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황금도깨비상 수상 작가 – 공지희 인터뷰

[people]‘영모가 사라졌다’로 황금 도깨비상 수상한 공지희

가녀린 팔 다리를 잡아먹을 듯 육중한 책가방. 방과 후 이어지는 빠듯한 스케줄. 과도기적인 교육과 열악한 가정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담아낸 책 한권이 출간됐다. 상처 받은 내면에 다리를 놓는 의사소통의 장(場)이자, 화해를 위한 판타지의 세계다.

“예전에는 애들이 잡초 같았거든요. 밟으면 다시 일어서는 것처럼 아무리 혼내도 금세 명랑해지곤 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맥이 없어요.아이다운 자유분방함이나 탄력을 점차 잃어 가는 것 같습니다.”

2001년 대한매일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동화작가의 길에 들어선 공지희. 초등학교 4학년, 6학년을 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하다. 아무리 부모가 시간이 많아도 자녀들이 바빠서 대화하기가 쉽지 않은 요즘, 부모는 아이들의 스케줄 관리하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다. 아니,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에 보내 주는 게 부모로서의 사명감이라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어해요. TV도 못 보게 하죠.잠도 빨리 자라고 하죠. 숙제하라고 하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주로 시키니까 어른은 편하잖아요. 저한테 그래요. 엄마는 어른이어서 좋겠다고. 그게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이거든요. 그럴 때는 어른이라서 더 힘든 게 있다고 얘기하죠. 특히 정신적으로요. 엄마가 어른이라 이런 점 때문에 화가 나 있다고 얘기하면 막연하게나마 이해하는것 같기는 해요.”

출판사 비룡소가 선정하는 황금도깨비상 장편동화 부문을 수상한 ‘영모가 사라졌다’(비룡소/8,500원)는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과 어른들의 무지몽매한 폭력이 빚어내는 아이들의 상처를 더듬고 있다. 편모 슬하에서 자란 병구의 시선에 비춰진 점수 위주의 교육 제도는 학교 교육의 부실을 고스란히 짚어낸다. 수학점수가 20점에서 50점으로올라도 ‘칭찬을 받기는커녕 틀린 숫자만큼 매를 맞아야 하는 현실’이나, 학원을 다니면서 점수가 오른 시험지를 본 엄마가 ‘왜 내가아닌 학원 수학 선생님을 칭찬하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은 오늘날 100점 위주의 교육실태를 은근히 비튼다. 뿐만 아니다.

아버지의 매를 견디지 못해 가출한 영모의 위치를 채근하는 선생님에게 ‘어른들이 가출하고 비행을 저질러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병구의 불만은 어른들의 잘못된 잣대를 향한 아이들의 속살 없는 시선을 보여준다.

말이 없던 영모가 병구에게 수학 답안지를 보여주면서 싹트기 시작한 이들의 우정은 영모의 가출로 본격적인 판타지의 세계로 접어든다. 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온몸에 피멍이 든 영모는 급기야 집에 들어오지 않고, 병구는 그를 찾아 나선다. 그가 즐겨 찾던 아파트 지하실로. 그곳엔 현실과는 또 다른 세상이 연결되어 있었다.

“의외로 편부ㆍ편모 가정이 늘어나고 있어요. 가정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도 그렇고. 그런 소수의 아이들에게 자꾸 눈길이 가요. 가슴을 울리죠. 이내 소재가 떠오르면 판타지 쪽으로 가닥을 잡아요. 요즘 아버지와 엄마 사이,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가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작가의 손을 빌어 대화의 장으로 끌고 가려는 겁니다. 속내를 더 열어 보자는 취지에서죠. 전문가도 오고, 부모도 오고, 자식도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일종의 여행을 떠나는 겁니다.”

일부에선 판타지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써서 아이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게 그 이유. 하지만 공 작가의 생각은 다르다. 당장 우리나라에선 어색할지 모르지만 세계적인 문학의 흐름상 판타지는 ‘대세’라는 생각에서다. 현실에서 겪는 아이들의 고충을 판타지를 통해 치유하는 것, 그것이 공 작가가 바라는 진정한 의사소통이자, 화해의 장(場)이기 때문이다.

<이현주 기자 lisa@mk.co.kr>

<시티라이프 제5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