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도 한참 지난 2월 말이

연령 4~6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1997년 1월 30일 | 정가 8,000원
수상/추천 칼데콧상 외 2건

입춘도 한참 지난 2월 말이지만 아직도 눈발이 휘날리고 바람이 쌩쌩 붑니다. 3월이 낼모레지만 봄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네요. 벌써부터 새로 산 봄 잠바를 입고 집 밖을 누비고 싶어 했던 우리 집 첫째 민용이에겐 답답한 일이지요. 그래서 봄이 오고 있음을 책으로라도 읽어 주고 싶어 이런 저런 책을 찾던 중에 마침 <코를 킁킁>이란 책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코를 킁킁>은 바람은 쌩쌩 불고 눈까지 내리지만 봄은 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일깨워 줬답니다.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겨울날 곰, 쥐, 달팽이……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어요. 겨울잠을 자다가 갑자기 동물 친구들이 눈을 뜨고 코를 킁킁 거려요. 그러더니 모두들 코를 킁킁거리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어요. 어디로들 달려갈까요? 한참을 달려온 동물들이 모두 멈췄어요. 모두 웃어요. 모두 웃으며 신나게 춤을 춰요. 모두 ‘와!’하고 외쳐요. “눈 속에서 이런 예쁜 꽃이 피다니!”

처음 봤을 땐 흑백으로만 된 것이 다섯 살짜리에겐 너무 어두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괜히 봄이라면 화려한 색깔의 꽃들과 나비들이 날아다녀야 할 것 같은 틀에 박힌 생각 탓이었죠. 그리고 이왕이면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색깔도 계속 접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한몫했지요. 하지만 그림을 새기며 다시 한 번 읽고, 아이에게 읽어 주며 또 한번 읽고 나서는 그것이 어른의 엄마의 좁은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눈 속에서 피어난 노란색 꽃 한 송이에 겨울잠을 자고 있던 동물들이 멀리서 이끌려왔듯이 책에서도 줄 곳 흑백으로 이어지다 등장한 노란색 꽃 한 송이는 숲 속 동물들이 느꼈을 놀라움과 즐거움을 고스란히 전해주더라고요. 색상이 화려한 책들만 보다가 흑백의 책을 읽으니 오히려 노란색이 다른 어떤 책에서보다 더 환하고 선명하게 각인되기도 했고요. 아이의 호기심을 좀 더 자극해 다른 꽃 색깔을 찾아보는 공부의 기회도 가졌답니다. 무엇보다 이런 예쁜 꽃들이 필 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게 어렵지 않았지요. 거기다 책을 읽어 줄때 코를 킁킁하며 동물들의 냄새 맡는 모습을 소리 내서 흉내를 냈더니 더 즐거워하더라고요. 한동안 여러 동물들의 흉내를 내느라 바빴답니다.

이 책을 정말 좋아하게 된 첫째 민용이는 시간마다 읽어달라고 조르다가 요즘은 내용을 외워서 동생에게 읽어 주기까지 한답니다. 글씨도 모르는 애가 책을 정말 읽는 것처럼 읽길래 처음엔 우리아이가 갑자기 천재가 된건가 하고 놀라기도 했지요. 동생 솔이는 오빠가 읽어 주는게 재미있었던지 열심히 듣고는 자기도 흉내를 낸답시고 나름대로 이야기를 꾸며내 책읽는 시늉을 내기도 하고요. 아이들과 겨울잠 자는 동물들, 봄에 대해서, 또 흉내놀이까지 짧은 내용이지만 다양한 이야기와 놀이를 하게 해주며 이번 겨울에 여러 가지 추억까지 만들어준 책이었답니다.
이제 예쁜 꽃들이 피면 책에서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아이들과 꽃을 찾아 나가봐야겠습니다.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누가 더 빨리 찾나 시합하자고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