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회 황금도깨비상 [장편동화 부문 심사평]


2003년 제10회 황금도깨비상 심사평.

그림동화
본심작

박용희「황금 물고기」
이봉욱「황금 사마귀」
선현경「이모의 결혼식」
김정애「민호와 창호의 변신」
김고은「몸이랑 머리랑」
이수지「동물원」

 


심사평

예ㆍ본심
최승호(시인)

이영경(일러스트레이터)

장편동화
부문 본심작

오미경「금
자야, 금 자야!」
김현주「우리들은 열세 살」
김문주「사막을 걸어간 새」
이은희「비밀의 숲」

 

심사평

본심
김화영(문학평론가)
오정희(소설가)

예심
김경연(아동문학평론가)
황선미(동화작가)

<장편동화
부문 심사평
>

본심
심사평

김화영(문학평론가)

예선을
거쳐 온 4편의 작품들 중에서 단 한 편의 당선작도 뽑아내지 못한 흉년이었다. 성인들의 소설 독자가 격감하는 가운데서도
빼어난 작품들이 없지 않은데 오히려 독자수가 날로 늘어나는 듯한 동화의 창작이 이런 불모 현상을 보이는 것은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심사 대상이 된 4편의 작품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그 실패의 원인 중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요약해 보았다.

첫째,
어린이 소설이라고 해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동화 역시 엄연한 “문학 작품”이다. 따라서 그것은 작품 전체가
겨냥하는 일정한 전략에 따라 선택된 단어와 문장들의 총체다. 문학 작품은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이어 가는
동안 그 언어의 “결”과 무늬, 그리고 긴장과 이완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서술의 과정 자체를 통해서 일정한 정서와
맛을 유발하는 언어적 구조의 정치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 문학 수업, 언어 수업의 기본이 부족한 창작은 반드시
실패하게 마련이다. 형용사나 미사여구를 많이 동원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우선 문장을 읽어 가는
동안 그 특유한 맛을 음미하는 “재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이야기를 서술하는 동안 이 작품을 왜 쓰는가에 대한 막연하나마 통일된 목적이 그 이면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유연하게
통제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면 흔한 권선징악의 교훈에 가려 이야기의 자연스러움과
재미가 손상될 수밖에 없다. 이야기 전체를 뒷받침하는 관념은 가능한 한 구체적인 이야기 뒤에 숨어 있어야 하고
이야기 전체에 복합적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

셋째,
동화작가는 어린이를 우선 교육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어린이가 과연 어떤 존재냐
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관찰과 성찰에 근거한 이야기가 아니면 어린이 독자는 상황과 인간관계의 허구성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많은 경우, 오늘날의 어린이는 어른 못지않게 총명하며 많은 것을 이해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어린이에 대한 관념적 선입견에 매달린 결과 오늘날 우리들의 동화에 유머와 해학, 거기서 오는 경쾌함과
속도감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경직된 엄숙주의가 이야기를 불필요하게 무겁고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판에 박힌 교훈이 아니라 내면에서 울어난 대담한 상상력, 창의력인 것이다.

『금
자야, 금 자야!』는 옛날이야기 특유의 여정(旅程)을 그려 보이고 있지만 때로는 무리하고 때로는 안이한 구성을
보여 준다. 이야기 속에 “꿈”을 활용하는 방식이 너무 나태하다. 돌배의 어머니와 덕구의 어머니 중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이냐 하는 너무 무거운 선택을 어린아이에게 맡겨 놓는 구성은 아무래도 무리다.

『비밀의
숲』에서 액자 속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착상은 아름답고 기발하다. 그러나 작가는 그 착상을 구체적인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살려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잘못된 문장이 많은 작품이며 작년의 황금도깨비상 당선작의
모험을 모방한 것 같은 낌새가 거슬렸다.

『우리들의
열세 살』은 비교적 자연스럽고 무리가 적은 성장소설이다. 경수네 가난한 반 지하 방의 아늑함이 생생하고 비밀 일기,
명예 어사의 착상도 재미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짜임새가 너무 느슨하고 평범하여 무미건조한 느낌이다. 이렇다 할
변화도 긴장도 없는 일상의 연속을 왜 이런 단속적 서술(문단 사이의 잦은 여백)에 의존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마지막까지
당선작으로 고려해 본 작품은『사막을 걸어간 새』였다. 학교에서 따돌림 당한 아이의 비극이라는 주제가 선명하다.
글 쓰는 감각과 능력도 상당한 수준이다. 그러나 너무 잦고 안이한 “꿈”과 교통사고(건널목 교통사고 2회, 자전거와의
충돌 1회)의 활용, 소영과 슬기의 기적처럼 돌연하고 연속적인 소생 등이 이야기 구성의 취약점이다. 제목과 내용
속에서 강박적으로 동원된 “새”와 “깃털”의 이미지 혹은 상징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을 막상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편입시키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사람과 같은 모양인 천사의 어깨에 “날개”를 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몸과 천사의 날개 그것을 어디서 어떻게 이어야 하는 것일까? 예술적 상상력의 역량은
바로 그런 데서 판가름되는 것 아닐까?
작가의 소질이 충분히 있으니 부디 정진하여 좋은 결과를 얻는 날이 오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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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동화
부문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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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
심사평

오정희(소설가)

‘사막을 걸어간 새’는 요즘 어린이들 세계에 만연한 따돌림 즉 ‘왕따’의 문제를 차분한 문체로 형상화시켰다. 말없고
온순한 아이 소영이를 둘러싼 주변 친구들의 성격이 뚜렷이 형상화되어 있는 점, 그리고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가는
소영이를 보면서 소영이를 괴롭혔거나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못했던 친구들 각자 나름대로 갖게 되는 죄의식에 비중을
둔 시도에 작가의 성숙한 시선이 보여 호감이 갔다. 그러나 이혼과 재혼 가정이 많아지고 가정의 형태에 대한 의식이
바뀌고 있는 사회적 현실에서 소영이가 계부와 함께 산다는 것이 ‘왕따’의 이유가 된다는 설정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또한 환상성을 배제한 지극히 사실적인 동화 속에서 앞뒤 설명 없이 끼워 넣은, 닫혀 있는 병 속의 새하얀
깃털이나 이불 위의 깃털 이야기는 황당하게 겉돈다.

‘비밀의
숲’은 액자그림 속의 나라라는, 어린시절 누구라도 한번쯤 사로잡히는 환상적 소재나 극도의 자기비하감에 빠져 있던
못난이 꼬마 소녀가 그림속의 나라에 다녀와서 자신감과 자존심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러나 정작
액자속의 나라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모험담이다. 주인공 인영이가 일곱 살부터 열 살이 되기까지
키가 일 센티도 안 자랐다면 일종의 병이거나 장애일 텐데 그것에 대한 걱정은 엄마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사소한 것 같아도 이러한 것들이 작품의 개연성과 설득력을 약하게 만든다.

‘우리들은
열세 살’은 세칭 ‘강남 아이들’의 생활풍속과 의식을 잘 그려내었다. 그러나 묘사가 너무 단순하고 작품의 진행이
설명조로 일관되어 전체적으로 밋밋하고 탄력성을 잃었다. 분명 3인칭 동화인데 더러 ‘우리’ 라는 일인칭 단어가
끼어드는 부주의함이 거슬렸다. 공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은지의 우울증 발병과 뉴질랜드로의 유학도 전혀 복선이 없이
시종 간단한 설명으로 처리한 것, 교통사고로 인한 황경수의 죽음 등은 안이한 결말이다. 심리묘사가 좀더 치밀하고
섬세했더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금자야, 금자야’는 글의 흐름이 유연하고 문장도 활달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동화라기보다 구수한 입담으로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작품의 구성도 이야기구조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은연중에 작품 전편을 지배하는
권선징악의 교훈도 그러하고 결말 부분을 오동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금빛 열매를 쪼아 먹는 봉황새라는 전설로 맺은
것도 그러하다.

예심에서
올라온 4편의 작품들은 모두 그만그만한 장점과 결정적인 흠을 갖고 있어 수상작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맛깔스럽고 빛나는
문장,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 탄탄한 구성력, 아이들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깊고 따스한 시선이 동화의 필수요건일
것이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한다면 좋은 동화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선작을 내지 못하는 서운함과 미안한 마음으로 내년의 좋은 작품을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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