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시 고백-잘 키운 삶의 근육으로 시원하게 뽑아버려!

시리즈 읽기책 단행본 | 김려령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2년 2월 5일 | 정가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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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 속에 가시 하나쯤 박혀있지 않을까.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깊은 곳에 콕 박혀있다가 수시로 찔러대는 날카로운 가시같은 아픔말이다.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의 작가 김려령은 왜 유독 뾰족 뾰족 온통 날이 선 아이들의 이야기를

써야만 했을까. 질풍노도라는 표현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마치 작두위에서 맨발로 춤을 추는

아이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어떻게 다 알아낼 수 있었을까.

물론 그녀도 나도 그 어둡고 축축한 시간들을 지나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뒤를 이어 그 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모른척 하면서

잘도 살아가건만 왜 그녀는 아픈 아이들에게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가.

 

 

 

세상이 바쁘게 돌아갈 수록 혼자 남겨지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밖에서 문을 잠그고 일하러 가는 부모도 있고 하루종일

어린이집이나 친지들의 집에서 버림 받은 아이처럼 자라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섬세한 손 감각을 타고난 해일은 열 두살 위의 형 해철이와 아파트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 그리고 한 때는 잘 나가는 가발기술자로 일했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버려진 아이처럼 홀로 커야 했던 해일이는 일찍 철이 들었고 부모에게는 기특한 아들이었다.

하지만 침착하고 조용한 그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아픈 가시같은 비밀이 박혀있다.

생계형 도둑도, 낭만적 도둑도 아닌 자신의 의지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도벽이 바로 그것이다.

같은 반 친구인 지란역시 수 많은 여자들과 문제를 일으키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재혼을 한

엄마와 낯선 새아버지와 가족이 되어야 하는 과제가 버겁기만 하다.

수시로 전화하고 문자를 해대는 친아버지는 바로 그녀의 가슴 속에 박힌 아픈 가시이기도 하다.

 

‘허는 그때까지도 자식이 부모에게 들이대는 윤리와 도덕의 잣대가 얼마나 엄격한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부모의 손은 다른 남녀와 살짝만 스쳐도 안 됐다. 그런데 허의 손은 다른 여자의 손을

지나치게 많이 잡았다. -180p

 

누구나 부모가 될 수는 있지만 제대로 된 부모가 되는 일은 이렇듯 힘든 일이다.

무심코 한 말들과 행동들…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가벼이 하거나 혹은 버거워 허우적거리다가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 것들로 하여 상처받았을 아이들의 아픔이 묵직하게 전해져온다.

 

 

 

어리고 미숙하게만 보이는 아이들의 세계에도 위계가 있고 포식자가 있으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맞서고 때로는 어른들보다 현명하게 세상을 고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대학지상주의의 학교에서 아이들과 시선을 맞춰주는 용창느님과 같은 선생들이

많아진다면 삭막한 아이들의 가슴속에 꿈을 키우는 꽃밭하나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날 우연히 달걀을 부화시키겠다고 선언한 해일과 결국은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의 신세로

막을 내릴지도 모르는 병아리 탄생을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지켜보는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가족들의 사랑은 결국 서로 기대어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는 작가의 강렬한 메시지일 것이다.

심장 속에 박힌 가시는 결국 내 힘으로 뽑아내야 하지만 사랑으로 잘 키운 삶의 근육들이

자연스럽게 가시를 밀어낼 수 있도록 손을 잡아준다면 그 일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역시 여전히 미운 사람들이 많지만 좋은 사람 아프게 그냥 떠나보내는 실수는 더 이상

하지 않으려 노력하겠노라고 다짐해본다. 늘 이 작가의 작품을 보고나면 느끼는 일이지만

희미하고 느슨해진 삶을 부끄럽게 하고 눈물 한 방울 떨구게 함으로써 몸 안에 고였던 어둠의

그 무엇들을 덜어내는 카타르시스의 감동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