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달 위를 걸어 볼 때까지

시리즈 블루픽션 33 | 샤론 크리치 | 옮김 김영진
연령 12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9년 5월 15일 | 정가 17,000원
수상/추천 뉴베리상 외 6건
구매하기
두 개의 달 위를 걷다 (보기) 판매가 15,300 (정가 17,000원) 장바구니 바로구매
(10%↓ + 3%P + 2%P)
구매

샤론 크리치의 작품을 읽은 것은 <루비 홀러> 밖에 없지만, 그 책 한 권으로도 이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갖기에 충분했고 그 책에 대한 서평도 나름 만족스럽게 쓴 적이 있다. 그 외에 아직 읽지 않은 채이지만 작가의 다른 책인 <바다 바다 바다>도 우리 집에 있고, 작가에게 뉴베리 상을 안겨준 <두 개의 달 위를 걷다>는 절판 상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이 정도라면 감히 좋아하는 작가라는 말을 붙여도 되지 않을까? 최근 우연히 <두 개의 달 위를 걷다>가 다시 출간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 책에 끌린 데는 바로 이런 사정이 있었던 것!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살라망카 트리 히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어느 날 집을 떠나 아이다호 주 루이스턴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엄마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늘 사고를 일으키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여행한다고 결정이 나자, 마음속에서 “서둘러, 서둘러!”, “빨리, 빨리!”하고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샐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보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따라 친구 피비의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바로 자신과 엄마의 이야기)가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샐은 엄마가 떠난 뒤 아빠와 함께 바이뱅크스의 목장을 떠나 오하이오 주 유클리드 시로 이사 온다. 샐은 아빠에게 직장을 구해 주고, 이곳까지 이사 오게 한 마거릿 아주머니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데, 그곳에서 기괴하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피비를 새로 사귀게 된다. 그런데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엄격한 피비네 아빠와 자신의 문제에만 열중하는 프루던스와 피비 사이에서 힘들어하던 피비네 엄마는, 정신병자로 보이는 청년이 나타난 뒤 홀연 집을 떠난다. 엄마가 떠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피비의 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샐은 엄마가 떠난 것이 자신과는 무관한 일일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자기 엄마의 인생을 소유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정신병자 청년이 나타난 때부터 피비네 베란다에는 누군가 수상한 쪽지를 놓아둔다. 피비는 그 쪽지를 보고 엄마가 시체(cadaver)라는 성을 지닌 마거릿 아주머니나 정신병자 청년에게 납치되어 살인을 당했다고 생각하는데, 각각의 쪽지는 남의 입장과 처지에 있어 보지 않고 상대방을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된다거나 누구든 자기 문제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소설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제시하며 소설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의 모카신을 신고 두 개의 달 위를 걸어 볼 때까지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지 마세요. (86쪽)

누구나 자신만의 일정표가 있다. (100쪽)

슬픔의 새가 당신의 머리 위를 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당신 머릿속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248쪽)

우물이 말라 봐야 비로소 물의 소중함을 안다. (317쪽)


소설은 크게 두 개의 플롯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현재 여행을 떠나는 샐의 이야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샐이 들려주는 피비의 이야기이다. 물론 그 이야기들에 과거 엄마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가로 세로로 복잡하게 얽히며 소설을 읽는 재미를 한껏 더해 준다. 샐은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여행을 통해, 그리고 피비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결국 여행의 끝에 자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결국 엄마를 찾아 자신들에게로 돌아오도록 하려고 떠난 여행에서 샐은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것은 샐이 바랐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었지만 진정한 엄마와의 만남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사람의 모카신을 신고 두 개의 달 위를 걷는 것, 결국 샐의 여행은 엄마의 모카신을 신고 엄마가 보고 느낀 것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소설은 이야기의 중요한 비밀을 한편으로 감추고, 또 한편으로 곳곳에 그것에 대한 암시를 주고 있다. 이를테면 샐이 거미나 뱀, 말벌 따위는 겁내지 않지만 교통사고, 죽음, 암, 뇌종양, 핵전쟁, 임신부, 소음, 엄한 선생님들, 엘리베이터 등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은, 소설을 읽는 어느 순간 ‘아!’하는 소리와 함께 그 이유를 눈치 채게 된다. 비록 그 순간이 거의 소설이 끝날 무렵이지만 말이다. 이야기를 교묘히 감추는 한편 피비의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 또한 작가의 정교한 계산이 이루어진 장치이다. 피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그런 한편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진실을 깨닫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여행 내내 샐에게 자신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무엇을 보려고 하지 않는지를 스스로 알게 배려하고 있다.

영화에 로드 무비가 있다면, 소설에는 서사 구조와 여행의 시작과 끝이 일치하는 여로형 소설이 있다. <두 개의 달 위를 걷다>는 샐이 엄마의 진실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림 여로형 소설이며, 동시에 여행의 과정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내면적으로 성장해 가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참으로 매력적인 소설을 읽은 나는 한동안 샤론 크리치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