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한 초록빛 눈을 빛내면서 자신만만한 포즈로 우리를 노려 보는 건방진 고양이..
건방을 떨게도 생겼다. 남들은 한 번도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 치며 허덕거리는 세상살이를 자그마치 100만 번이나 살았으니…그렇게 오래 살면 세상 어떤 일에도 흥미가 없어지고 모든게 시들하게 느껴질 것 같다.
100만 번의 삶 중에서 왕의 고양이로 호사를 누린 적도 있었고 뱃사공, 서커스, 도둑, 할머니, 어린 여자 아이의 고양이였던 적도 있다. 그리고 그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온전히 자신만의 고양이로 살았던 때도 있다.
나는 몇 번을 살았을까? 전생에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너무 궁금하다. 사람으로 살기도 했고 다른 생물로 살았던 적도 있었겠지…
이 책의 고양이는 고양이로만 100만 번을 살았으니 고양이로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경험해 봤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을 시시하게 자기 발 아래로 여기던 도도한 고양이에게도 강적은 있었다. 바로 하얀 고양이다. 하얀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처럼 100만 번 산 고양이에게 아첨을 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더 하얀 고양이에게 끌렸는지 둘은 사랑을 하게 된다. 새끼도 많이 낳았고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하얀 고양이는 자기 명을 다 살고 죽는다. 100만 번 산 고양이는 그 도도함과 자신감은 어쩌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운다. 그리고 하얀 고양이 옆에서 죽는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세상의 모든 일을 경험한 똑똑함에도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제 아무리 잘난척하는 사람도 그 잘난척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안 되고 강철 갑옷으로 자신을 무장하는 강한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무장해제 되기 마련이다.
사람과 사람, 세상과 세상을 이어주는 것이 사랑인 것 같다. 사랑에는 조건도 이유도 필요없다. 그게 사랑의 힘이고 비밀이다.
서커사단 마술사가 실수로 고양이를 정말 반으로 갈라서 죽었다는 부분과 어린 여자 아이의 등에서 포대기 끈에 목이 졸려 죽었다는 표현은 잔인해서 아이에게 읽어줄 때 멈칫했다. 덜렁거리는 머리라는 표현이 소름끼치게 잔인했다. 아이들과 보는 책인데 돌려서 말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