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룡소 / 새싹 인물전 ] 우리 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시리즈 새싹 인물전 52 | 공지희 | 그림 민은정
연령 8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3년 3월 6일 | 정가 8,500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저희 아들 예비 초등이라서 이제 슬슬 위인전도 읽어야 하는데

아직 읽힌 적은 없어요.

오늘 처음으로 위인전을 읽어보았어요~~ㅎㅎ

이태영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일 때 태어났어요.

어느날 이태영은 이웃에 사는 일본 아이에게

” 조선 사람을 못살게 구는 일본 사람들은 나빠. 너희 나라로 돌아가! ” 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일본 순사가 왔을 때

” 남의 땅에 와서 자기 땅이라고 위는 건 잘못이에요.

조선 사람은 조선에서 살고, 일본 사람은 일본에서 살아야 해요.”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어린 아이가 정말 야무지고 당차죠~~ㅎㅎ

아버지가 어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큰 오빠의 보살핌속에서 자랐어요.

큰 오빠는 말과 행동이 똑 부러지는 태영을 늘 자랑스러워했어요.

그래서 이태영이 자라서 변호사가 되길 바랬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변호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여기서 변호사라는 뜻을 저희 아들도 잘 몰랐는데

책에 죄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벌을 받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변호사라고 적혀있어서

아들에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요즘 공부하기 싫다고 반항하는 저희 아들에게

이태영은 참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이예요.

공부를 넘 열심히 하고 시켜달라고 하니까요~~ㅎㅎ

어머니와 큰 오빠의 도움으로 고등학교를 일등으로 졸업하고

전문학교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포기하고

보통학교 선생님이 되었어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보람이 있지만

이태영은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다시 공부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이태영은 이화 여자 전문학교 가사과에 들어갔어요.

법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 왜 가사과에 갔냐구요?

그 당시에는 여자가 법을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없었어요.

태영은 늘 보따리를 두개씩 들고 다녔어요.

하나는 가사 책 보따리, 또 하나는 법률 책 보따리였어요.

그리고 공부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꼭 계단을 두 칸씩 건너다녀서

축지법 소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살았다는 흔적이 다 보이죠~~ㅎㅎ

이태영은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어요.

하지만 남편에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고생도 참 많이 했어요.

남편이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어요.

그리고 우리나라도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했어요.

그래서 남편은 이태영에게 해방된 나라에서 마음껏 공부해보라고 격려해주었어요.

이태영은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 최초의 여학생이였어요.

이 때 이태영은 서른세 살의 가정주부이자 아이 셋을 둔 엄마였어요.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도 졸업하기 까지 정말 많았어요.

막내 딸은 점심시간에 학교 근처 숲 속에서 젖을 먹이며 학교에 다녔어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가정부인으로서 사법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여

우리 나라 역사 이래 처음이라는 영예를 차지했어요.

이태영과 함께 사법 시험에 합격한 친구들은 모두 판사와 검사로 임명되어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태영에게는 아무 소식이 없었어요.

이승만 대통령이 여자가 판사가 되는 걸 반대해서 그랬던 거였어요.

그래서 이태영은 어릴 때부터의 꿈인 변호사가 되기로 했어요.

이태영은 이 땅에 하나뿐인 여성 변호사로서

여성 볍률 상담소를 열였어요.

그리고 이태영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끊임없이 노력해서

가족법을 개정했어요.

당시 법은 부부가 이혼할 경우 여성이 아이를 키울 수 없었어요.

그리고 재산도 남성만 차지했어요.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지 못했어요.

남성만이 집안의 주인이 될 수 있어서

아버지가 없으면 어린 아들이나 손자가 집안의 주인이 되었어요.

이태영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미국에 가서 법학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우리 나라 최초의 가정 법원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1975년 이태영은 동양의 노벨살이라고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어요.

상담료를 거의 받지 않아서 늘 형편이 어려워서

더 싼 사무실을 찾아다녀야했던 이태영은 1976년 12월에 서울 여의도에

여성들을 위한, 여성들에 의한, 여성들 모두의 건물인 여성 백인 회관을 지었어요.

여성 백인 회관은 여성의 힘으로 여성을 위해 지은 집이예요.

이태영의 삶을 보면서 느낀 점은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점과

결혼을 하고 가정주부가 되고 셋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점이 정말 대단하고 배우고 싶었어요.

저또한 가정주부로 두 아들의 엄마로 살고 있으면서

포기하고 사는 것들이 많아요.

앞으로는 저두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한번 찾아보고

그 일을 하기위해서 노력해야겠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