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인물전, 새싹인물전-이태영 편

시리즈 새싹 인물전 52 | 공지희 | 그림 민은정
연령 8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3년 3월 6일 | 정가 8,500원

위인전 혹은 전기. 실제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분야로 그 인물이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를 다루며 인물에 싱싱한 생명감을 부여하는 장르입니다. 이전 시대를 살아내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을 주로 선별하다보니 이전의 위인전들은 위대한 태몽 등을 예로 들며 하늘이 미리 정해둔 인물이었다거나 어릴 때부터 훌륭한 천재였다는 일종의 숙명론적인 내용이 전개되고는 했던 기억이 납니다. ( 적어도 제가 어릴 때 읽었던 위인전들은 그랬답니다. ) 그러다보니 그들의 숨은 노력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뭐~ 하늘이 도와줬구먼. 위대한 사람은 역시 틀려. 등의 반발심이 쑥 올라오곤 했었죠.

그 기억을 떠올리다보면 어떤 인물의 삶에서의 위대함과 결과로서의 성공보다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이 잘 표현된 책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간접적인 경험을 쌓고 삶의 시행착오를 줄이기를 바라는 책읽기 목적중 하나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죠.

그런 면에서 “위인전” 이라는 단어를 내려놓고 “인물전” 이라는 시리즈명으로 나오는 이 책에 깊은 관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시대가 변했으니 아이들이 역할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위인의 정의나 기준도 변해야 할 것입니다. < 중략 > 하늘 위에서 빛나는 위인을 옆 자리 짝꿍의 위치로 내려놓습니다. ” – 추천사 중

 

‘이태영’ 이라는 인물은 사실 엄마에게도 낯설은 인물이었습니다. 엄마도 밤톨군과 함께 읽으며 그녀의 삶을 눈여겨 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변호사 이셨군요. 남성 중심의 기존 사회에서 차별을 이겨내고 여성과 남성이 똑같이 대접받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앞에서 힘쓴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녀의 ‘변호사’의 꿈은 큰 오빠의 격려어린 한마디 말로 씨가 뿌려지고 싹이 나서 쑥쑥 자라났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한마디의 말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보면 무심코 뱉는 말들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에 지지리 공부도 못하는 싸움대장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한창 말썽을 피우는데 지나가던 교장 선생님이 와락 껴안으며, “아니, 나중에 훌륭한 인물이 될 사람이 왜 이러지?’” 하는 것입니다.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에 아이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매일 듣던 소리는 ‘한심한 놈, 싹수가 노란 놈’ 이라는 말 뿐이었으니까요.

‘훌륭한 인물이 될 사람’ 이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이 아이의 귀를 간질였습니다. 그 말이 생각날 때마다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왠일인지 말썽 피우는 일이 시들해지고 공부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유명한 교육감 한 분에게서 직접 들은 고백입니다.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기대가 말썽쟁이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 주었구나’ 하고 말이지요.

- 엄마의 독서학교 / 남미영

처음으로 엄마라는 역할을 맡게 되었을 때, ‘ 이 생명을 어떻게 키울까? ” 하는 책임감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아이를 아이답게, 행복하게 자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한편으로는 “훌륭하게” 도 키워보고 싶죠.( 어떻게 자라는 것이 훌륭한 것인지는 그 뒤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지만 말입니다. )

대부분 아들에게만 교육을 시켰던 이 시절, 이태영님의 어머니는 딸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을 겁니다. 그런 어머니가 이태영님이 꿈을 이루는 데에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겠군요.

 

그리고 꿈을 이루는 데에는 빠르고 늦음이 없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 가정에 충실하던 그녀가 드디어 꿈을 향해 다시 발돋움을 하는 나이 서른 세살.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에서 이태영이란 한사람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노력을 시작하고, 그 꿈은 천천히 결실을 맺습니다. 어떤 꿈들을 ‘ 이제 늦었다’ 고 한탄하며 지레 포기를 했던 스스로가 아이 앞에서 부끄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이태영님은 경제적,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고통을 상담하는 동안 무료 법률 상담의 필요성을 깊이 느끼고, 1956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법률 구조 기관인 여성 법률 상담소를 세우고, 이와 함께 가족 내에서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법이 여성 차별을 부추기고 있다고 여겨,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강연, 서명 운동, 국회의원 면담 등을 진행합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여성이 독립적으로 법률 활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처의 무능력 제도’ 등이 폐지되고 이혼한 여성도 재산 분할 청구권 및 양육권을 인정받는 등 잘못된 법 조항들이 개정되었습니다. 이태영은 여성 운동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막사이사이상, 유네스코 인권교육상 등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의 책이다보니 내용면에서 밤톨군에게는 조금 이른 책입니다. 사회적 약자의 개념이라던가 법률적인 개념들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 알 수 없는 녀석이죠. 법을 규칙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아이에게 아마 변호사라는 개념도 막연하리라 예상해봅니다. 미리 만나본 인물전이라 결국 엄마의 눈으로 이것저것 살펴보게 됩니다.

저학년 아이들의 독서력을 고려해 본문을 읽기 쉬운 동화 형식으로 구성한 대신, 부록에는 보다 충실한 내용과 사진 자료들을 담아놓았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인물 이야기’, ‘비교하면 더 재미있는 역사의 순간’ 등을 통해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인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네요.

저학년 시기에는 이렇게 인물의 꿈을 향한 과정을 조명해주는 가교 역할의 인물전을 읽고, 초등 고학년, 중학교 시기의 이른 사춘기 시절에 인물과 동일시 하여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위인전’ 으로 연계해주면 좋지 않을까~ 엄마도 처음 만나보는 인물전을 읽으며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