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서사시

시리즈 무한 도시 2 | 아사노 아츠코 | 옮김 양억관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까멜레옹 | 출간일 2008년 12월 25일 | 정가 6,800원

  작가인 아사노 아츠코는 말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희망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절망에서는 그 어떤 것도 태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이 말이야말로 NO.6 2권의 내용을 압축해주는 문장이 아닌가 싶다. 어제 1권을 읽고 나서 바로 2권을 집어 들었다. 전혀 다른 두 사람 시온과 생쥐가 같이 살게 되었는데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궁금증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희망 따위를 버려야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생쥐와 희망이 있어야 진정으로 살 수 있다는 시온을 자주 부딪치게 만든다. 둘의 대화를 통해 작가는 ‘희망’을 언급함으로써, 앞으로 NO.6의 이야기가 희망을 실현하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저해하려는 사람들의 투쟁이 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절벽 끝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인간의 마음은 투쟁보다는 안식을, 무기보다는 책을, 증오보다는 사랑을 선택하리라 믿는 것은 결코 꿈이 아니다. 희망이다. 나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시온의 대사만 보아도 이렇게 비장하다. 시온은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다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희망 아래, 사람을 급속도로 노화시켜 죽이는 기생벌에 대해 파헤치고자 한다. 벌들의 활동시기인 봄이 되면 일어날 끔찍한 재앙을 막고자 한다. 하지만 생쥐의 입장에서 시온은 여전히 뭘 모르는 샌님이고, 자기 몸 하나 지킬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다. 그런 주제에 세상을 구하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답답한 것이다. 하지만 생쥐는 자신도 모르게 시온에게 익숙해지고 시온의 희망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 와중에 사후가 교정시설로 납치 된다. 아직도 NO.6안에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는다. 생쥐와 시온의 감정을 풍경화처럼 묘사하는 2권을 읽으면 자꾸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시온의 입장이라면 나를 버리고 도태시킨 NO.6를 용서할 수 있을까?’, ‘희망 없는 삶은 무가치한 삶인가?’, ‘희망이 나를 죽게 해도 가치가 있는 것인가?’ 등의 질문이 떠오른다. 하지만 역시 작가의 입장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세상을 본 사람은 흑백의 세상을 꿈꿀 수 없다. 비록 그 가운데, 더럽고 추악한 것을 보게 되더라고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고픈 마음이 있는 것이다. 희망은 그렇게 어두운 면도 ‘희망’을 품고 보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미래를 상상하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애쓰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꿈꿔라, 살아남아라, 이겨 내라고 말한다. 그래서 힘을 얻게 된다.
 

  우리가 어떤 문학작품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는 치유 받고 싶어 하는 욕망도 있는 것 같다. 나와 같은 사람, 혹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 상황을 돌아보고 받아들이고 긍정할 수 있는 여유를 갖기 위한 욕망. 진흙 속의 진주처럼, 오물 속의 꽃처럼 빛나는 시온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는 감동하게 된다. 더러운 서쪽 구역이 단 한 존재로 인해 향기와 빛깔이 있는 곳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이제 사후가 잡혀갔다는 메모를 숨기려는 생쥐와 시온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내가 시온을 믿고 있는 만큼, 그 희망을 응원하는 만큼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희망의 대서사시를 다 읽었을 때, 이 책을 읽지 않았던 때와는 다른 삶을 살아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