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방통 홈쇼핑 – 이분희 글 · 이명애 그림

시리즈 일공일삼 시리즈 79 | 이분희 | 그림 이명애
연령 10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9년 3월 8일 | 정가 13,000원
수상/추천 황금도깨비상 외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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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할아버지가 나가고 난 뒤, 한참을 멍하니 빨랫줄을 바라봤다. 줄에 걸린 옷걸이가 내 신세 같았다. 정말······ 초라하고 없어 보였다. 사업 망했다고 혼자 도망간 아빠나, 날 여기에 두고 간 엄마나, 모두 너무 미웠다. 눈물이 핑 돌았다. 자켓만 옷걸이에 걸고 나머지는 그대로 캐리어 안에 두었다. 엄마는 정신없이 내 짐을 챙긴 모양이었다. 옷도 몇 벌 없었고, 내가 그동안 모은 캐릭터 피규어는 하나도 가져오지 못했다. 아니지······. 가져오면 안 되는 거였다. 이제 내 것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우리 집 곳곳에 붙은 붉은 종이들이 떠올랐다. 엄마는 그것을 ‘딱지’라 불렀다. 내게는 지옥으로 직행하는 붉은 승차권으로 보일 뿐이었다. (p.11)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오랜만에 저희 신통방통 홈쇼핑에서 놀라운! 아주, 아주 놀라운 신상품을 준비했습니다. 채널 고정하세용!”

그러거나 말거나 홈쇼핑에서 내가 살 만한 것도 없고, 살 수도 없었다. 텔레비전을 끄려고 손을 뻗었다. 쇼호스트가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잠깐! 지금 놓치면 고객님들이 엄청나게 후회하실 물건이 대기 중입니다. 일단 마음을 진정하시고 이제부터······.”

조금도 궁금즐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쇼호스트에게는 눈길이 갔다. 뭐랄까? 옷차림도 이상하고 색깔도 촌스러운 데다가 얼굴도 묘하게 이상해 보였다. (p.38)

 

한순간에 어려워진 집안 사정으로 주인공 선우찬은 밤이면 토도독 토독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도깨비 전설이 깃든 독각면, 큰할아버지 집에서 살게 된다. 요금을 내지 않아 스마트폰도 못 쓰고, 인터넷도 안 되는 곳이라니 매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하교 후엔 학원을 다니느라 정신없었던 일상에서 멀어지게 된 찬이는 적막한 시골이 영 낯설기만 하다. 일찍 밤이 찾아오면 할 일도 없고 딱히 가지고 놀 것도 없어서 책이 그리울 정도. 전학 간 학교생활도 기대할 것 없기는 마찬가지다. 처음 교실로 들어서던 날, 찬이는 마치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마음 열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불쑥불쑥 튀어나와 자기에게 말을 건네는 아이들. 중학교 진학 때문에 다들 도시로 전학 가기 바쁜데 되레 시골로 전학 온 아이라니.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 방에서 발견한 배불뚝이 오래된 텔레비전! 찬이는 안방에 놓인 케이블 방송도 나오지 않는 오래되고 뚱뚱한 브라운관 티브이를 무심코 켠다. 그렇게 보게 된 ‘신통방통 홈쇼핑’. 기묘한 얼굴색에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두 쇼호스트는 “여기는 신통! 방통!호우움 쇼핑입니다아아아!”를 번갈아 외치더니 딱 봐도 마법 같은 힘이 담긴 상품을 구매하라고 속삭인다. 투명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도깨비감투, 나뭇잎을 넣으면 돈으로 변하는 나뭇잎 지갑, 원하는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구미호 꼬리까지 도대체 이 이상한 홈쇼핑 채널의 정체는 무엇일까?

2018년 제24회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한 장편동화 <신통방통 홈쇼핑>. 책은 독각면이라 불리는 낯선 시골에 살게 된 소년 선우찬이 도깨비가 쇼호스트인 홈쇼핑 방송의 고객이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신비롭게 담아낸다. 엄마 아빠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꾹꾹 누르면서 도시와는 다른 환경과 새로운 학교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찬이의 다채로운 마음과 소망이 요술이 깃든 도깨비 물건을 주문해 사용하는 모습을 통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착하고 순진해서 답답해 보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강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명석이, 우쭐대고 큰 소리 내는 성격이지만 좋아하는 상대에게는 한없이 여린 대성이, 아이들의 관계를 꿰뚫어 보는 똑 부러지는 주영이까지. 이들 캐릭터에는 친구 관계의 여러 가지 모습이 담겨 있다. 찬이는 명석이와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지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지 못하고 오히려 예상치 못하게 대성이, 주영이와 비밀을 나누게 된다. 모든 비밀을 공유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단단한 우정을 맺는 명석이와 찬이, 그리고 비밀을 통해 상대의 아픔에 공감해 나가는 대성이의 변화된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