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날은 없다

시리즈 블루픽션 61 | 이옥수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2년 4월 20일 | 정가 12,000원
수상/추천 2013 서울 관악의 책 외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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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운다.
화를 이기지 못하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함에 있어서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폭력이 아닐까 한다. 무언가를 때려 부수는 그 순간의 쾌감으로 그 화는 조금 누그러지기도 하고, 분노는 사그라질지도 모른다. ‘영원히’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홧김에 무언가를 때려 부수더라도 그 순간이 지나면 망가져버린 것들을 눈앞에서 보면서 후회하기도 하니까. ‘아, 아깝다.’하면서. 근데 정말 궁금한 건, 처음에는 아깝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그게 반복되는 행동이라면 뭐, 익숙해지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는 거, 아닐까?

주인공 강민이 자신의 강아지 찡코를 죽이는 것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읽는 내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아버지가 형에게 행사하는 폭력, 그리고 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형이 강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강민이네 집안에서의 폭력은 돌고 돈다, 아주 신나게. 입 밖으로 나오는 대화의 대부분은 욕이고, 자신의 꿈을 향해가는 것을 방해한다고 말하던 강수(강민의 형)의 반항으로 역시나 되돌아오는 것은 아버지의 폭력뿐이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어김없는 절차인 강수가 강민에게 행하는 폭력.

또 다른 주인공 최미나. 외삼촌이 운영하는 생활정보지 사무실에서 일하는 고도비만의 20대 초반의 여인. 어느 날 강민의 죽은 강아지 찡코의 목소리가 미나씨에게 들리기 시작하면서 옆집 살던 강민과 미나씨의 교류는 시작된다. 그리고 계속 들려오던 찡코의 목소리를 통해 미나씨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의 일부분을 되찾는다. 자신 역시 오빠가 행했던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자신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강아지 머루를 그리워했다는 것을.

폭력이 시작되는 시점과 그 원인, 그리고 계속해서 진행되는 폭력의 방치, 드러내놓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닌 꼭꼭 숨겨두면서 쉬쉬해야할 부끄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계속해서 폭력을 낳은 결과로 보이고 있다. 특히나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폭력이 가정 안에서 만들어지고 커지고 계속된다는 점이다. 강민 형제나 미나씨 남매나 왜 이들이 싸우기 시작했는지 아무도 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습관적으로 계속되는 폭력 앞에서 마치 그것들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는 주변의 상황들과, 피해버리면 그만인 시선들뿐이었다. 저절로 나아지길, 그냥 지나면 괜찮아질 일들로 치부해버리고 두 눈 감아버리면 그만인 귀찮을 일일뿐.

자라면서 싸우지 않는 형제 없을 것이다. 꼭 형제들 뿐 아니라 부모 자식 간에도, 부부 사이에서도 싸움은 늘 일어난다. 서로의 생각의 차이, 의견 충돌, 그리고 잘잘못을 지적하는 과정에서도 싸움이나 체벌은 등장할 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아무런 표현 없이, 설명 따위 없이 그저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것은 심각하면서도 있어서는 안 될 문제다. 말문을 닫아버리면 아무런 해결도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빠지기만 하지 좋아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가족, 그 안에서의 소통은 행복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가정의 파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오늘 이렇게 같이 얼굴 보고 웃고 떠드는 것이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이란 이름이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미나씨가 자신에게 들리던 찡코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를 찾았을 때 이들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좋아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금씩 드러내준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동물과의 교감을 읽어갈 수 있는 역할이지만, 사실 이들(강민이나 미나씨)의 삶에서 정말 필요했던 것은 가족 간의 커뮤니케이션이었으니까. 대화가 아닌 욕설, 토닥여주는 손길이 아닌 거친 폭력으로 가득했던 그들 가족 사이의 관계가 서로의 마음을 읽어가는 교감으로 변화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비록 폭력으로 오랜 시간 함께 했던 기억들이 잊은 듯이 싹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쑥스럽게 서로가 내민 손을 잡아주면서 한 마디 건네는 그 순간을 만들어가는 것. 정말 필요했던 것은 그런 것이었는데 말이다.

여전히 소통의 부재는 존재하고 선뜻 누가 먼저 손 내밀 것인지 어색한 상황이었지만 나아지려 애쓰는 모습들은 보기 좋았다. 조금은 더 긍정적인 나중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웃음도 만들면서 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피해가기만 하면 점점 심각해질 일들이 조금씩만 양보하니 썩 괜찮은 이름의 가족의 이름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강민이도 미나씨도 지금쯤은 어색한 손을 마주잡고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가 아닌 조금은 환할 내일을 기대하면서 오늘을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더 이상 개 같은 날은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