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닝햄의 독자 사인회에서

시리즈 논픽션 단행본 | 글, 그림 존 버닝햄 | 옮김 엄혜숙
연령 15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6년 6월 30일 | 정가 25,000원

존 버닝햄의 독자 사인회에서 나는 거지였다.
나 개인 적으로도 좋아하는 작가였고 여섯 살 난 딸아이도 버닝햄의 책들을 좋아하는 터라 일찍부터 서둘러 교보문고에서 열리는 사인회를 갔다.
교보로 가는 지하철 속에서 버닝햄의 책을 읽으며 또 그 느낌에 대해 이야기하며 가는 길 내내 우리 모녀 가슴은 존 버닝햄을 실제로 만난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교보의 한 직원이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책을 그 자리에서 사서 사인을 받는 것보단 평소에 좋아했던 책에 사인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아 버닝햄의 책을 몇 권 가져갔는데 아이가 자기가 없는 책을 사고 싶어해 버닝햄의 책을 또 한 권사서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무더운 날씨에 두시간 가까이 기다려 겨우 우리 차례가 왔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 사인회는 불과 몇 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작가와 눈을 맞추며 당신의 책을 좋아한다고 얘기할 수 있고 고맙다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자리였다.
그런 데 지난 8일 교보에서 열린 사인회는 그게 아니었다.
직원들은 우리가 직접 작가에게 책을 건넬 기회도 주지 않고 자신들이 우리 책을 거두어서 작가에게 건넸다.
우리가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 직접 전하는 그 소중한 기회를 그 직원이 무참히 짓밟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냥 저자의 이름만 있는 사인보단 그래도 누구누구 에게란 아이 이름 정도 같이 써 주는 게 아이 마음에 훨씬 오래 남을 것 같아 작가에게 부탁하려는 순간 이번엔 우리 옆에 있던 직원이 사인 받은 책이 오늘 교보에서 산 책이냐 그렇다면 버닝햄의 전시회 티켓을 주겠다고 한다.
작가가 우리 책에 사인을 하고 거네 주는 그 몇 초를 못 참고 그 직원이 입장권 운운하는 바람에 난 내 책을 버닝햄으로부터 어떻게 받았는지 기억에 없다.
입장권을 주는 것을 꼭 사인을 받는 그 작가의 면전에서 그렇게 했어야 하나…… 내 눈에 작가가 신문에 실린 사진과 달리 기분이 무지 안 좋아 보였는데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음사람 차례에 밀려 직원에게 잡아당겨져서 밀려나온 다음 직원에게 항의를 했더니 우리 다음 사람들부턴 조금 여유 있게 하는 눈치다.
작가를 그렇게 보고 만 것이 아쉬워 3시 45분쯤 사인회를 다시 찾았다.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작가를 보기 위해서…
그런데 4시까지 예정이었던 사인회는 이미 끝나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내 몰아쳤으니…
우리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이제는 줄을 서도 사인을 받을 수 없다는 방송이 나왔었다.
그래서 난 그럼 일찍 와서 줄 선 사람들이라도 작가에게 직접 책을 건네고 사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그렇게 인원을 제한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존 버닝햄 !!!

세계적인 작가이다.
그렇지만 그 세계적인 작가는 그 자신이 만든 게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그의 책을 사랑하는 독자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라 난 생각한다.
그런데 이 행사를 주최한 사람들은 그걸 모르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인을 하면 힘들 작가를 너무 배려해서인지 아님 우리 독자를 사인 그냥 해주기만 해주면 감지덕지하는 그런 얼간이들로 치부해서인지…. 저자에게 사인을 받는 면전에서 무료 입장권을 배부하는 몰상식한 직원 때문에 내 손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자가 사인한 책이 들려 있었고 우리 다음 사람이 사인을 받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행사를 할거면 왜 그냥 사인이 인쇄된 책을 팔지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 사인회라고 어린 아이들을 몇 시간씩 줄을 서게 했으면 저자와의 그 몇 초 안 되는 시간은 소중히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내 평생에 한번 인 그 소중한 기회를 무참히 짓밟은 직원 때문에 평생 소중히 간직되어야 할 저자의 사인이 든 책은 어제 들고 간 가방 속에 그냥 담겨져 있다.
어제 그 시간 이후 달 아이와 난 버닝햄의 책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이제는 저자의 사인이 든 그 책을 보기가 싫다.
그 때의 기분이 나의 그 작가의 책보는 기쁨도 빼앗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