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일이
다영이
지란이
진오
모두들 다른 곳을 보며 달려가는 주인공들이다. 각자만의 개성과 멋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이다. 그러나 가슴에 하나씩 가시를 품고 있고 그들이
만나고서야 그 가시들을 하나씩 빼낼 수 있었다. 가시고백은 이 넷이 자신의 가시를 마음 깊은 속에 꽁꽁 숨기고만 살다가 진정한 친구에게 그것에
대해 털어놓고 그런 고민들을 하나씩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다.
해일이는 직업 도둑이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해일이는 “도둑이다. 낭만적 도둑도 아니며, 생계형 도둑도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도둑이다. 거기에 있는 그것을 가지고 나오는, 그런 도둑이다” 그는 예민한 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체질적으로, 그리고 어떻게 보면 유흥으로 도둑질을 하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자신이 했다는 증거를 계속 가지고 있기 싫어서 그런 물건들을 팔아버렸다. 그러나 해일의 마음속에도 죄책감과 자괴감이 자리잡혀있어서 팔고 얻은 돈을 쓰지는 못하고 은행에 넣어두기만 했다. 그의 손은 이미 그의 이성의 컨트롤에서 벗어나있었고 책의 서론에서 지란의 전자수첩을 훔치는 것에서 모자라 나중에는 좋은 친구가 되고 나서도 자신도 모르게 지란의 집에서 넷북을 가지고 와버렸다. 가끔 자신의 실력을 확인해보기위해 건전지를 훔치는것도 자주 해온터라 그의 서랍에는 건전지가 넘쳐난다. 그는 누구에게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믿음이 부족해 선뜻 말하지 못한다.
다영이는 일종의 반장병? 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죽 반에서 회장이나 반장은 계속 맡아오던 터라 어느새 그런 것이 생긴것이다. 항상 나보다는 남을 챙기게 되고, 교실을 나갈때도 꼭 한번 둘러보고 나가게 되고, 소외되는 친구는 없나 자꾸 친구들을 관찰하게 되고… 친구들이 원하지만 선생님께 즉시 말할 수 없는, 말하면 염치 없는 아이가 되는, 그런 나쁜 역할은 직접 나서서 도맡아 하게 되고.. 그리고 해일이를 좋아하지만 그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곁에 있는 지란이와 진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지란이는 가정의 문제가 심각한 아이다. 아빠는 자존심이 강한 분이시라 엄마와 성격이 잘 맞지 않으시고 표현을 잘 안하시는 분이고 아이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스타일이 아니셔서 자꾸 지란과 아빠는 서로를 오해하게 된다. 지란은 아빠만 생각하면 나쁜 기억들만 떠오르고 아빠의 입장에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 그녀는 아빠를 원망하다 못해 잊어버리려고 하는데 그에 반해 지란의 아빠는 지란을 사랑하며 비록 자신에게 못된 딸이지만 그래도 있어주는 게 다행이라고, 그래서 자꾸 연락하고 보고싶어한다. 엄마아빠가 이혼하게 되자 지란은 망설임 없이 엄마를 따라가고 아빠는 상처를 입지만 애써 상관없는 척 살아간다. 지란은 아빠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아빠께 못된 짓을 자주 하며 친구들을 데려가 아빠집에 못된 말을 가구에 적어놓기도 한다.
마지막은 진오. 진오는 그저 친근하고 짓궂은 친구같지만 은근 속으로는 감성적이고 겁도 많다. 지란을 좋아하는데 지란은 해일이의 오빠를 바라보고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
이렇게 서로다른 이들을 연결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해일의 병아리였다. 해일이 달걀을 부화시켜 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그저 우연이였다. 자신의 범행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생명의 탄생으로 인해 해인이는 선생님과 가까워졌고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대담함을 얻었다. 그리고 초대는 건전지의 발견으로 이어졌고 그 방문은 지란의 가택침범 사건을 초래했다. 진오는 우연히 범행을 발견했고 이는 가시고백을 불렀다. 해일은 자신이 도둑임을 인정했다. 해일은 지란에게 용서를 빌었고 지란과 새아버지의 관계 또한 망쳐버린 것을 미안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란은 넷북의 발견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해 해일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란은 가시를 내던져버린 해일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엉엉 울어버린다. 옛날의 케러멜부터 넷북까지..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비수처럼 박힌 가시도 힘껏 빼버린다.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리고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한다. 그리하여 넷은 마음속 가시를 뽑아냈다.
책의 마지막 표지에 보면, “믿어 주고, 들어 주고, 받아 주어라. 내 심장 속에 박힌 가시고백, 이제는 뽑아내야 할 때.” 라고 되어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가시 하나 쯤은 박혀 있는 것 같다. 그런 가시들을 김려령 작가가 어루만져주고 있는 듯하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다 후련해졌다. 이제는 실타래처럼 엉켜있던 문제들이 조금씩 풀리려는 기미가 보이니까. 해일이의 달걀에서 수정체가 보였을 때 느껴졌던 벅참, 그것이 이젠 이 넷, 해일, 다영, 지란, 진오, 에게 전달되었을 것 같다. 그렇게 힘차게만 걸어나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