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깨지면 마음도 닫아

시리즈 비룡소의 그림동화 6 | 글, 그림 존 버닝햄 | 옮김 박상희
연령 6~10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1996년 11월 10일 | 정가 13,000원
수상/추천 문화일보 추천 도서 외 4건
구매하기
지각대장 존 (보기) 판매가 11,700 (정가 13,000원) 장바구니 바로구매
(10%↓ + 3%P + 2%P)
구매

믿음이 깨지면 마음도 닫아 버린다.

너무나 유명한 존 버니행의 지각대장 존을 처음 읽고 난 뒤 그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표지 안쪽을 빼곡히 채운 ‘난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는 글은 반성문이 아니라 오히려 어른들을 믿지 않겠다는 어떤 몸부림같은 걸로 느껴졌다. 그래서 지각대장 존을 읽고 난 뒤 착찹했던 마음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존이 마지막에 선생님의 말을 믿지 않는 장면을 보고는 통쾌함을 느끼겠지만, 어른인 나는 참 부끄러웠다.

자기는 옳다고 생각하고,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선생님은 존이 지각하게 된 까닭을 이야기 해도 도무지 믿지 않는다. 선생님이 그어놓은 선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선을 벗어나면 아무리 진실을 이야기해도 선생님 귀에는 들리리가 없다. 그러나 엉뚱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어른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일로 어른들의 눈밖에 나기도 한다. 아이들은 나름의 생각으로 행동하지만, 결과는 엉뚱하게 빗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존의 선생님처럼 어른들은 결과만 보고 아이들을 판단하고, 몰아세운다. 결과에 담긴 아이들의 마음, 진실을 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사실, 결과만 쫓아간다.

그런데 그렇게 한번 눈밖에 나기 시작하면 그걸 다시 되돌리기란 쉽지 않다.
이미 그런 틀을 가지고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 앞에서는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받아주지 않으면, 믿지 않으면, 이제 어른이 아니라, 아이가 등을 돌린다.
어른들이 말하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설사 그게 진실이라 할지라도 그걸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럼, 어른은 아이를 믿지 못하고, 아이는 어른들의 말이 아무리 훌륭하고 그럴 듯 할지라도 그걸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싶지가 않다. 그러면 관계의 회복, 신뢰의 회복은 참 어렵게 되고,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털복숭이 고릴라에게 붙들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선생님이 존을 보고 도와 달라고 하지만, 그걸 바로 눈 앞에서 보고 있어도 존은 선생님의 말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이 동네 천장에 고릴라 같은 건 살지 않아요, 선생님.” 이렇게 말해 버린다.

자기 기준에서 벗어나면 온통 얼도당토 않다고 치부해버리는 어른들한테는 아이들도 더 이상 자기 마음을 알아달라고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오히려 꽁꽁 닫아버리고, 어른들을 비웃기까지 한다.
종이 가득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가방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고 쓴 반성문에 담긴 존의 마음을 선생님은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