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슬펐을 때가 언제

연령 6~10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4년 10월 30일 | 정가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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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슬펐을 때가 언제 였지? 이제 기억도 나지않는다. 먼지가 쌓인 상자 속, 내가 슬펐던 일들이 고이고이 쌓여있다. 하지만 꺼내기는 싫은 짐들이다. 언제 슬픈 일이 있었는지, 언제적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이젠 생각도 나지 안고 생각 나고 싶지도 않았다. 누구나다 슬픔은 있다. 하지만 그 슬픔을 치유하는 열쇠는 아무도 갖고 있지않다. 슬픔의 상처를 치유할수 있는 열쇠가 있다면 슬픔이 있어도 되지만 지금 우리에겐 열쇠조차 없다. 슬픔을 흘려도 주워담을 수 없고 눈물을 흘려도 닦을 수가 없다. 더 슬퍼지고 더 힘들어지고 내 자신이 연약해지기 때문이다. 연약한 내 자신을 숨기려고는 하지말아라. 언젠가는 베일 속에 가려진 얼굴도 다 드러나게 되있으니말이다. 이 이야기는 나와 비슷함이 있어서 정이 같고 그래서 더더욱 읽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는 사람의 죽음을 전하는 소식이 많아 졌다. 한다리 걸쳐 아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 세상에 어떤 슬픈 일도, 죽음에 비길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사람의 빈자리에 대해서 절실히 깨닫게 되니 나이 탓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건강하기만 하다면, 무사히 살아있기만 한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그야말로 얼마나 절실한 기도인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내가 이루고 있는 가족 안에서는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마이클 로젠’ 작가가 말하는 슬픔의 무게를 제대로 알 리가 없다. 그저 짐작으로 미루어 그 슬픔의 무게를 느낄 뿐인데도 책 장 한 장 한 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는 직접 이런 슬픔을 겪은 것일까?
슬픔이란 무엇일까? 슬픔이나 아픔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감정 가운데 하나이고,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 여기고, ‘때로는 슬픔이 힘이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고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기며 살았다. 하지만 ‘슬픔이 힘이 된다’고 어떻게 감히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싶다. 슬픔을 승화시켜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는 깊은 뜻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슬픔이 힘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감정을 승화시킨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허름한 옷을 입고, 초췌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는 아저씨가 한 없이 쓸쓸하게 걸어가고 있다. 무슨 일을 겪었을까?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같은 부모의 처지이니 자식을 잃는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알기에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한동안 멍하니 가만히 있었다.
아저씨는 이미 나이가 들어서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을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는다. 자기의 슬픔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그냥 마음속으로 혼자서만 생각하고 싶다는 아저씨. 그 슬픔에 무디어지고, 그걸 견디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나쁜 짓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저씨는 그 속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아들 에디가 없어서, 어머니가 안 계셔서도 아니고 그냥 예전과 달라진 모든 것이 슬프다는 생각을 하게 된 아저씨는 슬픔이 주는 상처를 막기 위한 방법을 궁리한다. 날마다 즐거운 일을 한가지씩 해보기도 하고, 나만 슬픈 게 아니라,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슬픔을 간직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마도 어둡고 캄캄한 슬픔이라는 긴 터널의 한 복판을 지나오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슬픔을 피해가지 않고, 슬픔에 정면으로 부딪히니 거기에 관한 글과 시를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슬픔은 어느 곳에서든 나타나 모든 사람에게 온다’는 글을 쓴 아저씨는 이제 자기안의 슬픔 때문에 바라보지 못했던 바깥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어머니를 떠올리고, ‘와하하, 낄낄낄’ 웃어 대며 거리를 지나가는 아이들 속에서 아들 에디를 떠올리기도 한다. 학교 학예회에서 노인 역을 연기하던 에디, 쇼파에서 베개 받기 놀이를 하던 에디, 그리고 에디의 생일……
아들 에디나 자기의 생일이 아니라 누구의 생일이라도 좋아하는 아저씨는 즐겁고 환한 기억들과 함께 생일 케이크를 환하게 밝혀주는 촛불을 을 떠올린다.
한없이 초라해지고 작아져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아빠를 보고 에디가 저 세상에서 무엇이라고 속삭여주었을까? 마지막 장면에 아저씨는 웃고 있지 않지만 억지 웃음을 짓고 있는 첫 장보다 밝은 기운과 힘이 느껴진다. 어둠을 밝혀 주고 있는 촛불처럼…….
아저씨처럼 큰일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슬픔을 마주하게 된다. 자기만의 슬픔에 갇혀 다른 세상을 둘러보지 못할 때도 있고, 길고 긴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 나오기가 힘들어 몸부림을 치기도 한다. 그러나 무슨 감정이든 그것을 피해가거나,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한다면 끝없는 수렁 속에 빠지기가 쉽다. 나에게 일어나는 감정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부딪히다 보면, 슬픔을 견디고 이겨나가는 그런 때가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