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치유하는 시간

시리즈 블루픽션 73 | 정연철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3년 12월 5일 | 정가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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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보다가 견딜 수 없는 압박감에 교실을 뛰쳐나간 기범은 고향으로 향한다. 고향집에서 해묵은 자신의 비밀일기장을 발견한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시작되는 일기장, 상처를 동여맨 일기장을 하나씩 넘기면서 기범은 자신에게 남아있는 상처를 되새긴다.

해묵은 일기장의 페이지를 그대로 옮겨쓰고 그다음 그 사건 속의 과거를 다시 기억해내는 방식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가끔씩 일기장을 읽는 현실로 돌아오기도 한다. 1970년대의 경상도 농촌의 이야기들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짐작도 할 수 없는 먼 옛날의 이야기인 것만 같다. 아궁이에 불을 때 밥을 짓고, 아이들은 산을 넘어 학교에 걸어가고, 소에게 풀을 먹이러 들에 나간다. 이런 생활들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어린 독자들에게 재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 정님이 엄마와의 부적절한 소문에 싸인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오히려 폭행을 당하고 사는 엄마.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속에서 엄마는 물론 자신마저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성격의 기범이 더더욱 주눅이 들어 살게 되면서 털어놓은 6학년시절부터 중학교때까지의 이야기들을 먼지묻은 일기장들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 때문에 기범이는 집보다 학교가 좋아져서 더욱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는 모범생이 되어간다. 아버지가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또한 그리 내키지 않은 기범이다.

하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고 아버지 품이 따뜻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순간이 있었으며, 마당에 튀밥꽃이 뛰는 날에는 자랑스러운 아버지였으며, 썰매나 팽이를 만들어주는 자상한 아버지였던 때로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자신도 어머니처럼 아버지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아버지일 수 밖에 없으므로.

작가는 가족이기에 느낄 수 있는 미움이 바로 사랑이나 기대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완전한 미움에 다다르지 못하는 기범이를 통해서 보여준다. 아버지의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일면들을 미워하지만, 아버지의 역할 전부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쉽게 딱지가 앉지 않는 상처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되지 않는 상처란 없는 법이다. 그렇게 기범이는 상처를 치유하고 아버지에 대한 나쁜 기억으로 부터 해방된다. :

 (…)  난 이곳에서 망각하고 있었던 시간을 되찾았다. 튀밥꽃 피는 시간. 이제 다시는 그 시간의 끄나풀을 놓치지 않을 거다. 필요할 때 언제든 끄집어내 꽃을 활짝 피울거다. 그 마법의 꽃을.(p.229)

까치밥, 튀밥꽃, 나무책상 등등 곳곳에 숨겨진 상징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 있어서 작가가 여러가지 고민들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넣어서 생생하게 전하는 대화들은 아주 정겹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