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꽃 피고 싶습니다.

시리즈 블루픽션 73 | 정연철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3년 12월 5일 | 정가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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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만 먹었다 하면 닥치는 데로 부수고 무차별적으로 발길질을 해대는 사내를 아버지라, 남편이라 불러야 하는 가족들의 억장은 무너져 내린다. 몸서리치도록 끔찍한 폭언과 폭력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침묵하거나, 분노를 애써 누르며 복수의 날을 기다리는 장면은 처참하다 못해 눈뜨고는 못볼 비극이다. 제발 이 비극이 끝나주기를 빌고 또 빌지만 죽거나 사라지기를 바라는 대상이 나를 세상에 있게한 근본이기에 평생토록 지고 가야할 죄책감과 원망은 어찌하면 좋을까?

대학 입시를 하루 앞둔 날, 지독하게 소주 냄새를 풍기며 뺨을 갈기고 머리통을 두들겨 패는 아버지를 꿈에서 본 후 ‘기범이’는 수리 영역 시험지를 끝내 풀지 못하고 뛰쳐 나온다. 아버지의 저주에서 이제 겨우 풀려 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맥없이 무너질 줄 짐작이나 했을까? 살아서도 끔찍하던 아버지는 죽어서까지 시퍼런 낫을 든 모습으로 나타나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 덤벼든다.
유전의 법칙은 참으로 놀라워서 외모 뿐 아니라 취향이나 사소한 버릇까지도 되물림된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특히나 닮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은 왜 그리 빼닮는 건지… 자식이 부모를 닮는 건 당연한 이치지만 결코 닮고 싶지 않은 모습이나 성격을 닮아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고통이다.
‘기범이’는 털끝만큼이라도 아버지를 닮았을까봐 두렵다.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저주하고 욕하면서도 똑같이 바람을 피고 노름을 했던 것처럼 자기도 아버지처럼 가족들을 괴롭히는 망나니가 될까봐 불안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를 닮지 않기 위해 목숨까지 걸며 겨우 떠나왔지만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는한 지옥같은 그곳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고향으로 향하는데…
아버지의 행패와 폭력 앞에서 무기력하게 쓰러지던 어머니,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벌이에 나서야 했던 큰형과 누나, 육손이인 엄지손가락을 저주하며 껄렁거리던 작은 형, 아버지를 유일하게 아빠라 부르던 영순이, 두들겨맞는 엄마를 구하지 못해 벌벌 떨며 입술을 깨물던 소년의 눈물이 일기장을 넘길 때마다 울컥울컥 베어 나온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준 일기장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끔찍한 흉터로 남아 움직일 때마다 찢어지고 곪아서 또다른 상처가 된다. 내면으로 숨어든 상처받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와 사랑을 달라고 떼를 쓰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른다. 제발 좀 살려 달라고…제발 좀 살아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작가의 자전적 소설을 읽고난 후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었기에 함께 즐거웠고 더 많이 아팠다. 제일 많이 사랑해야할 가족이라는 존재가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받는 대상이라는 게 답답하고 슬펐다. 사랑하면서도 용서하지 못하고 안아주지 못하는 마음이 지옥이 아니고 무얼까?
해거리를 지나와 무사히 탯줄을 끊고 이제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기범이의 손을 꼭 쥐었다. 너무 많이 아프지 말라고, 착한 아들로 살지 말라고, 권기범 네 자신으로 살라고 토닥토닥 등을 쓸어주었다. 무릎팍이 깨지고, 피가 철철 흘러도 혼자 힘으로 걸어야 하고,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또 자기에게로 이어지는 지독한 윤회의 고리를 끊을 사람도 결국 자신이라는 사실이 두렵지만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뜨겁게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꽃이 피고 지는 일이 어찌 쉽기만 하랴. 나는 아이에게 어떤 부모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미처 치유하지 못한 내 상처를 아이에게 그대로 투사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본 귀한 시간이었다. 자녀와 함께 읽는 부모 필독서로 적극 추천하며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의미있는 만남이 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