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네 떡집’ 간판 하나 내다 겁니다.

연령 9~11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0년 5월 28일 | 정가 13,000원
수상/추천 YES24 어린이 도서상 외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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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터무니없는 독심술의 근거는 『만복이네 떡집』의 쑥떡이다. “엄마, 다 알고 있거든요. 난 쑥떡을 먹어서 엄마의 생각이 쑥덕쑥덕 다 들리거든요.”하면서 곤란한 상황에서 빠져나가곤 한다. 하루 종일 조잘거리는 것이 때로는 귀찮아서 아이에게 ‘입에 척 들러붙어 말을 못 하게 되는 찹쌀떡’을 날려도 그건 별로 효과가 없다.^^ ‘허파에 바람이 들어 비실비실 웃게 되는 바람떡’, ‘달콤한 말이 술술 나오는 꿀떡’, ‘재미있는 이야기가 몽글몽글 떠오르는 무지개떡’, ‘눈송이처럼 마음이 하얘지는 백설기’, ‘오래오래 살게 되는 가래떡’이 찹쌀떡 쑥떡과 함께 만복이 전용 떡집에서 파는 떡의 종류들이다. 부잣집 외동아들인 만복이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 삼촌 모두 만복이의 입에서 원하는 것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뭐든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가족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군침 도는 떡값이야 주머니 속 두둑한 용돈으로 해결하면 될 텐데 이 떡집의 떡값은 착한일이나 아이들 웃음으로 치러야 한다. 안하무인에다 버릇없고 걸핏하면 친구들과 싸우고 욕쟁이 깡패 심술쟁이로 불리는 만복이에게 떡값으로 치를 착한일이 있을 턱이 없다. 겨우 한 가지 착한 일을 생각해내고 맛본 찹쌀떡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떡을 맛본 다음날부터 만복이는 착한 일과 친구들의 웃음을 모을 방법을 생각한다. 시작은 만복이네 떡집의 다른 떡들도 맛볼 생각으로 의도적으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착한 일을 실천했지만 자신의 변화에 기뻐하는 가족들과 다가오는 친구들을 보면서 만복이 스스로도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만복이의 변화된 모습은 만복이가 등교해서 교실로 들어서기 전 친구들의 외침으로 알 수 있다. “욕쟁이 깡패 만복이 온다.”는 조심하고 경계하라는 알림에서 “만복이 온다.”면서 만복이 자리로 몰려 재미있는 얘기를 듣는 반가움으로 변하면서 더 이상 예전의 만복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친구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고, 선생님이나 친구의 속마음도 헤아릴 줄 알고, 수줍어하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갈 줄도 아는 멋진 만복이로 변해가면서 자신의 예전의 모습들에 대한 반성도 잊지 않는다. 만복이에게 더 이상 ‘만복이네 떡집’은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만복이네 떡집’은 만복이의 호의를 무시하고 만복이의 코피를 터뜨린 ‘장군이네 떡집’으로 슬며시 간판이 바뀐 것을 보고 만복이는 헤벌쭉 웃으며 가게 앞을 지나쳐 간다.

만복이처럼 ‘부잣집 외동아들’은 아니고 ‘그냥 외동아들’인 우리 아이에게 가정 안에서 버릇없는 말이나 행동은 엄하게 꾸짖는 편이고 집 밖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언행은 삼가도록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지시키고 있다. 형제 없이 혼자 자라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또래들과 어울리는 부분에서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은 들지만 노력 없이 그냥 주어지는 부분은 최소화 하려고 노력하고 대신 아이와의 약속 또한 지키려고 노력한다.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눈 맞추고 안아주며 자주 표현을 하지만 잘못된 행동은 눈물을 뚝뚝 흘리도록 혼을 내기도 한다. 꾸지람이 끝나면 달려와 안기며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밑바탕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란 것을 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낼 시기가 됐는데 과연 ‘요즘의 학교란 곳이 아이를 믿고 맡길만한 곳인가’ 라는 의문만 무성하고 도통 뒤숭숭한 이야기들만 들린다. 우리의 아이들은 가정, 학교, 사회 어느 한 곳에서라도 소홀히 한다면 상처받기 쉽다. 하지만 어느 한 곳의 따스한 배려가 무한한 가능성과 용기와 긍정적인 에너지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가정이나 학교나 사회가 ‘위저드 베이커리’나 ‘만복이네 떡집’과 같은 간판 하나씩 내다걸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윽박지르고 꾸짖고 규칙을 강요해서 숨 막히게 하기보다 스스로가 반성하고 변화할 시간을 기다려줄 줄 아는 넉넉하고 아늑한 공간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