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판을 앞에 두고 시작하는 역사만화 – 초한지

시리즈 이문열 형민우 초한지 1 | 이문열 | 글, 그림 형민우
연령 9세 이상 | 출판사 고릴라박스 | 출간일 2009년 7월 28일 | 정가 15,000원

나의 치우친 만화읽기 탓일까?

작고 흑백의 문고판 일본만화에 익숙한 나에게 교과서 크기에 올칼라판으로, 게다가 역사만화라는 것으로 부담감을 팍팍 주는 [초한지]1편은 그러나 더이상 말이 필요없다는 이문열 평역, 형민우 각색, 그림이라는 매력적인 글귀 덕에 오롯한 기대감까지 갖게 하며 가슴 두근두근 첫장을 펼치게 했다.

책의 구성은 만화 +가볍지않은 해설, 이렇게 두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형민우 작가의 탁월한 점 중에 하나로 인물의 캐릭터화가 있는데 이 만화에서도 두 주인공 항우와 유방의 극렬한 대비를 통한 강렬한 캐릭터화는 앞으로 펼쳐질 초한지의 역사이야기에 확실한 구심점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통은 힘만세고 무식한 캐릭터로 항우를 , 상대적으로 뛰어난 지략을 지닌 군자로 유방을 그린 기존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었던 캐릭터와는 확실한 차별을 느낄수 있다. 물론 앞으로 이야기 전개에 따라서 어차피 다 아는 결과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어쩔수 없는 성격들을 차치하더라도 정말 두 캐릭터는 2권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갖게 한다.

캐릭터 이야기를 좀더 해보자면, 항우와 유방 두진영의 장수와 지략가들의 면면이 기존의 다른 만화와는 다르게 ‘꽃미남’들이 대거 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ㅎㅎㅎ 그런데 좀 우려되는 점은 항우를 비롯한 근육남들에 대한 ‘우직, 단순, 의리’이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같은 대목은 너무 구태의연한 논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앞으로 이점은 좀더 지켜봐야하겠지만 말이다.

만화 뒤에 붙어있는 ‘아는 만큼 재미있는 초한지’의 내용을 보면,

초한지는 어떤 책일까? / 최초의 황제, 진시황제/ 진나라는 어떻게 천하를 통일했을까?/진나라의 지방통치제도, 군현제/ 인류역사최대의 건축물, 만리장성/ 초나라와 한나라의 한판승부/ 고사성어, 과학지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내용으로만 봐서는 중학생들도 세계사중 동양역사, 중국사를 배우는데 좋은 교재가 될것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1권이 스피디한 내용보다는 시작부분에서 일단 소개와 펼침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페이지에 비해 내용이 너무 금방 끝나서 “이거 이야기를 하다 말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에 비해 뒤에 첨가한 부연설명격인 내용은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한다. 과연 이 책을 읽는 학생들 중에 몇명이나 이 좋은 내용을 읽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쯤에서 만화 [초한지]의 독서 연령대가 궁금해진다.

엽기에 가까운 폭력과 잔인함이 아무런 여과없이 전달되는 만화세상에서 이런 생각을 해봤자 뭐하겠냐? 싶지만, 피비린내 나는 칼싸움과 적을 이기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는 논리, 한번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름을 날려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유교주의적 출세관, 충과 효로 무장한 제왕주의가 난무하는 삼국지, 초한지등의 고전을 아무런 비판의식도 가지지 못한 초등학생들에게 ‘이거 세번은 꼭 읽어야 된다’고 하며 들려줄만큼 부모들은 대책없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면서도 염려가 되기도 한다.

다행히 어른들이 읽기에도 부담스럽지않은 형민우 작가의 세련된 작풍이기에 초등학생 자녀들에게 권하고자 한다면 부디 함께 읽어볼 것을 권한다. 만화가 뭘..이라는 생각보다 어쩌면 이 한권의 만화가 내 아이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봐야하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