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기다림

연령 5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1년 6월 10일 | 정가 6,500원

수지 모건스턴. 예사롭지 않은 이름이지만 언젠가 그녀의 사진을 보고 빵 터졌었다. 둥글둥글한 이웃집 아줌마같은 그녀의 모습 때문이다. 왠지 이름만 들으면 금발의 날씬한 코쟁이 아가씨의 느낌인데 완전 예상을 뒤엎는 그녀의 모습이 우습다기 보다 너무도 친근했다. 그러면서 딸과 주고 받는 이야기들을 쓴 책을 읽으며 나와 내 딸 사이를 돌아보기도 했었다.

그런 그녀의 새로운 책 ‘엠마의 바나나 목욕’은 대상 연령이 쭈욱 내려간 듯해서 낯설었다. 일단은 바나나 빛깔의 노랑이 이 이야기가 결코 무겁지 않음을 예고해 주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밝은 머리 색깔의 단발머리 소녀 엠마. 딱 우리 작은 아이의 어릴 적 모습이다. 목욕하는 것 좋아하는거며 냄새에 민감한 코, 작은 물건을 비닐 봉투마다 넣어두고 혼자만의 보물로 여기는 모습하며 딸아이 어릴 적 모습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그런 엠마 곁을 늘 지켜주는 엄마. 어린 딸아이가 혼자 목욕하는 것이 위험해서이기도 할 것이지만 왠지 어린양 심한 엠마의 요구 때문이 아닐까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런 엠마의 어린양의 받아주는 엄마의 모습이 친절해 보임은 내가 그렇지 못해서이지 싶은 생각이 든다. 전화를 받느라 자리를 비우는 엄마의 부재도 참지 못하는 엠마는 배가 고픈게 아니라 엄마의 사랑이 고픈게다. 나보다 더 친절한 엄마인데도 사랑이 고프니 우리 딸은 더 허기졌었겠지.

욕조 안에서 바나나를 먹겠다고 심통을 부리는 엠마에게 엄마는 바나나를 준다. 엠마가 어질러 놓은 장난감들을 치우며 돌아보는 엄마의 표정엔 아이에게 설득 당했다기보다 아이에게 실패를 경험하게 하려는 기다림이 보인다. 엄마의 예고대로 엠마는 바나나를 욕조 속에 빠뜨리고 엠마의 목욕은 끝이난다. 욕조에서 나오는 엠마는 마치 자신의 실수를 정당화시키듯 자신의 살이 보들보들 너무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거기에 ‘바나나 목욕을 해서 예뻐졌다’고 대꾸하는 엄마의 말투가 그리 꼬이게 읽히지 않는다. 이제 애들을 다 키워놓고 돌아보니 이런 엠마와 엄마의 신경전이 별거 아님을 알기 때문일게다. 그런데 애들을 키우던 그 때 당시엔 왜그리 욱하며 키웠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 아이를 바르고 잘 키우겠다는 욕심이 앞서서였을 것이다.

비록 바나나가 욕조 물 빠지는 구멍을 막는 사태가 벌어질테지만 바나나향 그윽한 물에서 물놀이를 하고나와 행복한 표정을 짓는 엠마를 보니 그리 엠마의 실수가 그리 밉지 않다. 비록 피부 미용과 향기에 그만인 바나나 목욕이지만 엠마는 다음 번에 욕조에서 바나나를 먹겠다고 고집 피우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사과를 먹겠다고 고집을 안 피우리라 장담을 못하겠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이렇게 잘 못하고 실수하면서 하나하나 내 경험의 아이콘을 쌓아나간다. 단지 곁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늘 땅 바다만큼의 마음으로 지켜봐주는 것이란 걸 이제는 안다. 부모도 자신의 아이를 키우며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손자손녀를 키우며 너그러워지는 걸 보면 내 생각이 틀리진 않을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