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백해무익한 소모전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시리즈 비룡소의 그림동화 91 | 글, 그림 아니타 로벨 | 옮김 장은수
연령 6~7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3년 2월 17일 | 정가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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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감자 밭 (보기) 판매가 9,900 (정가 11,000원) 장바구니 바로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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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그득한 도서관 서가를 돌아다니다 익숙한 제목의 책들 사이에 숨어있거나 내가 미처 몰랐던 괜찮은 책을 발견하면 혼자 뿌듯해하곤 한다. 그림책을 몇 년 읽었더니 도서관 책들은 읽었거나 혹은 읽지 않았더라도 알고 있는 책들이 많아서 요즘은 이런 횡재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읽는 보편적 감성을 만족시키는 책들보다 요란하게 소문나지는 않았지만 잔잔하게 오래 남는 느낌 좋은 그림책들을 찾아내는 작업은 보물찾기처럼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어머니의 감자밭>은 한가로운 평일 오전 도서관에서 그렇게 발견한 책이다. 펜으로 그린 그림과 빨강과 파랑이 주조를 이루는 단순한 색깔로 미루어 오래된 그림책 냄새를 풍기는데다 아니타 로벨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개구리와 두꺼비’시리즈의 아놀드 로벨이 스쳐지나갔는데 반갑게도 작가 소개글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아니타 로벨은 칼데콧상과 뉴베리상을 수상한 아놀드 로벨의 아내이자 함께 그림책 작업을 한 파트너이다. 남편인 아놀드 로벨과 함께 작업한 작품도 상당수 있고 유명한 어린이책 작가인 남편의 파트너였지만 아니타 로벨 또한 칼데콧이 인정한 실력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아니타 로벨이 아놀드 로벨의 아내라는 사실보다 더 시선을 끄는 이력이 있다. 폴란드 태생인 아니타 로벨. 유태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니타 로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독일군에게 잡혔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런 그녀의 배경 때문인지 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그녀가 들려주는 전쟁이야기가 어떤 빛깔일지 궁금했다. <어머니의 감자밭>은 휩쓸고 지난 자리엔 황폐함만이 남는 전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빨강과 파랑으로 대조를 이루는 두 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지만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감자밭을 일구고 사는 아주머니와 두 아들의 이야기다.

 

집 주변에 높다란 담장을 세워 전쟁이 두 아들과 감자밭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노력을 했지만 담장 밖을 내다볼 수 있을 만큼 자란 두 아들을 언제까지 엄마의 울타리 안에 가둬둘 수 있겠는가. 더러워 너덜거리는 군복과 구부러지고 부러진 칼과 녹슬어 버린 훈장을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모습으로 가려버리는 무모한 젊음의 끓는 피를 빗장을 걸어 잠근들 막을 수가 있으랴. 엄마의 울타리를 벗어난 두 아들은 각각 동쪽 나라와 서쪽나라의 장군과 사령관이 되었다. 싸움이 격렬해질수록 두 나라는 폐허가 되어가고 군인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두 나라가 전쟁으로 쑥대밭이 됐지만 두 아들은 음식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어머니의 집으로 몰려간 두 나라 군인들에 의해 높다란 담장이 무너지고 집이 무너지고 어머니가 쓰러져있다. 아마도 그제서야 혈기로 가려졌던 눈에 피로 얼룩진 더러운 군복과 녹슬어버린 영광의 훈장이 제대로 보였을 것이다. 자신들의 장군과 사령관이 울부짖는 소리에 병사들도 고향집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기적처럼 어머니가 일어나고 동쪽나라 서쪽나라 가릴 것 없이 어울려 어머니의 감자를 나눠먹으며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 두 아들은 감자밭을 일구고 부서진 집을 새로 지었지만 높다란 담장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무모한 전쟁은 끝나고 집 나간 아들들은 어머니들의 품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인류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찰나의 평화적 순간이란 게 있었을까? 아마도 쉼 없는 전쟁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인류는 종교문제, 영토문제를 비롯한 여러 이유를 들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쟁의 발단이 되었던 대의나 명분은 실종되거나 변색되고 궁극에는 어느 쪽도 전리품으로 황폐하고 메마른 폐허더미의 땅덩어리만을 차지하게 될 게 빤한 소모적인 전쟁을 언제까지 계속해야만 할까. 어머니의 감자밭에서 동쪽과 서쪽이 빨강과 파랑이 뒤섞여 얼싸안은 모습에서 평화를 모색해 보자고 한다면 너무나 순진한 이상주의자의 시대착오적인 꿈이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