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다람쥐를 통해 변모하는 플로라의 세상. 초능력 다람쥐 율리시스, 케이트 디카밀로 / 비룡소,

연령 10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4년 4월 5일 | 정가 13,000원

한동안 드라마 『별그대』(별에서 온 그대) 를 통하여 더욱 친숙해진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이 책의 저자인 케이트 디카밀로 작가의 신작을 만나보았습니다.

2014년 뉴베리상을 수상한 『초능력 다람쥐 율리리스』라는 장편동화입니다.

초능력 다람쥐 율리시스
(Flora & Ulysses)
케이트 디카밀로 글/K.G. 캠벨그림
288쪽 | 518g | 152*202mm
비룡소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한 소녀. 만화책에만 빠져 살며 세상사나 감정에는 관심 없는 ( 관심 없다고 스스로 규정하는 ) 자칭 ‘냉소가’ 플로라 랍니다.

냉소적 : 쌀쌀한 태도로 업신여기어 비웃는. 또는 그런 것. / 네이버 어학사전   부모로서 그녀가 왜 냉소적인 아이가 되었는지 저도 모르게 살펴보게 됩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종종 ‘천성이 냉소적인 아이’ 라고 핀잔해서(p. 12) 였을까요?

 

플로라의 어머니는 로맨스 소설 작가이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마음을 표현하는 법은 모르는 듯 합니다. 오죽하면 플로라는 엄마가 자신의 첫 원고료로 산 양치기 소녀 전기스탠드를 자신보다 더 친딸처럼 여긴다고 생각할 정도일까요.

 

「플로라의 어머니는 플로라에게 아름답다고 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소녀의 어머니는 마음을 온통 다 바칠 만큼 소녀를 사랑한다는 말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플로라는 천성이 냉소적이라 어머니가 자기를 사랑하든 말든 별로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p. 38)

게다가 엄마와 이혼한 아빠는 그저 소심하고 예의 바른 아저씨로 바뀌어 버린 듯 하죠.

“섣부른 희망을 가져선 안 돼.” 라며 늘 자신에게 속삭이는 플로라.

아직 아이인 그녀는 ‘냉소적’ 이라는 단어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지 않고 외부로부터 방어하고 있던 것으로 느껴져 저는 초반부터 마음이 애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다람쥐 한마리가 나타납니다.

이웃집의 새로운 진공청소기에 빨려들어 죽을 뻔하다가 플로라의 인공호흡으로 살아난 다람쥐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오로지 ‘먹을 것’밖에 없었던 다람쥐는 살아난 이후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고, 자신에게 ‘율리시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며 자신을 초능력 영웅으로 믿는 플로라를 통해 사람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특별한 다람쥐로 변모해 갑니다.
또한 이 특별한 다람쥐를 통하여 플로라와 주변 인물들이 알고 있던 세계와 관계에 큰 파문이 일어납니다.

 

우선 플로라는 점차 냉소가가 아닌 사랑과 기적을 믿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된답니다.

그리고 플로라의 아빠에겐 삶의 활력과 즐거움을, 엄마에겐 딸을 이해하고 사랑을 표현할 기회를, 이웃의 또다른 상처받은 소년,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현실을 대면하는 눈을 감아버렸던 윌리엄에겐

세상을 다시 바라볼 빛을 가져다줍니다.

무엇보다도 플로라가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느끼게 되는 장면들이 감동적이었죠. 아빠의 가슴에 손을 얹어보며 가슴속에서 뛰고 있는 아빠의 심장을 느껴보는 이 장면. 활짝 펼친 두손으로 아이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표정, 그리고 아이와 마주보는 눈.

 

「아주 당당하고, 앚 힘차고, 아주 큰 느낌이었다. ( p. 165)

..

플로라 벨 버크맨은 행복했다. 」

 

플로라와 엄마와의 화해는 약간 유머스러우면서 코끝이 찡한 장면이었답니다. 병균이 옮는다며 다람쥐를 없애려 드는 엄마와의 여러가지 사건들을 통해 전개되는 이 이야기의 말미.

 

” 조지, 조지, 제발 우리 아기가 여기 있다고 말해줘요! ”

” 그 전기 스탠드 좀 주세요! 우리 엄마가 메리 앤을 애타게 찾고 있어요. ” (p. 268)

마지막까지 자신보다 전기스탠드를 찾는다고 생각한 플로라. 그동안 이 아이는 굳게 마음의 빗장을 닫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써온걸까요.

「소녀의 어머니는 깨진 양치기 소녀의 조각들을 밟고 다가왔다.

어머니는 플로라를 품에 안았다.

“우리 아가”. 소녀의 어머니는 말했다.

“저요?” 플로라가 말했다.

“너.” 소녀의 어머니는 말했다.

나는 여기 있고 엄마는 나를 사랑해. 홀리 바굼바!」

참아왔던 눈물이 터지면서 소녀는 엉엉 웁니다.

소녀의 굵직굵직한 눈물방울에 저도 함께 눈물이 맺혀버렸습니다.

 

 

부모로서의 제게 전하는 메시지. 플로라는 결코 ‘천성이 냉소적인 아이’ 가 아니었다는 점. 아이는 나를 봐주는 사람을 통해 스스로를 자각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메시지.

혹시 우리는 소중한 사람의 그 소중함을 잊고 오히려 더 소홀하게 대해왔던 것은 아닌지요. 나중에, 나중에~ 라고 미루며, “말 안해도 알겠지~” 라며 표현을 아껴온 것은 아닌지요.

그동안 인간이 지닌 어떤 소중한 키워드들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을 탄탄한 스토리텔링 안에 담아냈던 작가의 특징이 이번에도 빛을 발하는 듯 합니다.

전작의 200여쪽보다 더욱 두꺼워진 280여쪽의 동화. 그러나 두꺼운 책 두께에도 불구하고 금방 몰입하여 읽어버리게 되는 힘은 무엇일까요.

시선을 붙잡아두는 적당한 갈등, 이미지 연상을 이끄는 탁월한 묘사, 그리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등.. 아마도 그것은 작가의 작품이 가지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세상이 언제 이렇게 아름답게 변했지? 세상이 원래 계속 이런 모습이었다면 나는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p. 32)

죽을 뻔하다가 다시 깨어난 다람쥐 율리시스의 이 말이 계속 울립니다. 율리시스는 플로라의 주변만이 아니라 이 책은 읽는 우리의 관계에도 변화를 주려고 하는 듯 하네요.