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편견에 당당히 맞선 루비의 소원

연령 6~9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4년 3월 11일 | 정가 12,000원
수상/추천 에즈라 잭 키츠상 외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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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영화나 책 속에서 동양을 이야기 할 때 안개가 한 꺼풀 둘러싼 듯한 신비한 분위기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소룡처럼 휙휙 날렵하게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묘사는 터무니없는 비하나 어이없는 희화로 화를 돋우기도 하고 어이없는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면서 보는 사람을 참 불편하게 만들곤 했었다. 아직 일부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려지기는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이 책 <루비의 소원>은 표지부터 시작해서 전체가 완벽한 중국풍의 그림책이다. 서양 작가가 그렸음에도 어색하거나 어이없는 실수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꼼꼼한 준비와 노고가 엿보이는 그림책이다.


중국인들이 풍요와 행운의 색으로 좋아하는 빨간색 표지 그림은 특별한 날이 아님에도 빨간색 옷을 즐겨입는 ‘루비’라는 이름의 소녀가 문틈으로 빠끔히 내다보는 모습이다. 루비는 중국의 으리으리하게 멋진 저택에 살고 있는데 루비의 할아버지는 미국의 황금산(캘리포니아)에서 부자가 되어 중국으로 돌아와서 옛날 중국부자들이 하던 대로 많은 여자들과 결혼하여 많은 아이들과 손자손녀들을 얻었다. 그 손녀들 중 한명이 바로 루비다. 손자 손녀들이 엄청 많아서 집에 따로 가정교사를 들여 아이들을 교육시켰는데 루비의 실력은 늘 가정교사의 칭찬을 받을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그 시절 중국의 여자 아이들은 읽기나 쓰기를 배우지 않았고 요리와 집안일만 배우면 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루비는 다른 여자아이처럼 공부를 그만두지 않았고 부잣집에 태어나 원하기만 하면 세상 어떤 남자하고도 결혼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것도 전혀 달갑지 않았다. 루비가 원하는 것은 결혼보다는 대학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남자만을 위하는 집에 여자의 몸으로 태어난 슬픔을 적은 루비의 시가 선생님을 통해 할아버지에게 전해진다. 할아버지 앞에 불려간 루비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되고 결국 루비는 할아버지로부터 무엇보다 값진 선물을 받게 된다.


작가는 이야기 끝에 소원을 이룬 루비가 바로 자신의 할머니였음을 밝힌다. 실화임이 그리 놀랄만한 사건은 아니다. 오래지 않은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시기도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인데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롯한 동양권에서는 더 오래도록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온 것이 사실이다. 30여 년 전만 해도 남동생을 위해 대학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고 여성의 사회참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었다. 이 그림책을 페미니즘으로 국한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뿐 아니라 여러 이유로 차별받고, 동등한 출발선에조차 설 수 없게 만드는 사회의 온갖 편견들에 당당하게 맞서서 이긴 값진 인간승리다.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날 세상은 또 다른 편견과 차별이 존재할 것이다. 벽에 부딪혀 무너져 내리지 말고 씩씩하게 헤쳐 나가는 지혜를 루비에게서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