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릉 찌릉, 집배원이 왔어요~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3년 8월 25일 | 정가 12,000원

 

우리 마을 집배원 아저씨의 교통수단은 오토바이다. 부르릉 타고 와서는 신문을 던져놓고 다시 오토바이를 돌려 휭 하니 나간다. 스무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신문배달 때문에 매일 우리 집과 동네에 오는 집배원 아저씨와 아직은 별다른 인연을 쌓지 못했다. 만약 집배원 아저씨가 십년 뒤에도 그대로 우편배달을 하신다면 그땐 사소한 내용을 서로 나누는 이웃사촌 사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여긴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야화리 같은 시골마을이니까.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같은 제목의 동영상을 찾아서 볼만큼 티비를 잘 보지 않는다. 그래서 만화로 먼저 나와서 주목을 받은 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내용이 다시 책으로 나왔다는 사실도 책 소개를 통해 알았다.

 

야화리에는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를 고집하는 집배원이 우편배달을 다닌다. 그가 굳이 자전거에 고집을 부리는 이유는 오토바이 엔진에 묻히게 될 자연의 소리 때문이다. 꽁지머리를 하고 빨간 자전거를 탄 집배원은 마을 사람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이웃이다. 젊은 사람이 빠져나간 시골마을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까막눈 노인을 위해 소식 끊긴 아들에게 대신 편지를 써주고, 감기 걸린 할머니 대신 도시락을 가슴에 품고 가서 할머니 손자에게 전해주기도 한다. 과부 경산댁과 홀아비 황씨를 맺어주는 중신애비 역할도 하고 이따금 찾아오는 도시 며느리가 버린 할머니의 손때 묻은 그릇을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주기도 한다. 박노인네 부부싸움을 화해시켜주고 길 끝에 혼자 사는 희문 할아버지의 반찬 노릇이 되어주기도 하는 젊은 집배원. 자신이 카메라를 사기 위해 모아둔 돈을 전기가 끊길 위기에 처한 할머니 전기세로 쓰고,  베트남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갈등을 중재시켜 주기도 한다. 이렇게 그는 단순히 주민들의 편지 배달을 해주는 배달원이 아니라 야화리 마을 사람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자세히 살피고 그들이 평안한 일상을 살 수 있도록 뒤에서 보살펴준다.

 

집배원의 이런 관심과 사랑에 마을 사람들도 집배원을 남다르게 생각한다. 집배원의 망가진 바퀴 대신 자신의 바퀴를 선뜻 빼서 달아주는 중학생이 있고, 베트남 며느리가 음식을 잔뜩 차려놓고 초대를 하기도 한다. 군에서 선정하는 효행상 후보로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집배원을 추천해서 상을 받게 만들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달달한 믹스 커피보다 시커먼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는 소리에 상문 할머니는 직접 검은 콩을 볶고 갈아서 야화리식 아메리카노를 대접한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없는 시골마을에서 젊은 사람의 역할을 죄다 맡아서 하는 집배원의 모습이 너무 바빠 보인다. 자신이 힘들다고 아이들을 시골에 맡기는 도시의 자식들, 그들을 기다리며 정을 나누는 조손가정이 모습들. 내가 살고 있는 마을과는 다소 떨어진 이야기가 많지만 그래도 서로 관심을 갖고 돕고 사는 이웃의 모습을 보니 내가 사는 마을인 것처럼 다정함이 인다.

 

이 책을 읽으며 아주 가끔은 “저 우체분데요~”라며 택배 왔다는 전화를 해주지만 거의 대부분은 물건들을 현관아래 계단에 던져놓고 가는 집배원 아저씨를 떠올린다. 아직 낯설어서 커피 한 잔 건네 드리지 못했지만 내가 먼저 마음을 연다면 우리 마을 집배원 아저씨도 살갑게 인정을 보일 분이시다.

 

그리고 한 바퀴 도는데 30분도 걸리지 않는 이 작은 마을에서 우리 집이 첫 집이라는 핑계로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않는 내 모습을 보았다. 얼마 전에는 마을 위쪽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입원하는 바람에 그 댁에 묶여있는 개가 더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빨간 자전거 집배원처럼 하루에 한 번 마을을 돌았더라면, 그리고 낑낑 거렸을 개에게 물 한 모금 마시게 했더라면 더위에 탈진한 개가 살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에 안타까웠다. 이왕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는 일. 이제부터라도 마을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특히 오늘 같은 휴일에는 별일이 없더라도 강아지를 끌고 동네를 돌며 동네 분들과 마음을 트고 지내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짧은 이야기들이어서 커다란 감동을 전달하진 못하지만 우리가 잊고 살았던 작은 관심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읽으면 재미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를 읽는 것처럼 짧은 내용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길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읽으며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빨간 자전거가 “찌릉찌릉” 짧은 여운을 남기며 떠난 뒤 켜진 불빛이 너무 따뜻해 보여 그 그림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우리 집도, 그리고 당신 집도 언제나 이렇게 따뜻한 불빛 속에서 지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