 모르겠다. 또 영국이 참전했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걱정된다.
쉬운 문제는 아니나 전쟁이 항상 무시무시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전쟁의 진실을 모른다.”

브라운은 “전쟁을 다룰지 모르지만 이번 전쟁은 아니고 전반적인 전쟁에 대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좋은 삽화가는 분위기에 민감
도서전에서 가장 인기를 끈 작가는 지난해 안데르센 수상자인 영국의 퀜틴 블레이크(70). 일러스트레이션전에서 ‘마틸다’ ‘내
친구 꼬마거인’ 등의 삽화로 커버를 장식했고 ‘독자와의 대화’도 가졌다. 블레이크는 캠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런던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첫 질문은 그가 그림을 그린 책의 수에 관한 것이었다.

―1960년 이후 책 몇권에 그림을 그렸나?

“2년전 어린이들과의 대화에서 주최측으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았다. 나 자신 몰랐는데 어린이 한명이 번쩍 손을 들더니 작가 70명의
책 263권에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줬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반문했더니 ‘우리도 셈할 줄 알아요’라고 대답했다.”

―로알드 달과 함께 많이 일했는데….

“로알드 달은 삽화를 원했고 삽화를 위해 글을 쓰기도 했다. 그는 어린이에게 간섭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교육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북돋았다. 그것이 그의 장점이다.”

―예전에는 ‘펀치’나 ‘스펙테이터’ 같은 잡지에 삽화를 그리지 않았는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책 속에 들어가 그림으로 얘기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러스트레이션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해석하고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좋은 일러스트레이터는?

“책의 분위기에 민감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를 매우 주의깊게 읽어야 한다. 줄거리가 아니라 분위기를 잘 파악해야
한다.”

―삽화뿐 아니라 직접 그림책을 만들기도 했는데….

“직접 얘기하고 싶어져 그림책을 그리게 됐다. 그래서 나온 것이 ‘The story of the dancing frog’ 같은
것들이다. 예술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다.”

―가장 좋아하는 작업은?

“펜으로 종이를 긁는 작업, 글에 나온 등장인물들을 나타내 주는 것, 책을 디자인하는 것 모두 좋다.”

밝은 와이셔츠 차림의 블레이크는 대화 중간중간에 직접 사인펜을 들고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앤서니 브라운. 퀜틴 블레이크. 로베르토 이노첸티

# 떠오르는 생각 자유롭게 그려
그림책 ‘마지막 휴양지’로 도서전의 꽃이라 할 라가치상 픽션부문 명예상을 수상한 로베르토 이노첸티(62)는 ‘피노키오’의 고향인
이탈리아 피렌체 지방 출신. 가난한 집안형편 때문에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환상적인 분위기의 세밀화로 유명하다. 라가치상 심사위원들은
“상상의 세계가 연속적인 문학작품 속에서 펼쳐진다”며 “이미지와 텍스트의 매력적인 결합”이라고 평했다.

―이 작품은 어떻게 구상했는가?

“아주 가벼운 기분으로 그렸다. 나도 모르게 이야기가 떠올랐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나중에 출판사에 나의 생각을 설명했고
출판사에서 J 패트릭 루이스를 골라 글을 맡겼다. 그림을 먼저 그리고 거기서 텍스트가 나온 것이다.”

―주제는 무엇인가?

“소비, 습관, 향락으로 점철된 일상에 대한 반항이다. 평화와 휴식으로의 초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림책에 아픈 처녀, 형사,
인어공주, 보물섬의 해적 등 문학 속의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독자들에게 그 책들을 읽어보라는 권유이기도 하다.”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의 어린시절은 전쟁 중이었고 좋은 기억이 없다. 그래서 내 책의 독자는 아주 어린 네댓살이 아니라 일곱살부터 아흔살까지다.“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나?

“집안이 어려워 공장에서도 일했다. 스무살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광고물 제작이나 전단에 만화를 그리는 일이었다. 정작 어린이책은
42세부터 그렸다. 90년에 유대인수용소와 독일 소녀의 얘기를 그린 ‘백장미’를 냈다. 어릴 때 피렌체를 지나가는 독일군을 보았는데
그 기억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무엇인가?

“이탈리아 화가라면 누구나 ‘피노키오‘를 그린다. 특히 피렌체 사람으로서 애착이 간다.‘백장미‘는 그려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마지막 휴양지‘는 내 자신이 재미있었다.” 피렌체 지방 키안티에서 딸(28)과 아내와 살고 있는 이노첸티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글을 쓰고 싶지만 글재주가 없어 희망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볼로냐=김진경기자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