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가든]으로 다시 만나는 아동 문학의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연령 7~13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5년 5월 25일 | 정가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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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알지만,

모두가 제대로 읽은 것 같지는 않은,

19세기 아동 문학의(과연 이게 아동문학이긴 한건가 의심스럽지만-_-) 변혁.

독창적이고 놀라운 판타지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요즘 장안의 화제인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남녀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복선(?)의 키워드로 중요하게 등장하고 있다.

 

 

남자 주인공 김주원의 멋진 집(그 자체가 이미 화보^0^)중에서도

가장 부러웠던,

높은 천정까지 책으로 가득 찬 서재(꺄아~~~ 이런 서재를 가질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에 있던 책 중의 하나로.

 

남주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해답을 찾는 듯 이 책을 뒤적이고,

여주 길라임은 김주원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기 위한 노력으로 이 책을 주문해 읽는 장면이 나온다.

 

왜 하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일까.

 

이미 김주원은 길라임을 보며 자신이 “앨리스 증후군”에 걸린 게 아닌가 라고 의심의 독백을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란 질환이 있다.

망원경을 거꾸로 보는 듯한 신비한 시각적 환영 때문에

매일매일 동화 속을 보게 되는 신기하고도 슬픈 증후군이다. 
내가 그 증후군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아무것도 아닌 저 여자와 있는 모든 순간이 동화가 되는 걸까.”

 

실제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란 

물체가 마치 망원경으로 보는 것처럼 작게 보이거나 크게 보이는 등 왜곡되게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시크릿 가든]은 판타지 장르.

남녀 주인공이 몸이 바뀌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상황을 설정했으며

온갖 비현실적인 장치들이 가득하다.

 

마치 회중시계를 꺼내 보는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 앨리스처럼.

앨리스가 몸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듯이 그들은 서로의 몸이 변하고,

기묘한 동물과 거만하고 우스꽝스러운 여왕과 공작 부인이 펼치는 황당한 이야기는

경박한 대한민국의 재벌과 한류 스타를 희화화하며 재구성된다.

 

어제(12월 18일) 방송분에서는

김주원에게 끌리는 마음과 현실의 벽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길라임의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표현한 듯한 소설 속 대사가 나왔다.

 

앨리스와 체셔 고양이와의 대화 중.

(라임의 목소리로) “내가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말해 줄래?”

(주원의 목소리로)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려 있지.”

 

작가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염두에 두고 대본을 쓴 듯한 설정은,

아무래도 진정 판타지로 끝맺음을 할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이 든다.

항간에 떠도는 새드 앤딩설보다 더 무섭다-_-+

 

결국,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를 가진 그들만의 “이상한 나라”에 떨어져 헤메는 길라임이

깨어나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이렇게 끝날 것인가?

 

 

이제 책 이야기를 해보자.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너무나도 낯설다.

사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앨리스야말로 요약본이었던 것.

 

완역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은유적인 기호와 사회 풍자, 고난이도의 말장난으로 풍부한

“어른들을 위한 고전”이었다.

 

저자 루이스 캐럴이 로리타 컴플렉스(소아기호증-나이 어린 소녀들에게 빠져드는)였다는 가쉽도 있지만,

뭐, 그래서 성인용이란 뜻은 아니고^^;

 

온갖 역설과 부조리함, 유머와 환상이 가득한 원더랜드가 시사하는 것,

그리고 그 이상한 나라를 헤메면서도

결코 순종적이거나 소극적이지 않고

때로는 건방지기까지 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캐릭터 앨리스.

 

19세기에 이렇게 싸가지 없고 제멋대로인 어린 소녀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았을 듯.

루이스 캐럴은 자신이 사랑한 소녀 앨리스에게 자신의 작품에서나마 자유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

 

혹은… 아이들의 눈으로 본 어른들의 세상은,

“이상한 나라”처럼 부당하고 어이없는 것이 아닐까, 라고도 반성해본다.

 

실제로 루이스 캐럴과 함께 작업했던 삽화가 존 테니얼의 그림과 함께 보는 재미가 있고.

쉽게 번역하려고 무진장 애쓴 듯한(말놀이 부분 번역이 만만치 않았을 터) 이 소설은,

잊혀진 동화에 대한 그리움으로 책을 펼치는 어른에게도,

앨리스를 처음 접하는 아이에게도 부담없이 다가간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어른들에겐 여러번 읽어도 읽을 때마다 그 의미와 상징이 새롭게 다가오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비판이 될지,

나의 숨겨진 욕망과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될지,

뻔뻔하고 가식적인 타인의 모습 뒤에 숨겨진 상처를 찾아내게 될지,

어쨌든 환상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즐겁지 아니한가.

 

아이들에게는 거칠 것이 없는 상상력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자

어른들에게는 비현실적인 도피처가 될 수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9세기에 쓰여졌지만

21세기에도 사랑받는 어른들을 위한 고전이라고 할 밖에는.

 

“넌 누구냐?”

이것은 대화를 시작하기에 썩 좋은 말은 아니었다.

앨리스는 조금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저,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제가 누구인지 알았거든요.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래도 여러 번 바뀐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