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시리즈 블루픽션 41 | 폴 진델 | 옮김 정회성
연령 13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0년 1월 15일 | 정가 9,000원
수상/추천 뉴욕 타임스 선정 외 3건

  폴 진델의 피그맨은 정호승의 수선화에게라는 시를 떠오르게 한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아마 피그맨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 시구가 그렇게 생각나나 보다. 작품 안에서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기묘한 불협화음은 이상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예상외의 화음이 만들어내는 신선한 충격은 감동과 두려움마저 남긴다.

호밀밭의 파수꾼, 초콜릿 전쟁과 함께 미국 청소년 문학의 최대 문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라고 해서 사사실주의적인 작품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 외로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이 강도 높게 다가오지 않았는데, 1968년도에 쓰인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이 작품의 진보성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인 폴 진델은 소수의 문제아가 아닌, 평범하지만 각자의 문제를 안고 있는 대다수 청소년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파해 청소년 독자에게는 공감을 통한 치유를 가능하게 하고, 성인 독자에게는 이해와 관용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다.

작품의 청소년 주인공 존과 로레인은 얼핏 보면 모범생에 가까운 아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소외당하는 존재들이다. 늘 구속하기만하고, 불평하기만 하는 부모님에게서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외로움과 불만으로 가득 찬 십대들은 일탈과 장난으로 그 답답한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아주 잘생기고 똑똑하기까지 한 존은 교내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아이들을 선동해 썩은 사과를 굴리는 장난을 친다. 늘 형과 자신을 비교하고, 잔소리만 해대는 아버지를 꼰대라고 부르고 시치미를 떼며 악의로 가득한 장난을 치는 존과 달리 로레인은 소심하게 감시망을 벗어난다. 남자에 대한 원한으로 가득 차 있는 간호사 엄마와 단 둘이 사는 로레인은, 늘 자신을 헐뜯는 엄마가 싫다. 엄마의 한숨과 악랄한 평가 사이에서 피곤함을 느끼는 로레인에게 존과 피그나티 씨와의 만남은 새롭고 특별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이들의 삶에 즐거움의 씨앗을 뿌린 피그나티 씨는 세 명의 주인공들 중 가장 외로운 인물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는 상실감 속에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인물, 이 인물이 바로 피그나티 씨다. 존과 로레인은 장난전화를 통해 피그나티 씨를 만나게 되고, 서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만만한 어른을 어떻게 한 번 가지고 놀아볼까 궁리하던 조숙한 아이들은 자신들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피그맨과 시간을 보내면서 그의 미소와 선함, 열린 마음에 서서히 끌린다. 아이들이 갖고 싶은 것은 뭐든 사주고,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피그맨의 말에 아이들은 자신들이 그의 삶에서 인정받는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존과 로레인은 그 선택권과 자유를 즐기면서도 소중히 한다. 세상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피그맨과는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 같던 행복은 찰나에 깨지고 만다. 한 번도 누군가를 집에 초대할 수 없었던 존과 로레인이 피그맨의 집에서 파티를 계획하는 장면은 즐거운 고통을 준다. 존과 로레인에게는 피그맨의 집이 조그만 낙원이었다. 전혀 의도치 않았는데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파티 인원, 친구들이 벌이는 위험한 행동은 그들의 행복이 곧 깨지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피그맨은 죽고, 행복은 깨진다. 냉엄한 세상에 홀로 서게 된 아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는다. 이제는 자신들을 사랑해주던 단 한 사람이 없어지고 만 것이다. 그들은 글로나마 피그맨을 추억하려 한다.

피그맨은 소통의 단절 속에 외로움을 겪는 십대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지만 서로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임을 알려준다. 그들이 외로움을 겪는 것은 그들에게 잘못이 있기 때문이 아님을, 다만 그들에게는 기댈 수 있는 피그맨이 없었을 뿐임을 말해준다. 의도치 않은 폭력으로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 평생을 함께 할 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작가는 따뜻한 손길로 청소년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우리가 찾지 못한 피그맨을 가슴에 그리면서, 외로움을 이겨내 보라는 든든한 메시지가 새삼 고맙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긴 여운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묵직한 감동을 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