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녀 1남. 당연히 막내가

연령 6~9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4년 3월 11일 | 정가 12,000원
수상/추천 에즈라 잭 키츠상 외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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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녀 1남. 당연히 막내가 1남이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그 당시에는 ‘셋만 낳아 잘 기르자’여서 막내가 딸이었어도 더 이상 낳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그 말이 진실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안다. 지금도 그런데 그 때 당시에 아들이 없다는 것은 큰 장애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을 테니까말이다. 어릴 땐 그저 차별없이 똑같이 키운다는 부모님의 생각대로 평등하게 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다시 생각해 보니 맏이와 막내를 똑같이 대우했다는 것은 결국 막내에게 특권이 주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제와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우습다. 그리고 아들이나 대학 보내겠다고 마음 먹고 계신 부모님께 너무나 당연하게 대학가겠다고 말씀드리고 어려운 형편에 자식 셋을 모두 공부시키신 당신들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중국하면 떠올리는 빨간색을 큰 대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내민 루비와의 만남으로 책을 열어 본다. 쌍꺼풀없는 일자형 눈에서 동양적인 냄새가 물씬하다. 가느다란 눈망울에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다. 첫 장에 놓여진 연적과 붓 한 자루. 이것으로 이미 루비의 소원은 대충 짐작이 된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기본적인 사고의 틀이 그리 다르지 않다보니 여자들이 공부를 한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꽤나 똑똑하셨다던 친정 어머니도 공부를 많이 하시지 못했다. 위로 오빠가 네 명에다가 막내 남동생까지 있었으니 고명딸인 엄마의 귀함은 시골에선 빛을 발하지 못했다. 겨우 초등학교 다니고 집에 들어앉으라는 외할아버지를 교회 선생님이 설득해 중학교를 다니셨다는 하셨다. 어머니는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이 평생 가슴에 남는다고 하셨다. 어쩌면 그래서 더 대학 공부를 하겠다는 딸을 말리지 못하셨는지도 모른다.
커다란 집에 사는 루비네 가족은 많을 때는 백여명이 될 정도이다. 젊었을 때 황금산이라 불리는 켈리포니아 금광 굴에 다녀오신 할아버지는 큰 부자이시다. 수 많은 부인과 자손을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앉아계신 모습이 여유러워 보인다. 그 속에 유별나게 빨간 옷을 입고 할아버지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이가 바로 루비이다. 평범한 옷과 일상보다는 축하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빨간 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 그래서 이름조차 루비인 그 아이의 운명은 이미 빨간 색과 함께 도드라지고 있었다. 집에서 가정 교사를 두고 교육을 하는 덕에 당시 중국에서 여자들이 교육받지 못하는 것과 달리 루비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다른 손자들과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루비의 영특함은 그저 뛰어난 머리로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다. 남자 애들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여자로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며 남들이 놀 때, 잘 때 루비는 촛불을 밝혀야했다.
어느날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에 자신이 남자들만을 위하는 집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는 시를 쓴 루비는 선생님께는 칭찬을 듣지만 할아버지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루비와 이야기를 나누시던 할아버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버릇처럼 남자아이에게 노란색 소가 들어있는 월병을 쪼개어 주고 멋진 모양의 홍등을 들리게 했던 것들을 깨닫는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신세계를 경험하신 신세대이시다. 루비의 솔직한 말들을 그저 어린 여자 아이의 시샘으로 생각지 않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준다. 정말 멋진 할아버지다. 자신의 꿈이 대학에 가 공부를 하는 것임을 밝힌 루비에게 할아버지는 많은 것을 배우라고 어루만져 주신다. 그림의 아래 쪽에 얌전히 놓인 빨간 신하나. 문득 전족을 떠올리게 한다. 아름다움을 위해 기형의 발을 만들었던 전족은 그 후에 전족을 금하는 법이 만들어져도 여인들 스스로가 고집스레 전족을 고수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벗어 놓은 신발 한 켤레가 루비가 굴레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설날 아침 루비에게 전해진 두툼한 빨간 봉투는 할아버지의 행운의 돈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좋은 루비의 소원이 담겨 있었다. 루비는 이제 대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루비의 소원은 어느 날 마법처럼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을 둘러싼 관습의 틀을 과감히 벗은 것이다.
딸아이만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좀 더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