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시인~ 한국의 닥터수스는 어때요?

연령 5~13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0년 1월 8일 | 정가 11,000원
 

육아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거나 간섭을 한다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적이 없는 남편이 어느 날 내게 슬쩍 한마디를 건넨다.

“나는 아이가 시를 많이 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당신은 이야기 위주의 책만 치중하는 것 같아.” 

감수성은 시를 통해서만 길러지는 게 아니다, 그림책을 옛날 명작동화 수준으로 내려 보지마라, 하며 강하게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서도 그 다음날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서는 아이가 읽을 만한 시를 찾고 있는 나를 만난다. 거의 처음 아이의 책읽기에 대한 관심의 표현인데 묵살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내 골라볼 것도 없는 앙상한 리스트에 휙 닫아버리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말놀이 동시집>이 괜찮아 보였지만 당장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 출간된 <말놀이 동시집5>를 선물 받아 읽게 됐다. 5권까지 시리즈가 나왔다면 생명력이 긴 편이고 그만큼 사랑을 많이 받는 책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주의 깊게 살펴보니 150쪽 가까이 되는, 아이가 읽기에는 제법 두툼한 책이지만 동시 한편과 그림 하나가 마주하고 있는 구성인데 동시도 열줄 내외로 짧다. 금방 눈으로 훑으니 참 아이스러운 유치한 말장난 같다. 그런데 아이에게 읽어주니 아이가 재밌다고 깔깔대더니 금방 말장난에 합류해서 뚝딱 시를 한 편 지어낸다.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는 모음 편/동물 편/자음 편/비유 편/리듬 편 총 다섯 권인데 아이와 함께 소리 내어 읽을 때 그 맛이 제대로 살아난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리듬 편에서는 운율과 말장난 같은 시어들이 만나 아주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한 동시는 역시 ‘똥파리’‘구린내’^^


파리 파리 똥파리/똥이나 먹어라 똥파리

누가 감히 나를 똥파리라고 부르는 거야/나 왕파리야/왕똥파리야

파리파리 왕똥파리/똥이나 먹어라 왕똥파리        


구려 구려/방귀는 구려/싸구려 방귀들/비싼 방귀도 구려/왕자님 방귀도 구려/

공주님 방귀도 구려/의자에 깔았던 방석들도 구려/구려 구려/방귀에 찌든 의자들도 구리다니까


엄마 마음에 들었던 동시는 ‘빨래’^^


긴팔원숭이들이/긴 빨랫방망이를 들고/시냇가에서 빨래를 하네

퍽 퍽 퍼억/빨래를 두드릴 때/긴 빨랫방망이 위로/흰 구름이 흘러가네

누가 구름을 깨끗이 빨았지?


최승호 시인의 글과 윤정주 그림 작가 콤비의 작품을 벌써 여러 번 만났다. ‘누가 웃었니?’, ‘내 껍질을 돌려줘!’도 이 두 사람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그림책이다. 처음 ‘누가 웃었니?’를 읽었을 때 최승호 시인인 줄 몰랐었다. 그 뒤로도 꾸준하게 아동문학 쪽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모양이다.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의 성공(?)이 각종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에게 값진 훈장을 선물한 것 같다. 작가는 지금까지의 동시들이 지나치게 의미를 담아내는데 치중했다고 시를 노래 부르듯 음미하며 아름다운 우리말의 그 맛을 즐기라고 이야기한다. 아주 흥겹게 읽히는 동시집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닥터수스가 떠올랐다. 언어만 다를 뿐이지 운율과 리듬과 말장난이 서로 닮아있다. 


개인적으로 윤정주 씨의 그림을 좋아한다. 거칠고 때로는 부드러운 선이 살아있는 펜화위에 수채 물감을 입힌 그림이랄까. 딱 ‘윤정주 표’라고 할 만큼 특색 있는 그림이다. 이럴 때는 그림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음이 참 아쉽다. 그냥 윤정주의 작품 몇 개 소개해 본다.

 

    <내 껍질 돌려줘!>

    <누가 웃었니?>

    <할까 말까?>                                                                   <<사진 출처는 오픈키드>>

 

‘말놀이 동시집’은 최승호 시인의 시와 윤정주 작가의 그림의 조합으로 서로의 영역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특별한 감수성의 영역인 듯했던 시의 세계… 아이도 엄마도 도전해 보고 싶은 창작에 대한 자신감을 마구마구 솟아나게 만드는 동시집이다. 이 책을 읽고 나더니 순식간에 아이의 시가 여러 편 주렁주렁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