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써 유대인으로써의 틀을 깨다.

시리즈 즐거운 지식 22 | 시모나 체라토 | 그림 안나 쿠르티 | 옮김 이승수 | 감수 이연주
연령 12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1년 8월 17일 | 정가 11,000원

여성과학자를 한번 생각해보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대부분 마리퀴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를 생각해봐야한다. 여자여서 교수가 되기 어려웠고 보수도 없이 숨어 지내면서 과학의 역사를 이어온, 유대인이어서 나치를 피해 아늑한 안식처를 버리고 올 수밖에 없는 그녀, 리제 마이트너 말이다.

1878년 빈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때부터 과학과 수학에 재능을 보여 빈 대학에 입학하여 다방면의 과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베를린대학에 가 막스플랑크를 만나고 그녀의 친구가 될 오토한을 만났다. 화학연구소는 여자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지하실에서 눈에 띄지 않게 있어야 했지만 오토한과 함께 연구를 계속하여 열약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리제는 새로운 방사성 원소인 ‘프로트악티늄’을 찾아냈다. 여교수가 되고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2차 세계대전,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유대인이었던 그녀는 독일을 떠나고 스웨덴으로 가 연구를 계속한다. 오토한과 함께 핵분열을 발견했지만 오토한의 배신으로 오토한 혼자 노벨상을 수상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제는 1950년까지 연구를 하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1966년 엔리코페르미 상을 받고 1968년 10월 27일 죽음을 맞이하였다.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물리학에 열정을 모두 쏟은 리제. 유대인의, 여자의, 어려운 일들도 많았지만 리제는 꿋꿋하게 연구에 매진했고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원자폭탄제조를 반대하였다. 나였더라면 그런 힘들 길을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부당하게 대우를 받고 여자라서 무시를 받았더라면 이 직업 말고 다른 직업을 선택하겠어. 하며 다른 직업으로 갈아탔을지도 모른다. 카이저 빌헬름 화학연구소의 물리학 교수였던 그녀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을 떠나는 기차를 탔을 때 얼마나 많은 아픔, 아쉬움, 두려움을 느꼈는가. 친한 동료들 또한 유대인이 연구소에 있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연구소를 떠나달라고 바랄 때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 듯 했는가. 그럼에도 그녀는 열정이 넘치는 과학도였다. 물리학을 연구하고 실험실을 가질 수만 있다면 마구간에서라도 일할 수 있다고 하였다. 무엇이 이렇게 리제를 강하게 만들었는가. 그것은 아마 신념일 것이다. 리제는 과학적인 진실을 파헤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원소나 과학적 발견을 알리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 강한 신념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여자의 편견에도 물러서지 않고 물리학의 눈부신 발전에 기여하게 만들었다.

리제에게는 많은 동료들이 있었다. 진정한 동료도 있었고 상처를 준 동료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토 한이 정말로 미웠다. 그도 물론 외부세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고 해도 어떻게 같이 연구하고 증명한 핵분열을 오로지 자신의 공으로 넘길 수가 있는가. 보어가 아무리 리제가 먼저 설명했다고 밝히려 했지만 오토는 논문에서조차 리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30년 넘는 우정이란 이런 것인가. 만일 내 친 구중에 오토 한이라는 얍삽한 녀석이 있다면 난 있는 힘을 다 동원하여 그를 망신 주었을 것이다. 그의 편지를 공개하는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리제는 독일과학계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리제는 오토한을 계속 원망하지 않았고 용서하는 것도 잊는 것도 힘들지만 과거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이어갔다.

“한 번도 인간성을 잃은 적이 없는 물리학자”

훗날 리제의 업적을 평가받아 새로운 인공원소에 마이트너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리제는 마리퀴리, 이젠 졸리오퀴리 등 수많은 여성과학자중 한명이 되어 여성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편견을 줄이도록 노력했다. 그녀의 공로로 많은 여성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좋은 환경에서 맘껏 과학에 대해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 이상 마리퀴리 못지않은 나만의 우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