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아버지들을 생각하면 참 가지 가지 모습이겠지만

이런 성장이야기를 다룬 소설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은 어쩌면 이렇게나 가정에 불성실하고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가 하면 술에 쩔어 앞뒤 가리지 못하는 인물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내내 좋은 성적으로 모든이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대입시험에 임하게 된 주인공!

그러나 밤새 아버지가 등장하는 악몽에 시달리다 결국 시험장에서 뛰쳐 나오고 만다.

그길로 사춘기적에 스스로 나와야했던 집으로 다시 돌아가 자신이 남긴 일기장을 들추어

자신의 상처를 되돌아보며 그때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주인공과 독자들을 함께 옛시절로 뛰어들게 만드는 작가의 글 묘사에는 생생함이 살아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기범이는 너무 가난해 학교 준비물도 제대로 챙겨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늘 아버지는 술에 취해 개를 발로 차고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가 하면 자식은 안중에도 없다.

그런 아버지가 사라져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하는 주인공의 일상은 그래도 어쩐지 소소한 즐거움이 묻어 난다.

가진건 없지만 먹을것이 생기면 동생에게 챙겨다 주는 따뜻함과 학교 친구들과의 우정 이야기는 괜히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운동회날 선물을 받겠다고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리는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과

이웃집 아줌마와 바람이 나서 동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아버지에 대한 창피함에 자존심 상해하는 모습에도 크게 공감이 간다.

역시 그런 아버지를 내치지 못하고 받아주고 밥도 챙겨주고 기다리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것 또한 공감이 된다.

분명 사춘기때는 이상하게도 엄마나 아빠에 대한 반항심이 과하게 고개를 든다.

나 같은 경우에는 엄마에 대한 반항심으로 별것도 아닌일에 괜히 짜증을 내고 미워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

그렇더라도 역시 엄마는 엄마니까 미워할수 없는것 또한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는 주인공에게는 그저 없었다면 더 좋을뻔한 존재라는 사실이 참 가슴아프기만 하다.

그래도 아버지의 품이 그리운건 주인공에게도 마찬가지 마음인지 한번쯤은 그 따스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다시 시작되는 아버지의 음주와 폭력앞에는 잠깐의 따스함이 힘을 내지는 못한다.

자신의 어린시절 일기장을 오랜만에 읽게 된 주인공은 스스로의 이야기속에 빠져들어 읽다가

아버지에 대한 지긋지긋한 마음속 응어리를 걷어내듯 책상을 부수고 불에 태워 버리게 된다.

역시 마음에 품은 껄적지근한 커다란 응어리는 그냥 모른체 묻어 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아픈 상처가 되어 흉터로 남더라도 어떻게든 그 앞에 마주서서 풀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주인공,

어느새 주인공은 일기장을 함께 태우면서 자신만 오려낸 사진을 보며 그렇게 한뼘 성장하고 있다.

이야기속에 절대 똑같아지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주인공 아버지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나이 들어 거울앞에 설때나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늘어 놓을때 가만히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엄마의 모습이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고 미워했던 엄마의 그때 그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내 모습에 소름이 돋곤 하는데

그럴때 가만 우리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달까?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성장통을 앓고 아이가 되고 어른이 되고 엄마 아빠가 되는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