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나빠져서 책을 지금보

연령 6~7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2년 2월 1일 | 정가 8,500원

‘눈이 나빠져서 책을 지금보다 멀리하게 되거나 책을 안 찾게 되면 내 인생이 얼마나 삭막하고 재미없을까’ 하는 쓸데 없는 걱정을 가끔한다. 그럴 일이 있을까? 정말 이변이 없는 한 없을 것 같다. 이런 걱정을 할만큼 책 읽기는 내게 큰 즐거움이다. 요즘처럼 밖에 쌀쌀한 기운이 돌 때 이불 깔고 앉아 벽에 등 기대고 딸아이와 책을 읽으며 보내는 꿀맛같은 오후는 너무 행복하다.

딸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6.7세 책을 골라서 읽기로 했는데 < 뭐든지 무서워 하는 늑대 >가 딸아이 손에 걸렸다. 늑대가 주인공이지만 동화책에서 흔히, 포악하고 고약스럽게 묘사되는 늑대가 아이라 솜털같은 마음씨를 가진 늑대가 주인공인 책이다. 늑대의 이름도 참 재미있다. 바로 ‘가루가루’다. 꼭 설탕가루같은 느낌이어서 설탕이 생각나는 이름이다. 딸아이는 가래가 생각난다고 하더니 푸하하웃어버린다. 애들은 왜 이렇게 지저분한 거, 냄새나는 거를 말하면서 좋아하는지…참 웃긴다.

가루가루는 겁도 많고 마음씨도 고약스럽지 않은데 늑대라는 이유로, 거칠고 삐죽삐죽한 짙은 회색 털이 몸을 감고 있는 늑대라서 숲 속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 한다. 가루가루가 나타나면 모두들 여기저기로 숨고 난리다. 정작 가루가루는 겁쟁이인데도…가루가루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어둠이다. 그래서 집에 있을 때는 항상 불을 켜두고 베개 밑에도 손전등을 두고 잘 정도다. 이 정도면 우리 아이들보다 더 겁이 많은 진짜 왕 겁쟁이다. 겉모습은 용감하고 날래보이는 늑대가 이런다니, 누가 믿을까? 하지만 가루가루는 그 사실이 더 괴로웠을 것 같다. 아무도 자신이 겁이 많다고 생각을 안 하니까 자기가 자신이 그렇다고 말하기도 뻘줌했을 것이다. 그래도 참 아쉽다. 가루가루가 솔직하게 숲 속 친구들에게 털어놓고 친구가 되자고, 난 어둠이 무서우니까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잠도 자고 놀자고 말했다면 훨씬 빨리, 많은 친구들도 사귀고 함께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도 배웠을 것 같다. 하긴 겁이 많은 성격의 가루가루에게 그것도 녹녹한 일은 아니였을 것 같다.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는 노에미라는 소녀의 방문으로 인해 가루가루는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되는데 정말 기쁜 일이다. 제대로 친구를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노애미는 가루가루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등에 올라 타서 자기 집까지 데려다 달라는 부탁까지 한다. 용감한 소녀다. 가루가루의 등에 올라 탄 노에미의 모습이 정말 신나 보인다. 가루가루의 빙글빙글 거리는 눈동자도 행복에 겨워 보였다.

그 후에 가루가루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끝맺고 있는데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니고 있는지, 어떤 친구들과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고 있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즐거웠다.

생김새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고 속단하는 성급한 내 모습을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똘똘 뭉친 아집의 껍데기에서 벗어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