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휴양지』의 작가 로베르토 인노첸티 인터뷰

요즘 나오는 그림책들을 유심히 보면 1090, 0100 같은 숫자들이 붙어있다. 10살부터 90살까지, 또는 한살부터 100살까지 볼
수 있다는 의미. 실제로 ‘마지막 휴양지’는 어린이보다는 청소년, 아니 어른들을 겨냥한 그림책이라고 봐야 옳다.

이달초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만난 그림작가 로베르토 인노첸티(62) 역시 “나는 그림책을 만들 때 어린이를 따로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를
대상으로 정하면 상상력이 막힌다”고 말했다.

이 책은 상상력을 잃어버린 중년의 화가가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의 기록이다. 휴양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기묘한 사람들뿐이다.
외다리 선장, 병약하지만 아름다운 아가씨, 무뚝뚝한 비행사…. 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이라면 이들이 누구인지 금세 눈치챌지도 모르겠다. 흔히
명작이라고 불리는 동화의 주인공들. 화가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헤매는 인물들이다.

어른 아이 할것없이 이 책을 좋아하게 된다면 80%는 그림 때문이다. ‘그림책의 렘브란트’로 칭송받을 만큼 환상적인 세밀화를 자신의 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이 이탈리아 화가는 놀랍게도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태어나 제대로 된 미술공부를 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생계를 위해 광고물 만드는 회사와 인쇄소에서 일했다.

어린이책을 만들기 시작한 건 42살 때. 스위스의 유명한 동화작가 에띠엔느의 눈에 띈 그는 ‘호두까기 인형’ ‘크리스마스 캐롤’ ‘피노키오’
같은 명작의 그림을 도맡아 그렸다. (인노첸티가 그린 피노키오는 아동문학평론가들로부터 가장 피노키오다운 피노키오로 꼽힌다.)

어릴 때 선장이 되고 싶었고 그림 그리는 일 외엔 산책을 즐긴다는 그는 그림으로 줄거리를 잡은 다음 글을 만드는 특이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야기가 떠오르면 글보다는 그림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 “전쟁통에 보낸 어린 시절은 우울한 기억 투성이”라는 그는 “그림 하나 없는 전집들을
주워서 읽었던 것이 오히려 그림에 대한 나의 상상력을 북돋워 주었던 것같다”고 말했다.

자신이 주인공이 돼 노쇠해진 상상력을 되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마지막 휴양지’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성화를 보는 듯 클래식하고 농익은
그림. “책을 통해 한없이 바쁜 사람들을 휴식으로 초대하고 싶었다”는 그는 마지막 휴양지를 “또다른 동화책으로 독서의 길을 연장하는 징검다리
책”이라고 소개했다. 2003 볼로냐 라가치 우수상(Ragazzi Honourable) 수상작.

(조선일보/김윤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