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이라는 단어 속에 숨긴 소년들의 이야기들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1년 10월 1일 | 정가 11,000원
수상/추천 블루픽션상 외 4건

  왜 하냐고? 그냥! ‘그냥’이라는 말은 정말 성의없는 대답으로 들린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이 성의없는 ‘그냥’이라는 표현을 마구 사용한다. 급기야 팀이름에 ‘그냥’을 붙여버리기로 한 아이들이 등장했으니 이 책의 아이들이 결성한 이른바 ‘그냥 컬링팀’이다. 이름조차 생소한 이 ‘컬링’이라는 스포츠에 ‘그냥!’ 죽자고 매달려보는 네명의 아이들은 주인공이 될만한 사연이라고는 없는 소외된 존재들이다.

  제 2의 김연아를 꿈꾸는 동생 연화를 위한 생과일쥬스 심부름이나 하면서, 엄마의 극성스런 뒷바라지는 어릴 적에 이미 포기시킨 차을하는 미지의 선수를 스카웃하러 다니는 두 사람의 눈에 띄게 된다. 이유인즉 으랏차차 군의 비질 동작이 우아하다는 엉뚱한 소리를 한다. 차을하를 스카웃하기 위해 은근한 구슬림과 위협의 분위기를 풍기는 2인조는  야구선수를 꿈꾸었으나 학교 이사장 아들의 앞을 가로막는 존재로 미운 털이 박혀 야구를 그만두게 된 강산(별명 산적), 그리고 강산과 함께 야구부였다가 역시 쫓겨난 서인용(별명 성인용)이다. 남들 눈에 띌 것이 하나 없는 이 셋이 올림픽 시즌에나 잠깐 TV를 통해 볼 수 있는 컬링을 하게 된다. 존재감없는 이들끼리 비주류인 운동에 전문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이 세명의 마이너들의 이야기에 끼어드는 주변인물들도 다 그렇다. 늘 추리닝이나 입고 궁상맞게 컬링장에 나타나는 ‘명목상은 고시생’인 금보형. 주말마다 올라와서 소파와 일체가 되어 졸고 있는 차을하의 아빠 차차장님, 귀농이 꿈인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서 콜라도 못먹고 사는 컬링팀의 제 4의 멤버 박화수(박카스) 등이다.  

  이야기는 컬링 경기용어를 따서 리드, 세컨, 서드, 스킵, 컬링의 다섯가지 장으로 나뉘며 진행된다. 차을하만큼이나 컬링이라는 스포츠에 대해 알 길이 없는 독자는 차을하가 줏어듣는 만큼만 알 수 있을 따름이다. 컬링이라는 전혀 뜻밖의 경기를 배우게 되고 왠지 위협적인 구석이 있지만 알고 보면 의리가 철철 넘치는 두 친구들과 우정이 깊어지면서 차을하의 삶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은 차을하가 ‘절대 닮고 싶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아버지인데 어머니 몰래 용돈을 찔러 주며 응원해준다. 제 2의 김연아를 향한 삶에 염증을 느낀 연화도 차을하의 삶의 변화를 엿보고 끼어들기 시작한다.

  목표도 없이 그저 그런 나날을 보내던 청춘들에 작은 불꽃이 일고, 자신의 몸을 불사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도 자신들의 열정 그 자체만으로 삶을 바꿀 동력을 만들어낸다. 왜 컬링이 그렇게 좋은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컬링의 매력에 빠져서 빙판위에서 엎어지고 넘어지고 달리면서, 인생의 실패와 도전을 그대로 재현해주는 듯한 얼음판의 교훈을 어느새 체득하면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

 

‘그런데 컬링은 말이다. 지금 떠올리고 있냐? 깨작깨작, 궁상맞지. 그래 폼이 안 난다는 거야. 그러니까 말하자면 ‘루저의 스포츠’지.”(p.229)

 

  아이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면서 독자도 책의 후반부에서는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너 스위핑 장난 아니더라. 완전 빠르던데.”

내 말에 박카스가 수줍게 대답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뭐.”

“그냥.”

“어, 그냥.”(p.268)

 

“왜 하는 거냐, 컬링?”

“그게 …… 중요하냐?”

“듣고 싶다, 왜냐?”

“그냥.”

“그. 냥.”

“숨통이 툭 트이더라. 왠지 모르지만, 그냥.”(p.274)

 

  박카스에게 ‘그냥’은 내성적인 자신을 숨기기 위한 편리한 단어이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수많은 말들이 ‘그냥’ 속에 들어있다. 박카스를 아는 사람만이 그의 ‘그냥’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산적에게도 ‘그냥’은 의미 깊다.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해방감을 설명하는 데 ‘그냥’이라는 말을 쓴다. ‘그냥’은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냥’이 아니다. ‘그냥’은 내면을 숨길 수 있는 단어, 알 수 없는 열정의 표현, 감당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감정의 표현, 무조건적으로 불사르고 싶은 의지의 다른 표현 등등 복합적이다. 이 모든 의미들이 알고 싶다면 ‘그냥!’ 한번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