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로 만들어 낸 낯선 시간

시리즈 까멜레옹 | 애덤 풀스 | 옮김 김현우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까멜레옹 | 출간일 2012년 4월 30일 | 정가 13,000원

낯선 시간. 제목을 보고 느낀건, 지금 살고 있는 현실과는 조금 다른 시간들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험과 여행. 판타지적인 그런 것들을 사실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 속의 낯선 시간들은 무척이나 현실적이고, 암울하기도 우울하기도 한 낯선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그들에게 휴식과 일탈을 맛보게 해주었고, 과거를 정리할 시간도 주었다.

이야기에 흐르는 섬세하고 현실적인 묘사에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를 해주는 책은 신처럼 그 많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건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 곳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워드처럼 소외되고 세상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이었다. 공장의 노동자나 이민자의 삶 뿐만 아니라. 세상에 제대로 속해 있는 듯 보이는 솔의 부모님들도 그들의 속마음으로 들어가자, 천재아들의 부담감과 회사와 돈 걱정에 지친 외로움으로 채워진 삶이었다.

하워드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지칠만큼 뚱뚱하고, 바보같이 착한 남자였다. 보통이면 답답해 보였을 성격이지만 그가 생각하는 것들 모두 나도 이해할 수 있었고, 그가 소중한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들이 좋았다. 나도 그의 친구들이 좋아질 만큼, 그는 그의 친구들을 좋아하고 있었다.

솔은 천재였다. 많은 영재들이 그러하듯 많은 것들을 금새 외우고, 알고 있는 것도 많았다. 솔의 부모님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아이가 최고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솔의 부모님들의 머릿속에 박혀버린것 같았다. 그것은 집착과 아이가 소화하기엔 벅찬 스케줄로 돌아왔다. 솔은 그 딱딱한 집 속에서 하워드에게 의지했다. 혼란스러워 숨이 막힐 때마다 하워드를 보고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워드는 솔의 할머니, 도리슨부인이 다니던 체육관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하워드와 만나면 자주 이야기하던 도리슨부인이 갑자기 쓰려져 입원해 눈을 뜨지 않았다. 하워드는 계속해서 상태를 보러 면회를 왔고, 가족중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도리슨 부인은 결국 죽었다. 그건 아마 솔의 아버지 레스에게는 공포였던 것 같다. 보상심리로 직장을 잃고 집을 잃게 생긴 하워드를 집에 불러들여 같이 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하워드가 기계처럼 돌아가는 그들의 가정에 하나의 숨통이 되어주길 기대했다. 실제로 하워드는 그의 성격만으로 솔의 가족, 특히 솔에게 커다란 쉼터가 되어주었다. 기억력 대회에 나가게 된 솔과 함께 도망치게 된 하워드. 그건 괴로워 하는 솔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어린시절의 모습을 보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자신의 과거를.

세상에 비춰진 모습은 물론 유괴범과 인질의 모습이었다. 쫓기는 범죄자처럼 불안에 떨었던 하워드의 모습과 반대로 신나했던 솔의 모습. 집안에서 어른이었던 하워드, 약한 아이였던 솔의 모습이 도망치는 날들이 길어질 수록 솔의 모습이 더 어른스러워졌고, 하워드가 아이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그가 과거에 살던 동네에 들어섰기 때문일까. 마주칠 일 없었던 아버지를 대면했기 때문일까.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하워드가 솔을 데리고 도망칠 결심을 하는, 용기를 내는 모습이었다. 겁쟁이에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바꿀 생각이 없었던 그가 그것을 이겨내는 모습. 자신과 어머니를 학대했던 아버지에게로 찾아갔던 모습. 그리고 그가 용서하지 못해 분노를 느끼던 아버지의 모습과 대면하고 나자 생각했던 것들. 맞서고, 원망할 만한 존재가 없어졌다는 것. 과거 속에 서있는 건 자신 뿐이었다는 깨달음. 마치 괴로운 과거 속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나 역시 혼자만 과거 속에 서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굉장히 쓸데없고,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워드는 원망과 분노, 두려움을 내려놓고, 그 과거를 조심스럽게 간직할 결심을 한다.

두 사람 다 용기가 없는 삶에서 외로움과 괴로움을 느끼던 사람들이었다. 하워드가 용기를 내자, 현실에서 금방 떨어져 나올 수 있었다. 금새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용기에 솔은 구원 받았고, 그 용기는 하워드 자신의 과거 마저 구원 했을지도 모르겠다.

 

 

좋았던 글귀-

 

어쩌면 도슨부인의 영혼도 횃대에 뒤뚱거리며 앉아 몸속으로 다시 들어가 생명을 재개할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54

밤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시간이었다. 다른 동물이 깨어났다. 머리는 달걀 껍데기 처럼 가볍고 뜨거웠다. -175 

 

솔은 그냥 눈을 감은 채 그냥 떠다니며 떨어졌다. ㅡ 그래 그건 떨어지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주 멀리, 냄새나는 공기 안에서, 런던을 지나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 아래로 떨어 지는 과정이었다. 아이는 모든 것을 그냥 내버려두고 넘어지도록 가만히 있었다. 하워드가 잡아줄테니까 . 이미 두번 이나 잡아줬으니까. -294

 

결국 아버지는 그런 모습이었다. 진짜 집에 사는 진짜 사람. 그리고 지금 시간이 흐르고, 모두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일들이 그런 식으로 일어나야만 한다는게 끔찍했다. 차례대로 하나씩 일어나고, 되돌릴수도 가로 질러 갈 수도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상자에 넣고 흔들어댄 물건처럼 힘 없이 앉아있었다. 그렇게 무너지다니. -4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