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없는그림책이 말하는 인간의 탐욕과 미련 ‘빅 피쉬’

시리즈 비룡소 창작 그림책 47 | 글, 그림 이기훈
연령 6~13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4년 1월 3일 | 정가 20,000원
구매하기
빅 피쉬 (보기) 판매가 18,000 (정가 20,000원) 장바구니 바로구매
(10%↓ + 3%P + 2%P)
구매

대단한 흡입력을 가진 그림책이다. 책의  자장 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엄청난 힘으로 끌어들인다. 긴장과 갈증을 동시에 일으키는 책이 드문데 오랜만에 수작을  만났다. 그림의 구성은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았고, 스케일은 압도적이었다. 스토리의 묵직함 때문인지 쉽지 않았고 그래서 몇 번이나 다시  봐야했다.

우리 어린이 책을 읽으며 감탄한 적이 서너 번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었고, 그림책은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어린이 그림책이라 하지만 어른들과 함께 봐야할 책이라는 게 더  적당한 표현일 듯하다. 스토리는 구약성경의 ‘노아의 방주’와 피노키오의 모티브가 되었던 ‘요나의 큰 물고기 이야기’가 주조를 이루며  진행된다.

가뭄으로 땅이 쩍쩍 갈라지고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원시 부족이 살고 있는 어느 곳이다. 우물에서조차 물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가뭄의 그늘은 짙다. 기우제도 지내보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마을의 원로가 사람들을 앞에 중대 발표를 한다. 부족원들이 모인 가운데 남자 넷이 뽑히고 앞장선 원로를 따라 그들은 동굴 깊숙이 들어간다. 그간  숨겨놓았지 싶은 동굴의 벽화엔 가뭄을 해결할 비책이 숨어있는 듯 하다.

이제 벽화 속의 물고기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고,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한참을 간 후에야 마침내 벽화의  그림과 똑같은 곳에 도달한다. 죽을 고비을 넘기며 찾아왔건만 물고기를 잡아야하는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전설 속의 물고기가 쉽게 잡힐 리 없다. 목숨을 건 싸움 끝에 드디어 손에 넣었다.

 어서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동물들이  몰려든다. 목숨을 걸고 잡은 물고기를 뺏길 수는 없다. 하지만 목마른 고통은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물고기가 크니 나누어 마셔도 좋으련만  인간의 욕심은 나누기를 허락치 않는다. 고기 속의 물이 남아돌아 입만 벌려도 사람이 떠내려갈 정도이건만, 버리더라도 나눠 줄 수는 없는가 보다. 한 모금의 물을 찾아 끝도 없이 동물들의 행렬이 이어지지만 방어막을 치고는 야박하게 돌려보낸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그토록 집요하게 달려들던 동물들이 발길을 돌린다. 이제 마음 편히 물을  마실 수 있게 됐다. 걱정거리도 사라졌겠다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다. 지치도록 즐긴 후 모두 잠에 취해 있을 무렵, 웬일인지 물고기의 배가  무섭도록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설사 알았다 한들 누구도 손쓸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물이 물고기의 입에서 터져 나온다. 순식간에 물은 땅을  덮어버린다.

 

그 모든 것을 휩쓸고도 모자라는지 하늘에서도 비가 내린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몇 사람의  눈에 자신들을 구해주고도 남을 커다란 배가 보인다. 살았다. 그들이 우리를 건져주리라. 그러나 배 위에는 동물들만이 가득하고, 동물들의 눈에도  안돼 보였는지 어쩔 줄 몰라한다. 구해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모든 것이 끝났다.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물을 나누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래도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같은 목숨이건만 동물이라고 업신여기고 야멸차게 대하더니 하찮게 여겼던 동물들은 살았고, 지혜로워  보였던 인간은 목숨을 잃었다.

 

좋은 책은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한번 볼  때와 두번 볼 때가 다르며 아는 만큼 보이게 한다. 또한 독자의 생각을 넣어 다양하게 채색케 하며, 풍성히 즐길 수 있도록 재창조의 매력도  선사한다. 호평을 받는 책도 두번 보기 쉽잖은데, 이기훈의 이 책은 반복해 보게 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그림책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그림책의 스펙트럼을 넓힌 수작을 만난 기쁨이 자못 크다. 어쩌면 우리 그림책은 앞으로 이기훈 이전과 이후로  나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