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집]-당신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습니까?

시리즈 블루픽션 71 | 최상희
연령 13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3년 10월 4일 | 정가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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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 베토벤, 조지 오웰, 다윈, 안데르센, 제인 오스킨, 뉴턴, 알프레드 히치콕, 미켈란젤로, 에디슨, 갈릴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빈센트 반 고흐, 임마누엘 칸트.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아스퍼거 증후군 증상을 보였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특징은 타인과의 교류가 어렵다는 것이다. 자폐인 중에는 특정 영역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데, 이를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한다. 이야기에 나오는 나무는 아스퍼거 증후군과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소년이다. (본문 294p)

 

이 책은  제목, 표지삽화로 만난 첫인상이 참 좋았다. 하지만 이 책은 첫인상 뿐만 아니라 오래 만날수록 정이 가고, 매력이 느껴지는 사람처럼 책을 읽는내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읽을수록 호감이 가는 작품이었다. 큰 파도없이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처럼 전반적인 스토리가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결코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잔잔한 이야기는 심심한 느낌이 드는데, 이 작품은 오히려 잔잔함이 너무도 좋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무는 아스퍼거 증후군과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소년이지만, 작가는 작품 속에 한 번도 병명을 등장시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무는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만의 세상에 약간 더 깊숙이, 그리고 조용히 머물고 있을 뿐이다. 마치 이 소설이 대화에 몹시 서툰 내가 힘겹게 타인에게 건네는 이야기이듯이. 어쩌면 우리 모두는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지 모른다.’ (본문 294,295p)

 

동생 열무는 꿈을 꾸지 않고, 형인 나무는 환상을 품지 않는 아이였다. 그러나 소장님은 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가르쳐 주었다. 열무는 형과 소장님을 칸트라 불렀고, 이 이야기는 두 명의 칸트에 관한 이야기를 열무가 화자가 되어 이끌어간다.

창밖으로 도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는, 마지막한 집 이십여 채가 모여있는 작은 마을, 갈매기들만이 개벌에 하얗게 앉았다 날아오르는 곳, 황량한 바닷가로 가족은 이사를 했다. 아빠를 제외하고. 십 년째 지속되어 온 규칙이 바닷가로 이사 온 후 시간과 공간의 규칙에 대혼란을 겪고 있던 형과 네 시가 되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책을 하는 남자와의 만남은 나무에게 새로운 규칙이 되었다. 그들은 매일 칸트를 찾아갔고, 칸트를 그들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일이 없을 것 같은 두 칸트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형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칸트였고, 종잡을 수 없는 알쏭달쏭한 말을 건넸으며, 예상할 수 없는 데서 뚝 그쳤고, 뭔가 더 있으리라 기다려도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지 않는 인물이었다. 열무에게 또 다른 칸트인 나무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 생각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새끼고, 그냥 제 마음대로 믿으며, 더 나쁜 건 거짓말은 절대 못하는데 허튼소리도 안 한다는 것이다. 형의 세상은 형의 머릿속에만 존재하고, 자기가 만들어 놓은 완벽한 세상으로 들어가면 절대 나올 생각도 없는, 형이 만든 세상 외에, 그 바깥쪽은 아무 의미가 없다.

 

“여행 온 것치고는 너무…규칙적이다. 칸트 같네, 저 사람.”

엄마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덧붙였다.

“칸트라면 우리 집에도 하나 있는데 말이야.”

엄마의 시선이 해번에 앉아 있는 형의 뒷모습에 닿아 있었다.

칸트, 딱이었다. 형에게도, 남자에게도,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본문 34p)

 

나무와 열무가 그의 집에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것은 가야 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으며, 누구도 가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지만 뭔지 모를 무언가가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무에게 칸트의 말은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상자처럼 건네졌지만, 열무는 커대한 서랍처럼 자신의 서랍을 촘촘히 쌓아 올리고 있었다.

 

“네가 생각하고 꿈꾸는 것, 이를 테면 이상향이라고 하는 것에 맞는 공간이 있다면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집이라는 말로 부를 수 있지. 그건 한 칸짜리 서랍이 될 수도 있고 저 넓은 바닷가가 될 수도 있단다.” (본문 177p)

 

유명한 건축가였으나, 아픈 상처로 다른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살아가던 칸트는 두 소년을 만나면서 타인과 접촉을 하게 되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꿈을 꾸지 않았던 열무는 꿈을 꾸게 되었고, 환상을 품지 않았던 나무는 상상을 하게 되었으며, 세상과 단절되었던 소장님은 세상과 소통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소통하지 못했던 이들이 서로 만나 진정한 소통을 하게 되는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 사실 여기서 나무와 소장님만이 소통하지 못한 인물로 치부되기 쉽지만, 열무 역시 진정한 소통을 알게 된 인물이기도 하다. 두 명의 칸트가 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형은 원래 그렇다’는 말로 형과의 소통을 단절시켰던 열무 역시 형에 대한 마음을 열게 되었으니 말이다.

 

<<칸트의 집>>은 소통하는 법, 소통의 의미를 두 칸트의 진솔한 마음을 통해 느끼게 된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 소통의 부재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타인과의 소통을 힘겨워하는 요즘, 두 칸트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주고 있다. 건축가인 칸트는 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소통을 이어가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를 통해서 자신만의 집을 만들어가는 아이들의 성장하는 모습이 참 예쁘고 감동적이다. 나는 지금 어떤 집을 짓고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만들어가는 집의 모습을 가늠해보게 된다. 잔잔함 속에 담아놓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여운깊은 감동을 전한다.

 

“네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나면, 네게 필요한 집도 뭔지 알 수 있게 될 거다.” (본문 17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