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를 좋아하던 울 큰 아이, “하리하라”라는 말에 방으로 쏙 들고가 읽는다. 언제나 하리하라를 재미있어하기에
오늘은 어떤 내용인가 나도 읽어보기로 한다.
하리하라의 과학 24시라는 말답게 훈이( 울 녀석이랑 하루 일과,하는 짓 비슷, 아마 생각도 비슷하지 않을까..) 의 24시를
따라가며 우리 주변에 늘 있었지만 몰랐거나 지나쳤던 과학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아침에 일어난 훈이를 따라가 볼까요?
과감히 올리는 울 큰 아이 얼굴~~이라 할만큼 똑같다.
아침이면 벌떡 일어나던 아이가 언제부터인가, 아침이고 점심이고 밤은 말할 것도 없이 머리만 땅에 대면 자고있다.
이럴 때 내릴수 있는 나의 진단은 “크느라고 그런가보다.” 이다. 간단하지만 그냥 내리던 두리뭉실한 내 진단에
이젠 과학적 근거가 생기게되었다.
도표까지 등장해 살펴보니 성장기에 멜라토닌의 분비가 최대가 되고, 이게 많아지면 잠이 쏟아진다고 한다.
그 시기가 지날수록 멜라토닌의 분비가 줄어드니, 나이드신 분들이 “잠이 줄었어.” 라고 하시는 이유가 다 있는거다.
어쩐지 예전보다 나 역시도 잠이 줄고 얕아졌다 했더니~~ 왠지 씁쓸한 진실인지라…
정확히 아는게 꼭 좋은 건만은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더불어 밥상에 숨은 비밀이라며 보이지않게 숨어있는 가공 식품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꺼내주고 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밖에서 친구들이랑 손 쉽게 사먹거나 집에서도 ‘어쩌다니까’ 라는 이유로 먹는 것들이기에 지나치기가 쉽지만
엄마의 입에서보단 좋아하는 하리하라의 글을 통해서 중요한 건 챙겨 먹는다는 게 아니라 사실은 어떤 걸 먹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객관적 사실로 알려주니 훨~ 좋다.
이렇게 훈이의 일과를 따라가며 지구의 온난화가 생긴 이유라던지, 미래 과학이 가져야 할 점들을 생각해보며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과학을 한 방향으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자연재해가 일어나도 “신의 뜻이구먼, 신의 노여움이라서..”
라며 단순하게 포기하던 예전과 달리 설명과 법칙으로 충분히 이해될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 가게된 게 17세기 과학 혁명의
시대부터라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운’으로 여겨지던 자연을 이젠 ’위험’한 것이긴 하나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되고 , 여기에 과학으로 위험을 보다 ‘안전한 것’으로 바꾸어 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오랜 시간이 지난 이젠 굉장히 안전해졌을 것 같은데, 생각지 않은 다른 점이나 조심성없는 사용으로 그것이 또 다른
새로운 위험을 낳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이나 2011년 일본의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만 봐도 편리함속에 숨어몰랐던 위험이기에 말이다.
지구 온난화, 쓰레기, 성장이나 환경 호르몬 등 우리 주변을 위협하고 있는 일들이 과학이 주는 발전과 편함이라는 이유로
잠깐 한 눈 파는 사이 우리의 생존 공간에서 발생한 일들이다. 지금은 이 일들이 그 전보다 오히려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것들이
되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이들에게, 혹은 우리들에게 묻고 있다.
훈이의 24시간을 따라가며 바라본 우리의 세상은 입는 옷, 먹는 음식, 약, 만지는 기계 등 과학의 힘을 빌어 제각각의 이름으로
불리우며 편리함을 주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된다. 좋다, 나쁘다 한가지로만 대답할 수 없는 과학이 어떤 과정을 겪어
여기까지 오게되었는지, 그래서 어떤 일이 생겼는지, 그러다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를 보다 자세하게 써 놓았기에 열심히 본
이들이라면 지금 우리 세상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게되고, 자신이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될 듯하다.
“대장장이는 칼을 만듭니다. 누구는 그 칼로 요리를 하고, 누구는 환부를 도려내고, 누구는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대장장이가 처벌을 받아야 합니까?” …
“대장장이라도 칼을 팔 사람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자임을 알고도 칼을 팔아야 하겠습니까?” (p.79)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이들에게 쓰인 덕만공주와 월천대사의 이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