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전달자, 로이스 로리 – 디스포피아가 재생산되는 이유

시리즈 블루픽션 20 | 로이스 로리 | 옮김 장은수
연령 12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7년 5월 18일 | 정가 14,000원
수상/추천 뉴베리상 외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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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전달자는 플라톤의 ‘국가’, 올더스 헉스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의 청소년판으로 여겨도 좋을 듯싶다.

 

미래의 어느 무채색의 마을, 그곳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과 본능이 삭제된 채 철저한 통제 속에 평화와 안정을 누리며 산다. 그들은 자신들이 통제된 상태에서 살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한다. 평화롭고 안정적인 삶에 만족하고 행복해 한다.

 

이 마을의 가족은 기본적으로 부모와 자녀 둘, 4명으로 구성된다. 부부가 자연임신을 통해 아이를 낳지 않는다. 산모 직업을 가진 여성들에 의해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를 가족으로 맞이한다. 물론 아기도 부부도 위원회가 모든 것을 고려하여 이상적인 조합으로 구성하여 정해준다.

 

옷과 머리는 연령에 따라 디자인과 형태가 정해져 있으며 자전거 역시 탈 수 있는 연령이 따로 정해져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규칙이다. 아무리 사소한 규칙이라도 어기면 그에 따른 벌을 받고 3회 이상이 되면 임무해제 당한다. 철저한 감시로 인해 규칙을 위반할 수도 없지만 혹 그런 일이 있다면 자기 검열과 위원회 감시로 걸려낸다. 심지어 꿈까지 검열한다. 모든 구성원은 아침 식사시간에 밤에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꿈의 내용에 따라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과는 별도로 약을 먹어야 한다. 책도 없다. 안정과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어떠한 변수도 용납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위에서 나열한 책들이 통제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는 요소들을 고루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기억전달자에서 주목하고 싶은 점이 있다. 이 마을이 무채색의 마을이라는 것이다.

 

색과 전체주의적 통제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따져 본다면 기억 전달자가 더 치밀한 체제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색이 없는 세상, 나무도 하늘도 물도 사과도 꽃도 모두 검정색이나 회색 또는 흰색인 세상, 이런 세상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인간에게서 색을 제거한다는 것은 약 복용이나 상호감시 및 자기검열보다 더 강한 통제 수단이 된다. 색은 결국 개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숲의 푸른 빛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하늘의 파란 빛에 빠지고 어떤 사람은 사과의 붉은 빛이 미치도록 좋다면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조너스의 마을은 색을 제거함으로써 색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개성에 대한 인식조차 사전에 삭제한 고도의 도시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무채색의 마을에서 평범한 조너스는 사과에서 빨간색을 보게 되고 자신을 눈을 의심한다. 위원회는 색을 볼 수 있는 조너스의 특별한 능력에 주목하고 12세에 시행되는 작위식에서 조너스에게 기억전달자라는 최고의 작위를 부여한다.

 

이후 조너스는 외부와 차단되어 있는 기억전달자의 집에서 기억을 전달받는 수업을 받게 된다. 이곳에서 조너스는 처음으로 책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고 기억전달자의 집을 빼곡이 메우고 있는 책들이 인류의 역사와 지혜가 담겨있음을 알게 된다. 조너스는 기억전달자로부터 눈, 얼음, 비 등 사라진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에 담긴 의미를 익힌다. 과거 인류가 일으킨 끔직한 전쟁의 공포와 기아와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인류를 보고 공포와 불안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감정인지 경험한다.

 

조너스는 기억전달자와의 대화를 통해 마을 경계 밖의 세계를 동경하게 되고 감정과 개성이 삭제된 채 사는 마을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의 감정대로 개성대로 살고 싶어한다. 더욱이 보모인 아버지가 인구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브리엘의 쌍둥이를 임무해제 시킨 사실과 일정한 나이에 이른 노인들에게 행해지는 임무해제가 무엇인지 알게 된 후 마을을 탈출할 결심을 하게 된다. 기억 전달자의 만류에도 임무해제가 될지도 모를 가브리엘을 데리고 마을의 경계를 넘는다.

 

위원회의 집요한 추적이 있었지만 조너스는 눈 덮인 산속에서 음악소리를 듣게 되고 불을 밝히고 있는 오두막집을 추위속에 바라본다.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상존하고 있는 전쟁의 위협 속에 살고 있는 인류라면 평등과 균형, 안정과 평화가 실현된 세상을 꿈꾸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유토피아와는 사뭇 거리가 멀다. 인간의 본성이 삭제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자아를 실현하지 못하는 세상이 매력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함께 읽은 아이들은 조너스의 마을을 동경하기도 한다. 정말 그 아이들이 조너스의 마을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기억전달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지만 영화 ‘이퀄리브리엄’이 기억전달자와 참 많이 닮아 있어 같이 보기를 권유한다.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문학과 영화가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억 전달자를 읽으면서도 이 질문을 던져본다. 현실의 불합리와 불평등이 개선될 수 없다는 좌절때문이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