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서 자신을 구하는 여행

시리즈 까멜레옹 | 애덤 풀스 | 옮김 김현우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까멜레옹 | 출간일 2012년 4월 30일 | 정가 13,000원

   마치 일기처럼 12월 14일의 기록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렇다고 일기처럼 일인칭시점은 아니다. 우리의 주인공이 될 하워드는 첫인상부터 시원찮다. 콕스씨에게서 근무태도에 대해서 지적을 당하며 실직의 위기에 더욱 움츠려드는 소심한 이 남자는 스물여덟살에 뚱보이고, 어머니가 남기고 간 집에서 혼자 살고 있으며, 물론 애인도 없다. 그 집도 날릴 위기인데, 어머니의 옷장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할 뿐인 대책없는 인간이다.

  이런 하워드가 뜻밖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자신이 일하던 체육관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켰던 도슨부인의 가족이다. 장례식에서 그는 도슨부인의 아들의 가족을 따라 런던으로 가게 되고 운명적 동반자가 될 어린 친구 솔과 만나게 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찌기 천재적인 암기력을 인정받은 솔은 ‘세계 기억력 대회’에서 1등이 되기 위해 매일 시간을 쪼개 훈련하는 일이 일상이다. 자신과 너무나 먼 이 아이에게 하워드는 무한한 경외를 느끼고 감히 다가가지 못하지만, 그 특유의 순수하고 허물없음은 또다른 신기함으로 열 살짜리 솔을 끌어당긴다. 아이는 이 어눌한 어른을 만날 때마다 아주 잠깐씩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하워드는 이 아이에게서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만 자신과 똑같이 감당하지 못할 외로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안타까워 한다.

  결국 기억력대회장에서 하워드는 괴로워하는 솔을 데리고 탈출한다. 유괴범으로 몰려 경찰이 쫓는 가운데 이 엉성한 어른은 솔의 기지를 빌어 위기를 모면하면서 여행을 계속한다. 솔에게는 최초로 맛보는 계획되지 않은 무작정 여행인 동시에 진정한 자유를 향한 도피이다. 하워드는 어린 솔을 보호해야한다는 책임감으로 생애 처음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하는 시간이다.

  하워드는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자라지 못하고 있는 소년 하워드를 이제 성장시킬 때가 왔음을 절실하게 느낀다. 솔은 자신이 이제까지 억눌러온 아이다운 면모를 어색하지만 조금씩 꺼내면서 즐기기 시작한다.

  전혀 다른 층위, 전혀 다른 짜임의 시간을 살아온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부득불 많은 대화를 할 수 밖에 없다. 하워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상처를 솔에게 고백해야 했다. 이 아이에게만큼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단순한 우발적 사고였으며, 정당방위였노라 인정받아야 했던 것이다. 경찰을 피해 도망을 치면서 우발적으로 선택한 길들은 결국은 아버지가 있을 법한 도시로 향하게 된다. 하워드는 맞서고 싶었던 폭력적이고 냉담했던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 곳에서 만난 사람은 맞서려고 했던 자신이 무색해질 정도로 껍질만 남은 알콜중독상태의 늙은이일 뿐이다. 어린 솔도 이 만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신에게 엄하기만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

  하워드는 자신의 힘들었던 여정을 함께한 솔을 경찰을 통해 집으로 돌려보낸다. 솔의 구출은  곧 자신안에 움츠리고 있던 어린 시절의 상처로부터의 자신의 구출과도 같았다. 서로의 상처를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의 외로움은 옅어졌으며, 세상을 향한 적대적인 시선을 거둘 수 있었다.

  세상사람들로 부터 천대를 받는 하워드, 어른들로 부터 공부를 강요당하는 솔, 이 두 사람의 대책없는 도피 여행. 책을 구성하는 이 소재들은 일견 너무 무겁고 답답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이런 느낌을 받지 않는다. 책 곳곳에 숨어있는 저자의 유머에 웃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코 풀었던 손수건을 눈물을 흘리는 바바라부인에게 권하는 하워드의 친절,  아이와 벤치에 앉아서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리듬에 감각을 곤두세워 그 소음에 맞추어 방귀를 뀌는 기이한 치밀함 등등 등장인물의 아주 작은 움직임도 섬세하게 조직하고 유머를 가미할 줄 아는 작가의 글솜씨 덕분에 한 문장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