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어찌 살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시리즈 일공일삼 시리즈 51 | 김정민 | 그림 이영환
연령 10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9년 7월 30일 | 정가 14,000원
수상/추천 황금도깨비상 외 6건
구매하기
담을 넘은 아이 (보기) 판매가 12,600 (정가 14,000원) 장바구니 바로구매
(10%↓ + 3%P + 2%P)
구매

<담을 넘은 아이>_세상을 어찌 살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동화책

 

<담을 넘은 아이>를 읽고 나니 브리타 테켄트럽의 <빨간 벽>이라는 그림책이 떠올랐다. 빨간 벽에 둘러 쌓여 살아가고 있는 생쥐는 호기심이 많다.

“난 정말 궁금해. 벽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벽 너머의 세상이 궁금한 꼬마 생쥐는 여우와 고양이, 곰과 사자에게 물어보지만 모두 부정적인 대답들뿐이다. 벽 너머의 세상에 대해 궁금해하기보단 현재의 삶에 머물러 있는 것이 편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현재가 주는 만족에서 벗어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현재 자신이 있는 위치가 안전지대에 있으면 더욱 그렇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었던 적이 많다.

하지만 우리의 꼬마 생쥐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빨간 벽 너머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하며 지낸다. 어느 날 빨간 벽 밖에서 새가 한 마리 날아오고 꼬마 생쥐는 새에게 벽 너머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벽 너머의 세상을 본 꼬마 생쥐는 상상도 못하던 색색의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한다.

<담을 넘은 아이>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시대다. 양반과 상민의 엄연한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정당화되던 사회 말이다. 이 이야기는 크게 2가지 축에서 전개된다. 하나는 푸실이의 가족 속에서 벌어지는 남아선호사상, 다른 하나는 푸실이와 효진아씨 사이에서 전개되는 계급 안 갈등 이야기가 맞물려가며 펼쳐진다.

푸실이는 여자로 태어났지만 글을 알고 싶고 책을 읽고 싶은 열망이 강한 아이다. 시대가 그걸 허락하지 않았지만 푸실이는 견고한 벽이 조금이라도 균열이 가도록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두드린다. 반면 푸실이의 동생인 귀손이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특혜를 누린다.

어머니는 연신 집 안을 두리번거리며 푸실이를 불렀다. 집은 조용했다.

“귀손이는?”

“아이들이랑 논다고 나갔어요.”

“뭐 좀 캐왔어?”

어머니 말에 푸실이는 ‘아차!’하는 얼굴이 되었다.

“안 캐왔어?”

푸실이는 대답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책에서는 위와 같은 부분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특히 푸실이의 엄마가 한준 도련님의 젖 유모로 가면서 모든 일은 푸실이의 차지다. 갓난 아기가 죽지 않게 돌보는 일부터, 집안일 하는 것, 산에 가서 나물을 캐와 밥을 차리는 것 등 푸실이의 일은 끝이 없다.

만약 내가 푸실이의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글을 읽겠다는 열망을 유지하며 살 수 있었을까? 아니 어쩌면 책을 읽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그토록 힘든 나날을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앤 라모트는 희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일어나서 옳은 일을 하려고 할 때, 고집스런 희망이 시작된다. 새벽은 올 것이다. 기다리고 보고 일하라. 포기하지 말라”

푸실이는 산에 나물을 캐러 갔다가 <여군자전>이라고 쓰여진 책을 만난다. 그리고 푸실이를 지원해주는 효진 아씨와 효진의 아버님을 만나며 사건을 구성하는 큰 축들이 책 위로 떠오른다. 효진 아씨는 <여군자전>이라는 책을 보고 있는 푸실이에게 제목이 이상하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군자는 학식과 덕이 높은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 군자는 학식과 덕이 높다면 사내든 여인이든 다 쓸 수 있는 말이지. 헌데 우리 조선에서는 여인에게 쓰지 않는다.”

 

유진 초이와 고애신이 나온 <미스터 션사인>을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다. 애신이 초이를 향한 울렁이는 마음을 담아 표현한 시 [연밥 따기 노래]는 허난설헌이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짧지만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허난설헌의 이야기가 <담을 넘은 아이> 위로 겹쳐진다. 조선시대 계급과 관습의 틀에 갇혀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 못한 허난설헌과 <여군자전>을 포함해 많은 책을 썼지만 모든 책이 불태워지고 만 효진이 어머니의 삶이 왜 이리 안타까울까. 그리고 효진이와 푸실이의 삶도 말이다.

푸실이의 엄마를 젖을 먹이는 유모로 데려온 효진이의 할아버지는 철저히 계급과 남녀 차별을 따지는 인물이다. 푸실이 엄마가 갓난아기에게 자신의 손자가 먹을 젖을 나눠줬다고 푸실이 아버지의 곤장을 치고, 또 푸실이가 갓난아기를 데려와 젖을 먹일 것을 예상하고 행동하는 다음 장면에서는 계급과 차별이 인간다움을 어디까지 앗아가는 것인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아프고 분한 마음을 참고 생각을 했느니라. 방법이 없을까. 헌데 의원이 그러더구나. 젖어미에게 약을 먹이라고. 건강한 내 손자에게는 좋은 보약이 되지만 굶기를 밥 먹듯이 하여 허약한 아이는 견디지 못할 거라고.”

대감 마님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푸실이는 대감 마님에게 군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것에 화가 난 대감 마님은 푸실이를 멍석말이를 하려 하는데 이제까지 참고 있던 효진이 아버지가 이야기를 한다.

“혹여 그것이 법이라 하여도 사람의 도리로 옳지 못하거늘 어찌 고치려 아니하십니까? 어린 것의 참혹한 모습을 어찌 외면하십니까? 소자가 읽은 어느 책에도 어린 것이 죽어갈 때 그냥 놔두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은 푸실이가 자신의 동생인 갓난아기에게 ‘해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세상에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지며 끝난다.

“어찌 살 것입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푸실이의 물음에 답을 할 차례다. 조선 시대와 같이 신분과 성별로 구분 짓는 것이 많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차별과 혐오가 존재한다. <빨간 벽>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마음속에 본인이 만들어 놓았던 것처럼, 우리 안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차별과 혐오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걷어내고 서로의 모습이 빛나는 세상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담을 넘은 아이>의 푸실이가 던져 준 “어찌 살 것이냐”는 말을 가슴 속에 담아두고 평생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