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는 옛이야기일 뿐

시리즈 비룡소 전래동화 16 | 이현주 | 그림 이수아
연령 5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1년 1월 25일 | 정가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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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된 삼 형제 (보기) 판매가 10,800 (정가 12,000원) 장바구니 바로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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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제법 크다보니 옛이야기 그림책은 자주 보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많이 읽어주고 들려주고 해서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아서 더 그런 것 같다. 비슷비슷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보니 그게 그거 같고 결론이야 이미 다 나 있는 것이고 말이다. 이런 경우엔 그림이 마음을 끌기고 한다. 독특한 그림이 이야기의 맛을 살려주면 또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이영경님의 ‘아씨방 일곱 동무’가 그랬고 한병호님의 ‘도깨비와 범벅장수’가 그랬다.

처음 이 책을 보면서 별 감흥이 없었다. ‘아, 이 얘기 이렇게 이렇게 이런 얘기지.’ 스토리를 너무도 빤히 알고 있기에. 그런데 첫 장을 펼치면서 정신이 확 들었다.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방 한 쪽에 몰려 앉은 가족들이 천장의 굴비 한 마리를 쳐다보며 밥을 먹고 있는 장면이었다. 보통 수평적인 구조의 그림 전개로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그림을 앞쪽에서 지켜보는 형태의 그림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건 첫 장면부터 파격이다. 궁금한 마음에 다음 장의 그림을 휘리릭 넘겨보니 그림을 그리신 분의 시선이 독특하다싶었다. 달팽이집 형태로 전개한 모양새며 스크래치를 이용한 그림이며 네모난 펼침면의 활용이 신선했다.

내용면에서 살펴보면 세상에 부자가 되는 방법은 참 여러 가지다. 부모님의 재산을 물려 받아 쉽게 부자가 되기도 하고 한 푼 두 푼 태산처럼 모아 부자가 되기도 한다. 그럼 이 삼형제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첫 장면부터 부자부모로부터의 상속을 아님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병세가 드러나는 아버지는 식사 시간임에도 밥상에 함께 하지 못했다. 솥단지라도 삼킬만한 나이의 세 아들 앞에 놓여진 밥 공기는 더 작아보이기만 한다. 천장에 매달아 놓은 굴비도 어느 적에 매단 건지 말라비틀어졌다. 그래도 이들에겐 자신의 입에 밥을 넣기보다 병든 아버지의 입에 죽 한 수저 떠 넣어 드리는 일이 먼저다. 굳이 효자라 일컫지 않아도 효성스런 삼형제임을 알수 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여기저기 긁어모은 얼마 되지 않은 유산을 똑같이 분배해 각자 흩어져 잘살게 되면 다시 모여 살기로 하고 세상 구경을 떠나는 삼형제. 처한 상황에 비해 삼형제의 얼굴이 너무 천진난만하다. 그들 앞에 놓여진 노랑과 주황이 화려한 밭고랑. 그들 앞에 놓여진 삶이 술술 잘 풀려감을 예시해 주는 건 아닐런지.

유산으로 삼형제가 산 것들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기함할 물건이다. 지팡이, 북, 장구를 각각 전재산인 은돈 한 냥을 주고 산다. 일이 잘 풀렸기에 망정이지 손가락질 당하기에 딱이다.

각자 전재산과 바꾼 물건으로 부자가 된 이야기를 읽으며 왠지 찜찜한 기분은 뭔지. 아마도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었나 보다. 어쩌다 귀동냥한 도깨비의 말로 부자 영감의 딸 병을 고쳐주고 결혼까지 한 큰 형, 춤추는 호랑이를 임금님을 팔아 장사꾼의 금은보화를 받아 챙긴 막내. 그나마 북소리에 놀란 호랑이들 덕분에 호랑이 가죽을 얻어 부자가 된 둘째는 그나마 낫다. 그들이 부자가 된 방법은 노동의 댓가가 아니다. 상황에 따른 기지 나쁘게 말하만 순간의 잔머리로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요즘 아이들의 대부분이 부자가 되는 꿈을 꾸는데 부자가 되는 일이 단순히 순간적인 잔꾀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을런지.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옛이야기는 옛이야기일뿐 오해하지 말자. 그래도 씁쓸한 마음은 여전하다. 활기넘치는 그림에 그나마 그마음이 조금은 누구러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