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소년]-좋아하는 일을 할 방법은 항상 있다

연령 12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2년 2월 17일 | 정가 15,000원

‘보스톤 글로브 혼북 아너상’을 수상한 작품 <별이 된 소년>은 제목과 표지 삽화만으로 나를 사로잡은 책이었다. 신간 서적을 둘러보다 눈에 띈 작품이었는데,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어린 시절을 다룬 동화라는 점이 더욱 궁금증을 자아냈다. 아이와 함께 읽을 요량으로 선택한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두꺼워서 놀랐지만, 사실상 글밥이 그리 많은 책이 아니다. 글과 그림 그리고 시가 잘 어우러진 구성은 파블로 네루다의 감성을 잘 묘사하고 있는데, 그가 빠진 상상의 세계는 아이들 역시 상상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도록 잘 표현되어 있다.

<<별이 된 소년>>의 주인공은 네프탈리 레예스이다. 네프탈리는 어쩌다 파블로 네루다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애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아버지에게는 그저 ‘덜떨어진 아이’인 네프탈리가 꿈을 꾸고,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과정이 감성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데, 강압적인 아버지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네프탈리, 그리고 더불어 사회의 정의를 함께 생각하며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아버지의 발소리에 심장이 쿵쿵 뛰고 동그란 갈색 눈이 왕방울만해지는 네프탈리는 삐쩍 말라빠진 약골이다. 적어도 아버지에게는 말이다. 빗소리에 이끌려 공상에 빠진 네프탈리는 또다시 떨어진 아버지의 불호령에 침대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상상의 세계까지 침대에 붙들려있지는 않았다. 네프탈리의 공상은 멈출 수 없었고, 책과 상상 속에서는 결코 말을 더듬지도 않았다.

“언제까지나 삐쩍 말라빠진 약골로 살다가 시시한 인간이 될 셈이냐?” (본문 22p)

그런데 아버지는 병약한 네프탈리에게만 이런 것은 아니었다. 노래를 잘하는 로돌포 형은 담임 선생님과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음악 공부를 한다면 음악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버지는 경영학이나 의학을 공부하길 바랬고, 음악 따위에 시간 낭비 하지 말도록 강요했다. 네프탈리의 새엄마 마마드레는 아이들을 너무 사랑했지만, 아버지의 강압적인 행동에 아이들의 편이 되어 목소리를 낼 수는 없을 정도로 순종적이었다.그나마 올란도 삼촌만이 전혀 거리낌 없이 자기가 옳거나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했는데, 네프탈리는 그런 삼촌을 보며 자신도 자신 있는 태도로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로돌포 형은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한 채 철물점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네프탈리와 여동생 로리타는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바다에서 근육을 키우는 훈련을 받아야했다.

네프탈리는 마음속에 분노를 품고, 마마드레나 아버지가 직접 뭔가를 물어볼 때를 제외하고는 그들에게 일절 말을 걸지 않았다. 또한 네프탈리는 고집스러워졌다. 고문같은 바다 수영이 끝나기만 하면,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수영복을 갈아입고 제 할 일을 시작했다. 네프탈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본문 190p)

 

처음 본 바다는 네프탈리에게 작고 미미한 존재가 된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뭔가 더 장엄한 것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랑하는 장소인 동시에 미운 장소가 되었다. 병약한 네프탈리에게 아버지는 네프탈리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자주 하곤했다. 넋 빠진 놈, 덜떨어진 놈, 문제아…아버지는 사람들에게 네프탈리를 이렇게 표현하곤 했는데,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을만큼 잘 쓴 에세이에도 아버지는 인색했고, 결국 글을 통해서 정의를 표현한 삼촌의 영향을 받은 네프탈리가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도록 했다.

<<별이 된 소년>>은 네프탈리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서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부분 중의 하나는 바로 정의다. 칠레는 수백 년동안 살아온 마푸체족이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비롯한 사람들은 그들을 이주시키고 땅을 개발하려고 한다. 삼촌은 마푸체족의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으로, 반대 세력에 부딪혀 그동안 일구어 온 모든 것이 사라지지만, 삼촌은 여전히 정의를 위해 다시 일어서 싸울 준비를 한다.

“네가 틀렸어. 야이마 화산처럼, 언제나 표면 아래에서 불타고 있는 것이 있단다. 때로는 폭발하는 데 긴 세월이 걸리기도 하지. 하지만 결국은 터지고 말 거다. 조카야, 그들이 라 마냐나를 침묵시켰을지 몰라도, 내 펜까지 침묵시키지는 못해.”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댕에 덮인 사람이 아니었다. 정당함을 둘러쓴 사람의 모습이었다. 스스로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말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보고 있었다. (본문 310,311p)

네프탈리, 그리고 가족들은 아버지에게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네프탈리는 삼촌을 보며 느끼게 되었다. 자신의 펜도 침묵시키지 못하리라는 것을.

 

<<별이 된 소년>>은 이렇게 강압적인 아버지를 통해 꿈에 대한 열망을 키웠던 네프탈리의 성장 과정을 감성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아버지를 대신해 사랑을 주었던 새엄마, 비록 자신의 꿈은 꺽였지만 동생을 지지해준 형, 그리고 오빠에게 한없는 응원을 보낸 동생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옳고 그름을 몸소 보여준 삼촌을 통해서 네트탈리는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네프탈리는 결코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던 듯 보인다. 자신의 글에 파블로 네루다의 이름을 쓸 수 없었던 사연은 바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으므로. 

파블로 네루다의 시는 노동자들의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농장의 일꾼들은 땅을 움직이는 손이라 하였고, 빵집 주인은 그를 빵을 만들면서 어떤 기분인지 잘 아는 사람이라 표현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 아닐까 싶다. 독자는 책 속에서 정의를 배우고, 평화를 배우고, 옳고 그름을 알게 된다.

<<별이 된 소년>>은 바로 그 문학의 힘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꿈, 꿈에 대한 열정, 정의, 그리고 가족의 사랑과 지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어린이를 비롯해 어른까지 그 힘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작품이었다.

(사진출처: ‘별이 된 소년’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