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perfect family -완벽한 가족을 위하여

시리즈 블루픽션 61 | 이옥수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2년 4월 20일 | 정가 12,000원
수상/추천 2013 서울 관악의 책 외 8건
구매하기
개 같은 날은 없다 (보기) 판매가 10,800 (정가 12,000원) 장바구니 바로구매
(10%↓ + 3%P + 2%P)
구매

작가 이옥수님의 청소년 작품은 거의 다 읽었다. 「푸른 사다리」로 시작해 「키싱 마이 라이프」,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등 작가의 문학 더듬이는 청소년의 삶 전반으로 세세하게 닿아 있다. 그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부드럽기보다는 예리하고 신랄하다. 그렇다. 소설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임을 작가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도시 빈민의 삶에서 시작하여 미혼모, 탄광촌 광부 등 작가의 손길은 많은 작가들이 외면하거나 별로 다루지 않았던 소외계층의 삶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젠 폭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작가의 시선은 신랄하고 예리하지만 거기엔 사람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믿음이 또 이 책을 읽게 했다.

이 책의 부제가 for perfect family 이다. 완벽한 가족은 인류 모두의 로망일 것이다. 완벽한 가족이 없기에 우린 그런 로망을 품으며 꿈을 꾼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 내기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가족. 그 불완전한 가족이 완전한 가족을 꿈꾸며 더듬더듬 걸어가는 모습을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사람의 다양성만큼이나 가족의 모습도 다양할 것이다. 이 땅에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희생되고 억압당하고 있는 구성원이 얼마나 많을까? 그러나 또한 가족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잘 포장하고 있을까? 형태나 모습은 다를지라도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그 폭력성을 이 책은 가감없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아프다. 그러나 서서히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그 상처를 보듬으며 결국 우리 모두는 피해자이지만 또한 가해자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아프면서도 따뜻해져 온다.

오래 전 추석연휴를 맞아 친구와 둘이서 울릉도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둘 다 노처녀이기 때문에 명절날 집안으로 들이닥칠 친척들의 예고된 질문들을 피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명절이 어떤 사람들에겐 헤어져 있던 가족들과의 만남으로 즐거울 수 있겠지만, 정말 즐겁고 애틋한지, 그런 가정이 얼마나 될지 의문을 품게 만든 여행이었다.

포항에서 울릉도행 배를 타려고 했으나 뱃시간을 놓쳐 구룡포에서 하루 민박을 하였다. 조용하던 동네에 그래도 명절이라 그런지 시끌벅적하던 추석 전날. 우리는 파도소리가 밤새 철썩 철썩 들리는 바닷가에 민박을 정했다. 쓸쓸한 노처녀들의 명절을 파도소리로 위안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낭만은 잔인하게 깨져 버렸다. 민박집과 이웃하고 있는 옆집에서 밤새도록 형제들의 싸움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목소리로 보아 40대쯤 되어 보이는 형제들은 부모의 재산문제로 새벽녘까지 날선 목소리로 우리의 여행을 우울하게 했다. 가족의 한 단면을 그렇게 보고 말았던 것이다.

이 작품은 중학교 3학년인 남강민과 20대 직장여성인 최미나, 둘이 화자가 되어 번갈아 가면서 강아지 찡코가 중심이 되어 스토리를 전개한 나간다.

형으로부터 받은 모욕, 멸시, 폭력을 주인공 남강민은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애완견 찡코에게 되갚음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고, 찡코의 죽음은 더욱더 깊은 죄의식 속에 빠트려 버렸다.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서서히 아버지와 아들들의 정다운 대화는 사라지고 그 틈을 메우는 것은 폭력이다. 그들은 아내의, 또는 엄마의 부재를 견딜힘이 없었다. 사랑하고 위로하고 배려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그 결핍감과 상실감을 폭력으로 대신하고 있다. 패고, 맞고 소리치고 부수는 개 같은 날들… 아빠는 형을, 형은 동생을, 동생은 애완견을… 그렇게 폭력은 악순환을 거듭하며 증폭되어 갔다. 그리고 결국 그토록 사랑하던 애완견을 죽임으로써 주인공 남강민의 불안한 정서는 극한으로 치닫는다.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악마성. 그것은 굳이 남강민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찡코를 죽이는 장면이나 같은 또래 근수를 향한 적의와 분노, 폭력 등은 그런 상황이 우리에게 닥치지 않아서 잘 포장된 채 살고 있지, 누구나 그런 상황이라면 비슷하지 않을까? 처절한 모욕과 멸시 앞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는 강아지 한 마리 죽이는 것이나, 친구를 의자로 내리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그 시기가 질풍노도라고 표현하는 16살 소녀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감정은 시도 때도 없이 폭발하고 낭비될 수밖에 없는 16살 소년에게…

반면 12살 소녀 최나미의 강아지 살해는 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분노의 폭발이 아니라 폭력적인 오빠로부터 강아지를 지키고 보호하려다 터져 나온 미숙한 실수였다.

이 책은 청소년 소설이기 전에 우리 사회의, 우리 학교의, 우리 가정 안에 있는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다. 아니 그 폭력성을 외부에서 찾기보다 우리 내면에서 찾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폭력의 뒤에 감추어진 가족애. 남강민이 친구들한테 폭력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는 날, 최나미를 통해 묘사된 형 강수의 눈물.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동생을 때린 친구들에 대한 절절한 분노의 말 “죽었어. 두고 봐. 죽었어, 새끼들!” 그게 형의 모습이었다.

사랑을 표현하는 법과 비폭력으로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그들의 폭력을 이해하고 미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안에 있는 내재되어 있는 악마성 뿐만 아니라, 가족애 또한 간과하지 말자고 얘기하고 싶다.

상처는 치유되어야 한다. 환부는 도려내야 한다. 그 과정은 고통이고 아픔이겠지만 고통이 없이는 새살은 돋아나지 않는다.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결국 곪아 터져서 또 다를 상처를 만들어 낼 뿐이다.

랭보의 시를 빌려 표현한다면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상처를 품고 있는 그 영혼들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그것이 이 책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