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그냥 해보는 거야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1년 10월 1일 | 정가 11,000원
수상/추천 블루픽션상 외 4건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목표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그러지 않는 삶은 분명한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또한 목표가 부재한 삶에 대한 의미부여성이 설득력을 잃듯이 이에 반한 목표지향적이고 명확한 삶의 가치에 대한 다양한 미사여구의 찬사들은 즐비하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고래적부터 바로 이러한 목표의식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당위성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을뿐 아니라 그러한 삶을 인생의 지고지순한 가치로 판단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나 요즘처럼 미래에 대한 불명확성과 변화무쌍한 미래의 삶에 대해서 바로 이러한 ‘목표의식’이 없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위험한 삶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라고 여겨지는게 세상 풍토이기도 하다.

특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겐 더욱더 ‘목표의식’이 필요하며 청소년기에 정해진 목표의식이 어떤것이냐에 따라 나머지 삶의 척도를 예측할 수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SKY, 서성한, 중경외시 무슨 고사성어 같은 말이지만 실은 대한민국 대학들을 서열화 하여 나타낸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열화를 기반으로 우리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목표의식을 알뜰하게 햠양시키고 있고 이에 순응하여 청소년들의 목표의식 또한 정해져 버렸다고 하면 너무나 지나친 비약일까…

컬링는 동계스포츠 종목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는 종목중에 하나로 가끔 올림픽경기시즌때나 TV방송을 통해서 한번쯤 스쳐가는 낯선 운동종목으로 비인기 종목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경기의 규칙이나 그 기원등 컬링전반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거니와 굳이 인기있는 종목도 많고 많은데 굳이 이런 종목에까지 신경써야할 당위성 또한 없는 종목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자면 여타 인기 스포츠 종목에 비해서 참여자나 관전자 양측 모두에게 별다른 목표의식을 부여하지 못할 소지가 다분한 그저그런 종목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냥, 컬링>는 생소한 컬링이라는 운동을 통해서 우정과 가치관 그리고 삶에 대한 깨달음을 다루고 있는 흔한 표현으로 성장소설에 분류되는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대게의 플롯이 대동소이하듯이 이번 작품에도 친구들간의 끈끈한 우정 그리고 가정과 학교생활의 갈등과 해소등 성장소설이 갖추어야할 덕목은 거의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영화 <국가대표>컨셉을 방불케 하는 내러티브는 스키점프를 컬링으로 대치한 것 같은 느낌마저 주고 있어 겉으로 표출되는 내러티브의 급반전등을 기대하기도 힘든게 사실인 평범한 스터럭쳐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성장소설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러한 구조적 표현적 내면적 평이성보다 끌리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목표의식’의 부재라는 점에서 여타 성장소설과는 차별화 되면서 눈에 확 띄인다.

대게의 문학작품 특히 독자층을 청소년을 상대로 하는 작품의 경우 그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교훈적인 요소나 도덕적 가치관이 반영되기 마련이고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서 청소년층에게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만드는 구도가 정형화되어 있다는 면에서 이번 <그냥, 컬링>는 이러한 상식적인 구도를 벗어난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매력적인 면으로 다가온다고 해야겠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아무도 처다보지 않는 심지어 웃음마저 자아내게 하는 이상하고 어리버리하게만 보이는 컬링이라는 운동을 통해서 작가는 요즘 우리 청소년들에게 만연되어 있는 왜곡된 ‘목표의식’에 대한 반기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컬링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하고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가고 적어도 게임을 통해서 승부욕이라도 고취할 수 있는 그런 목표의식은 전혀 보이지 않고 단지 컬링을 하고 빠져드는 이유가 ‘그냥’이라는 표현으로 그동안 기성세대에 의해 획일화된 목표의식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고차원적이고 자기희생을 통해서 인류애를 고취하는 틀에 박히고 이율배반적인 그러한 목표의식을 우리는 그동안 우리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인 청소년들에게 강요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의식으로 인해 과연 인류의 삶이 고차원적이고 자기희색적이며 인류애를 고취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냐는 물음에 과연 누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으라차,며루치,산적,박카스처럼 흐릿한 목표의식을 가지면 대학진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그 이후 이들의 삶이 평탄하지 못하리라는 예측은 절로 가게 된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올바르다고 맹종하고 있는 ‘목표의식’이 과연 정말 정답일까라는 점과 뭐 특별한 이유없이 그냥 좋아서라는 미덥지 않게 보이는 사고가 틀렸다고 단정해야만 하는 현실속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번쯤은 그냥 좋아서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필요한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특히 미래의 축이라 할 수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겐 더욱더 절실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