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2년 6월 29일 | 정가 11,000원

인간 속에 내재한 악을 조명할 때는 상당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하물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을 때 더더욱 그렇다. 악을 통해 이야기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선을 통해 이야기 하는 것이 수월할지 모른다. 그러나 데이비드 알몬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을 미화하지 않았다. 우리 속에 있는 추악함을 감춘채 선으로 포장한 후 이야기 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다소 우울하고 무거웠으며 약간의 잔혹과 충동이 배어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공감을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악을 보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악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통해 봐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을 행하는 누군가를 비난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 처했을 때 나는 다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치기에 가깝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그런 불편한 사실을 인정했을 때 우리는 악을 진지하게 대면할 수 있다. 그래서 데이비드 알몬드는 주인공인 리암에게 친구를 다치게 하는 행동을 허락한 것이다. 

‘갈까마귀의 여름’엔 각기 다른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곧 그들의 삶이었고 그들의 성격이었으며 됨됨이가 되었다. 주인공 리암은 전형적인 십대 소년으로 베스트 셀러 작가인 아빠와 사진 작가인 엄마 밑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리암의 부모가 과보호하지 않고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는 것 같지만 실상 그들은 리암의 마음을 잘 모른다. 아빠는 글 쓰느라 다른 것에 마음을 쓸 여력이 없고 엄마도 사진 작가로서의 활동에 무게를 더 두고 있어서 리암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지금처럼 이렇게 살면 모든 것이 무난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엄마 아빠의 사이는 나쁘지도 않지만 좋지도 않다. 엄마에게는 아빠도 알고 있는 남자 친구가 있다.

맥스는 리암의 친구다. 전에 둘은 죽이 잘 맞았지만 맥스가 현실적으로 변해가면서 리암은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 리암의 또다른  친구였던 고든은 이제는 친구가 아니라 둘을 괴롭히는 악동이다. 고든의 아버지는 트랙터 사고로 한 팔을 잃은 다음부터 늘 술에 절어산다. 고든은 밖에서는 온갖 것을 다 아는 양 행세하며 아이들을 괴롭히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꼼짝도 못한다. 고든의 아버지는 아이를 엄하게 대하고 나쁜 짓을 못하게 하면 잘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고든을 무섭게만 대한다. 고든은 친구를 괴롭히고 못된 짓을 하는 나쁜 아이이긴 하지만 편부로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알몬드는 고든이 왜 그렇게 악의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넌지시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이 셋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느날 리암과 맥스는 이상하게 행동하는 갈까마귀를 보게 된다. 갈까마귀는 뭔가 보여줄 것이 있다는 듯 둘을 숲 속으로 이끈다. 숲 속엔 왠 바구니가 놓여있고그 안에는 갓난아기가 담겨 있다. 바구니 안엔 아이를 잘 부탁한다며 아이가 신의 딸이는 희안한 쪽지가 들어있다. 리암은 아이를 데려오지만 결국 아이는 보호센터로 보내지게 되고, 이 일로 리암은 매스컴을 타게 된다. 비록 아이는 집을 떠났지만 엄마와 리암은 아이가 궁금해져 아이를 보러가게 된다. 아이가 있는 위탁가정엔 올리버와 크리스털이라는 아이들이 있다. 올리버는 라이베리아에서 도망나온 소년병으로 그 때의 기억을 아직도 상흔으로 가지고 있고, 크리스털 또한 화재로 부모와 자매를 잃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리암은 이 둘을 보며 자신이 이들과 깊이 연결돼 있음을 감지한다. 엄마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아이를 보러 간 후 더 이상은 안되겠는지 아이를 데려오기로 마음 먹는다.

한편 마을의 숨은 골칫덩어리 고든은 잠시도 악의를 놓지 않고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고든은 도를 넘어선 행동을 일삼는다. 고든은 리암의 엄마가 하는 전위적인 행위를 본 따 자신도 익명으로 전시회를 가진다. 예술의 이름을 빌린 엽기적인 행태에 리암의 엄마는 크나큰 모독과 상처를 받는다. 무엇때문인지 고든은 늘 암을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리암이 자신과 같은 부류임을 알게하려고 애를 쓴다. 고든은 크리스털과 올리버가 리암을 찾아와 도움을 구했을 때도 이를 빌미로 괴롭히며 추근덕댔다.

어느날 올리버가 작심하고 자신의 깊은 아픔을 리암에게 말하는 중 고든이 찾아와 또 훼방을 놓는다. 올리버는 고든을 잡아채 그 목에 칼을 댄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고든은 사태를 파악하고 두려움에 떤다. 올리버는 자신이 소년병으로 죽였던 소녀의 이야기를 하며 기나긴 고통에서 벗어나려 고든에게 칼을 건네며 자신을 찌르라 한다. 고든은 올리버를 찌르려하고 이때 리암이 고든을 향해 자신이 숲에서 주웠던 칼을 던진다. 칼은 고든의 팔에 꽃혔지만 다행히도 아이들을 지켜보던 군인들이 있어서 이 일은 해프닝으로 끝나게 된다. 고든을 데리러 온 고든 아버지의 이해로 이 일은 마무리 되고, 리암은 고든과 자신이 말썽꾸러기 꼬마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대개의 청소년 소설이 밝고 경쾌하게 전개되는데 반해 ‘갈까마귀의 여름’은 몽환적이고 음울하였고 때로는 불안감마저 조성하며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 재미는 있었지만 전체적인 주조는 무거웠다. 전쟁이 일어날 징조가 보이지 않는데 아이들은 노는 곳에서 늘 전운을 느꼈다. 어쩌면 이는 우리 삶이 전쟁임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가치가 전복되고 도덕이 사라지며 폭력과 야만만이 판치는 그 곳에 이미 우리가 살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작가는 아이들을 등장시켜 무겁지 않게 처리했지만 그렇다고 그 함의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올리버와 같은 소년병이 되지 말란 법은 누구도 없으니 말이다. 이런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책을 읽으며 고든의 악의가 소년병의 실상으로 나아가지 않게 된데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아직은 거기까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